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 군사혁명 반세기. 그날 아침 기억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얘야, 쿠데타 났단다“며, 어머니가 다급한 목소리로 방문을 두드려 늦잠 자던 나를 깨웠다. 순간 뇌리를 스친 전광석화(電光石火) 같은 상념-”이제 죽었구나“ 그러나 나 개인이 죽든 말든 박정희 쿠데타는 산업화 성공이라는 엄연한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국가적으로나 국민적으로, 나 개인이 죽게 된 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5.16 산업화’ 이후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 ‘복어 알 주워 먹고 일가족 사망’ ‘어제 밤 걸인(乞人) 동사(凍死)’ ‘연탄가스 중독 사망’ ‘절량(絶糧)농가’ ‘국민소득 80달러’...이런 것들이 선사(先史)시대 신화(神話) 만큼이나 먼 이야기가 되었다는 게 엄청 더 중요하다.
“박정희는 여하튼 그런 업적을 만들어 냈지 않으냐?”는 말의 ‘여하튼’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는 견해가 물론 있다. 좌파 뿐 아니라 광의(廣義)의 우파 가운데도 있다. 그러나 역사는 ‘여하튼’으로 창출되어 온 사례가 많다는 것을 부인하긴 어렵다. 박정희의 ‘여하튼’은 다른 사례들의 ‘여하튼’에 비하면 코스트가 훨씬 덜했다는 비교우위론도 있다.
1961년 당시의 한국사회에는 국가가 주도하는 자본주의적 근대화론, 시민사회가 주도하는 자본주의적 근대화론, 민중주의적이고 다분히 비(非)자본주의적 근대화론, 대충 이 세 가지 의견들이 엇갈려 있었다. 5,16 군사혁명은 말하자면 첫 번째 의견이 다른 의견을 압도하고 제어(制御)한 사태였다.
앤터니 기든스는 이런 것을 ‘국가선호(國家選好, state preference)'의 관철이라고 불렀다. 국가의 의지를 다른 의지들보다 압도적인 것으로 만드는 ’국내평정(domestic pacification)'-근대 초기에 절대왕정 군주들이 봉건영주들을 평정해 통일 국가를 만든 것 같은 것이다. 국내평정이야말로 국가선호 관철의 첫 발이다. 박정희 쿠데타는 결국 국내평정이었다. “쉿, 시끄이!” 한 천하일통(天下一統)이었다.
국가가 주도하는 자본주의적 근대화를 성공시킨 동력(動力)은 박정희라는 개인의 독특한 리더십이었다. 조셉 나이는 국내언론(중앙일보)과 가진 한 인터뷰에서 박정희 근대화 방식을 “다른 사람이라면 좀처럼 하지 않았을(못했을), 아슬아슬한(실패할 수도 있는) 모험”이었다고 말했다.
박정희 개인을 떠나 “산업화? 그건 누구든지 할 수 있었어"라고 말하는 논리적 조작은 부질없다는 시사(示唆)인 셈이다. ‘구조’만 따지는 사회 ‘과학’은 ‘개인의 역활’을 그다지 중요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남다른 개인이 역사를 창출해 내는 사례를 사회 ‘과학’이라 한들 도외시 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8.3 조치로 기업들에 여유 돈을 왕창 안겨주었지만, 박정희 자신이 바랐던 것처럼 기업들이 그 돈을 중화학 공업 투자에 곧이곧대로 쏟아 부을 것이란 것을 대체 어떻게 장담할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당시 필자가 만난 한 미국 학자도 “도대체 기업들 등에 피스톨을 들이대고서 여기 투자 해, 라고 말하는 식으로 시장경제를 만들어가고 발전시키는 사례를 일찍이 본 적이 없다“며 신기하게 여겼다.
이런 박정희 근대화를 ‘종속(從屬)의 길’이라고 말하던 ‘이론’들은 박정희 근대화의 결과물 앞에서 고사(枯死) 했다. 우리 현대사에는 민주화 흐름의 자리도 물론 분명히 있다. 1987년의 민주화 조치로 산업화 흐름과 민주화 흐름이 대한민국이라는 대하(大河)로 섞여들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현대사를 ‘종속(從屬)’이라 우기는 입장의 자리는 없다. 없어야 한다.
우리의 산업화는 그 나름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성찰적 시각(時角)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공정’ ‘복지’ ‘양극화 해소’...같은 어젠다들이 그래서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건 모두 대한민국 헌법이라는 가치와 규범의 테두리 안에서 논의돼야 한다.
마찬가지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도 그 나름의 문제점이 생겼다는 것도 에누리 없이 성찰해야 한다. 폭민(暴民)정치, 포퓰리즘, 무절제(無節制) 같은 것 말이다.
중요한 것은 담담(淡淡)함이다. 담담하고 허심탄회한 마음과 눈으로 우리 현대사를 바라보자. 우리가 온갖 간난신고(艱難辛苦)와 열정을 다 해 이룩한 산업화-민주화 반세기의 성취물-대견스럽지 않은가? 이젠 그것을 넘어 그 이후를 디자인 해야 할 때다.
류근일 2011/5/8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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