약 열흘 전, 중국 현지에 나와 있던 도중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졌다. 한국으로 간 딸과 현재 중국으로 탈북해 있는 어머니가 만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어머니 고OO(60. 가명)씨는 위암 말기 상태였으며 지금 OO시내 병원에 입원해있으나 치료는 사실상 이미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딸은 주민등록번호 발급 당시 거주지가 경기도 안성시로 되어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당국으로부터 비자 발급이 거부되어 입국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기자가 병원을 방문했을 당시 어머니 고 씨는 상당히 위중한 상태였다. 앙상한 팔다리는 침대 위에 힘없이 놓여 있었으며, 식사도 정상적으로 할 수 없어 영양섭취를 오로지 링거에 의지하고 있었다. 옆에는 함께 탈북한 남편 김OO(65. 가명)씨와 아들이 실낱같은 목숨을 겨우 잇고 있는 아내와 어머니를 그저 무력하게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기자는 남편 김 씨에게서 이들 모녀의 안타까운 사연의 전말을 들을 수 있었다.

딸이 떠난 이후 고 씨는 병세가 악화되어 평양의 한 병원에 입원했다고 한다. 하지만 ‘무상(無償)치료’라는 정권의 선전이 무색할 정도로 일반 주민들이 이용하는 병원의 상황은 열악하기 그지없었고, 수술한 자리가 오히려 더 곪아 결국 고 씨는 퇴원해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사실 그 때 병원으로 가지 않고 곧장 중국으로 왔더라면 고 씨는 소생할 희망이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자 고 씨의 상태는 더욱 악화되어 일어설 수 없을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으며, 결국 남편 김 씨와 아들은 그를 중국으로 데려가 치료하기로 마음먹고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왔다고 한다.

하지만 도강(渡江)은 결코 쉽지가 않았다.

국경수비대와 노농적위대에까지 뇌물을 주고 아들에게 고 씨를 업힌 채 국경까지 왔지만 정작 문제는 중국 공안당국이었다. 결국 고 씨의 몸에 줄을 묶어 강 위로 흐르던 다리 아래로 내려 보내 강가로 내려 보낸 뒤 차디찬 물길에 몸이 잠긴 채 강을 건너 겨우 중국으로 올 수 있었다고 한다.

중국에 와서도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다행히 먼 친척이 있어 그의 도움으로 병원에 고 씨를 입원시켰지만 의료 혜택이 전무한 탓에 만만치 않은 치료비가 소요되었다. 불과 열흘 남짓 동안 지금까지 그들 가족이 치료비로 사용한 돈은 중국 위안(元)화로 약 1만원(우리 돈 약 200만원)이었다. 일반 조선족 근로자의 한 달 수입이 평균 1천원 안팎인 것을 감안할 때 이는 엄청난 액수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공안 당국에 의한 체포 위험도 그들 가족에게는 공포였다.

비록 최근 탈북자들에 대한 공안 당국의 단속이 이전보다는 많이 완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누군가의 고발에 의한 체포는 도처에서 적잖이 자행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기자가 엿본 바로는 병원 관계자들은 이미 이들 가족의 정체를 알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이후 병문안을 갈 때 마다 병원 밖에는 공안 차량들이 심심찮게 주차되어 있곤 했다. “공안도 사람이라면 이 불쌍한 사람들을 체포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들 가족의 운명은 그저 열 길 물속보다도 알 수 없다는 인간의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기자는 인터넷 메신저를 통해 현재 한국에 있는 딸 김OO(29. 가명)씨와 연락할 수 있었다.

최근까지 수개월 동안 영어 학원 새벽반을 다니고 지금은 번듯한 직장을 잡고서 일하는 등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며 한국에서 성실히 정착해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 그는 현재 전화를 통해서나마 가까스로 어머니와 대화 하고 있다고 했다.

“자주 병원에 들러 돌봐주셔서 고맙습니다. 딸인 저도 갈 수 없는데..” 김 씨의 마음은 지금 무척이나 고통스럽고 착잡한 듯 했다. 한국을 떠난 이후로 언젠가는 어머니를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여기며 하루하루를 희망으로 버티며 열심히 살아왔건만, 이제는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현실의 아픔이 비수(匕首)가 되어 그녀의 가슴을 찌르고 있는 듯 했다.

이 분야의 전문가에게 문의해보니 김 씨의 경우는 상당히 희귀한 경우라고 했다.

2007년 5월 이전에 입국한 탈북자들은 거주지 주소가 모두 경기도 안성시로 등록되어 주민번호 뒷자리가 획일화됨에 따라 중국 정부가 탈북자임을 쉽게 알아챌 수 있었지만, 김 씨는 현 거주지를 기준으로 주민등록번호를 발급받을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된 이후에 하나원을 수료했기 때문에 비자 발급을 거부당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는 것이다.

결국 김 씨가 중국에 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현재로서는 주민등록번호를 완전히 바꾸는 길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 김 씨의 상태가 언제 급격히 악화될지 알 수 없는 가운데, 이 방법도 모녀의 마지막 상봉을 이루어줄 수는 없어 보였다. 주민등록번호 변경은 2007년 5월 이전에 입국한 탈북자들에게만 적용된다고 했다.

그야말로 눈앞이 깜깜할 정도로 상황은 악재(惡材)의 연속이었다.

현재 김 씨는 그나마 눈을 뜨고 사람을 알아보던 엊그제와는 달리 눈도 뜨지 못하는 상황이다. 거기에 복부 출혈까지 겹쳐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고 있으며, 고통 때문에 매 번 진정제를 투여해야 겨우 잠들 수 있는 형편이다.

그는 육체적 고통에 딸에 대한 그리움까지 겹쳐 밤낮을 뜬 눈으로 눈물로서 지새우고 있다. “어머님, 이제 곧 딸이 온답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기자의 위로도 자식을 그리워하며 꺼져가는 생명의 불꽃을 간신히 되살리고 있는 어머니의 모정(母情)을 덮을 수는 없었다.

사연이 너무나도 안타까운 나머지 위험을 무릅쓰고 병상을 수시로 방문하며 이들 모녀의 마지막 상봉을 이루어주려는 노력은 지금 다방면으로 진행되고 있다. 비록 직접적인 상봉은 사실상 불가능해진 상황이지만, 인터넷 화상 대화나 휴대전화 단말기의 화상 전화를 통해서라도 마지막 상봉을 이루어주려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그나마 병실에는 인터넷이 들어올 수 없고, 어머니 고 씨는 움직일 수조차 없으며, 무선(無線) 인터넷으로는 화상 대화가 어렵고, 화상 전화가 가능한 휴대전화 단말기도 이곳 인근에서는 구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신고에 대한 우려 때문에 병원 관계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최근 다시 전화통화를 가진 딸 김 씨는 이제 거의 자포자기의 상황에 빠져든 듯 했다. 기자의 마음도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이들 모녀의 안타까운 상황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면서도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는 스스로의 처지에 대한 자책감이었다.

지금 베이징(北京)에서 수교 60주년의 자축을 벌이고 있는 북한과 중국 정권이 이들 모녀에게 마지막 만남조차 허락하지 않고 있는 사이, 또 다시 해가 저물고 하루가 지나는 지금 어머니 고 씨는 하루가 다르게 체온을 잃어가고 있다.

이들 모녀는 지금 도움의 손길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 탈북자를 국민으로 헌법에서 분명히 명시하고 있는 대한민국 정부든 누구든, 누군가가 나서서 이들 모녀를 도와줄 수 있다면, 어머니 고 씨는 비로소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이고, 딸 김 씨도 평생의 응어리를 안고 가지 않아도 될 것이다. 기자의 마음도 하루하루 초조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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