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가지의 형상으로 변모하는 연약한 물이 한 자리에 우뚝 선 바위를 꿰뚫고 깎아 내려 마침내 가루로 산산히 부스러뜨리듯, 부드러움이 강함을 꺾는(柔能制剛) 원리를 이용한 격투기이다.
겉보기에는 유도(柔道)와 상당히 비슷하지만, 실용성보다는 예(禮)와 멋을 중시한 탓에 상대방의 강력한 타격 앞에서는 그만 무력해지고 마는 유도와는 다르다.
이 격투기는 팔과 다리의 길이 등 신체적 차이가 존재하는 3차원의 허공이 아닌 모두의 신체적 조건이 동등해지는 2차원의 바닥으로 상대를 끌어내려 인체(人體)를 오만가지 형상으로 변화시킴으로서 제압하고 있다. 즉, 작은 체구가 큰 체구를 능히 제압하는 격투기이다.
이 격투기가 90년대 초 처음으로 UFC라는 세계 최대 규모의 종합격투기(MMA)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미국인들은 경악했다.
체중 100kg이 넘는 거구의 아마 레슬러와 빠른 펀치와 킥의 콤비네이션을 구사하는 킥복서들이 이 격투기 앞에서 어이없이 연달아 패배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신체적 우월성을 믿고서 방심하다가 ‘바닥’이라는 공통된 세계에서 패배의 쓴 맛을 보아야만 했다.
그리고 3년에 걸친 패배를 거쳐 전 세계의 격투가들은 이 격투기를 필수 훈련 코스로 받아들였으며, 중세기 일본(日本)에서 시작된 이 격투기는 브라질에서 보다 발전되고 미국에 전수되어 21세기 초 한국에도 상륙하게 되었다.
날카로운 일본도(日本刀)를 피해 생겨나다
브라질리안 주짓수(Brazilian Jiu-Jitsu).
브라질리안 주짓수. 약칭으로는 BJJ, 한자로는 유술(柔術)로 알려지고 있는 이 격투기는 킥복싱, 아마 레슬링과 더불어 현대 종합 격투가들의 필수 트레이닝 코스이다.
종합격투기 시합을 단 한 번이라도 시청한 바 있는 독자는 복싱과 무에타이(타이복싱) 등 내노라 하는 입식 타격가들이 경기 시작 불과 몇 초 만에 다리를 붙잡힌 채 바닥에 나동그라져 허둥거리다 암바(Arm-bar) 등에 걸려 항복하는 장면을 종종 보았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BJJ이다.
BJJ는 탄생부터가 철저히 타격을 피해 상대방을 바닥에 넘어뜨림으로서 신체적 차이를 완화시킨 뒤 꺾고 조르고 던져 제압하는 형태로 창안되었다.
BJJ는 특별한 창시자는 없으며, 중세 일본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전장터에서 병장기를 잃어버린 사무라이들이 사방에서 난무하는 날카로운 일본도(日本刀)를 피해 적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후 BJJ는 20세기까지 다양한 무사(武士) 가문에서 전수되었으며, 마에다 미츠요(前田光世. 일명 ‘콘데코마’)라는 유술가가 브라질로 이민하면서 브라질에 전수되었다(당시 일본 정부는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을 목표로 유술에서 매치기만을 특화시킨 유도를 만들어 국기(國技)로 보급한다).
콘데코마는 브라질의 유력가이던 그레이시(Gracie) 가문에 유술을 전수했으며, 형제들과는 달리 체격이 작고 허약했던 소년인 엘리오 그레이시(Elio Gracie)는 수많은 일명 ‘도장 깨기’ 등을 통해 자신의 조건에 맞게 BJJ를 발전시켜 브라질 전역에 이 격투기를 보급하는 대부의 역할을 했다.
따라서 현대 BJJ의 창시자는 바로 이 엘리오 그레이시로 평가되고 있다(그는 올해 1월 향년 95세로 사망했다).
80kg이 수백 명의 100kg들을 누르고 3차례 챔피언에 등극하다
발원지라 할 수 있는 일본도 외면했던 BJJ가 브라질을 벗어나 전 세계의 주목을 끌게 된 것은 93년 미국에서 첫 개최된 세계 최대 규모의 MMA 대회인 UFC에서였다.
당시 참전한 엘리오의 차남 호이스 그레이시(Royce Gracie)는 180cm의 신장에 80kg이라는 빈약한 신체 조건으로 평균 체중 100kg의 격투가들을 모두 제압하고 마침내 초대 챔피언 자리를 차지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UFC 무대에서 호이스가 보여준 BJJ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빈약한 호이스는 거구의 격투가들을 모두 바닥에 쓰러뜨렸으며, 바닥에 쓰러진 그들은 마치 거미줄에 걸린 곤충 마냥 허우적거리며 호이스의 포위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호이스는 그들을 바닥이라는 거미줄에 꽁꽁 묶어둔 채 독침(獨寢)을 꽂을 기회만을 노렸으며, 마침내 목을 조르고 팔을 꺾으며 어깨를 탈골시킴으로서 태그아웃을 이끌어 냈다.
당시까지만 해도 이소룡(李小龍)식 입식 타격기에 열광하던 미국인들은 이 기괴한 격투기에 놀라움도 잠시 찬사를 보내기 시작했으며, 점차 화려한 입식 타격보다 BJJ와 같은 그래플링(Grappling)에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호이스가 3차례 연거푸 UFC의 왕좌를 차지하자 이에 자극을 받는 전 세계의 모든 종합 격투가들은 이 BJJ를 킥복싱 및 아마 레슬링과 더불어 필수 트레이닝 코스로 받아들이기에 이르렀다. 현재 전 세계에서 치러지는 종합 격투기 대회의 선수 판도는 레슬러와 비(非)레슬러로 양분되었던 과거와는 달리 BJJ를 정통으로 훈련한 선수와 BJJ를 부가적으로 훈련한 선수로 양분되어 있다.
전자에는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와 아오키 신야, 가브리엘 곤자가, 호나우도 ‘자카레’ 소우자, 그리고 데니스 강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모두 국제적인 BJJ 대회인 팬암 주짓수 챔피언쉽과 문디알을 비롯해 중동 왕국의 부유한 왕세자가 직접 선수들에게 초대장을 발송해 거액의 상금을 두고 승부를 겨루게 하는 아부다비컴뱃(ADCC) 등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선수들로서 종합 격투기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tip - 일부에서는 러시아의 삼보(Sambo)를 수련한 에밀리아넨코 효도르가 현재 세계 최고의 격투가로 평가받은 것을 두고 삼보도 역시 세계 최고의 격투기인 것으로 평가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삼보 선수 중 MMA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선수는 효도르 한 명 뿐이다. 효도르의 선전(善戰)은 그의 신체가 갖는 월등한 우수성에서 기인된 것이다.
BJJ를 트레이닝한다면 자신을 위험으로부터 지킬 가능성은 대단히 높아진다
미국 보스턴 계열 BJJ를 수련한 존 프랭클린(John Franklin) 연세대 교수에 의해 국내에도 전파되어 현재 그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는 BJJ는 브라질과 미국 등을 거치면서 상당히 서구화된 분위기를 갖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도(道)적인 측면을 중요시하는 태권도(跆拳道. Taekwan-do)나 공수도(空手道. Karate), 유도(柔道. Judo) 혹은 헝그리십(Hungryship) 정신이 지배하는 복싱 등과는 달리 BJJ는 상당히 개방적인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다.
품새 등 형식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호신(護身)이나 다이어트 등 각자의 목적을 위해 트레이닝 하는 것만이 존재할 뿐이다. 도복(道服)도 화려한 패치를 붙여 장식할 수 있으며, 꼭 BJJ 전용 도복이 아니라 태권도나 유도 도복이라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 또 경기장에서는 도복 없이 일상복에 가깝게 대결하는 종목도 따로 있다.
BJJ는 트레이닝 정도에 따라 다섯 개의 띠를 부여받게 되는데 1단부터는 브라질 본토, 혹은 브라질 본부에서 허가받은 해외 지부에서 엄격한 심사를 통해 띠를 부여받게 된다. 일부 타 무도에서 존재하는 형식적인 승단은 BJJ에서 허용되지 않는다.
BJJ를 훈련한 개인은 자발적 의사에 따라 국내에서 진행되는 BJJ 연합대회, 혹은 ADCC과 같은 세계적인 그래플링 대회에도 출전할 수 있으며, 의지가 있다면 MMA에도 진출할 수 있다. 실제로 국내의 상당수 BJJ 도장이 MMA 코스를 겸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듯 BJJ는 머나먼 과거에 시작되었음에도 현대적이고, 동아시아에서 시작되었음에도 상당히 서구적이다. 또한 상당히 개방적이며, 그 무엇보다도 실전(實戰)에 강한 것이 입증되었다.
물론 BJJ가 타 격투기들에 비해 무조건적으로 강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격투술은 수단일 뿐 승패를 가름 짓는 것은 개개인의 실력과 의지이다. 어설픈 BJJ 선수는 오히려 빠르고 강한 복서의 펀치 한 방에 뒤로 넘어지고 말 것이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BJJ를 제대로, 그리고 열심히 훈련한다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 어떤 격투기보다도 더 자신을 위험에서부터 구하고 타인 또한 구할 수 있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아짐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제아무리 신장 2미터에 체중 100kg의 거구라 할지라도 양 허벅지로 자신의 목을 휘감은 채 뇌로 가는 산소의 차단을 노리는 한편 팔을 붙잡고서 온 몸의 체중으로 어깨 탈골을 노리고 있는(Triangle-choke) BJJ 수련자를 당해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tip - 더불어 때리고 맞은 흔적 때문에 종종 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되는 억울한 상황에서도 BJJ는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일단 기술에 걸려들면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 밀려들지만, 그 외상은 전혀 남지 않는다.
tip - 올해 초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베이커즈필드의 9살 짜리 소년이 인근을 산책하던 12살 소녀를 공격하는 맹견(猛犬)을 BJJ 기술 중 초크(choke - 목 조르기)로 제압한 것이 베이커즈필드뉴스 등 외신에서 보도되어 화제가 된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tip - 아래는 BJJ 국제대회 동영상. 간단한 광고 뒤 BJJ의 세계를 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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