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금 특파원으로 중국 OO시에 나와 있다. 목적은 북한 내부의 정보를 보다 쉽게 접촉할 수 있는 중국에서 기사를 작성해 독자들에게 정확하고 신속한 보도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항공기가 착륙할 때부터 입국장에 들어서기까지 이 지역에서 받은 첫 인상은 ‘한국의 지방 소도시 같다’는 것이었다. 주변은 거의가 황량한 느낌이었고, 공기는 차가우면서도 맑았으며, 사람들은 한 결 같이 모두 순박해보였다.

하지만 처음의 훈훈한 느낌과 입국장에 들어선 이후의 느낌은 달랐다. 여권을 꺼내들자마자 혹독하다면 혹독한 신고식을 치룬 것이다.

입국장의 긴 행렬이 차츰 줄어들어 필자의 차례가 왔을 때 여권을 받아든 직원은 필자의 얼굴과 여권 사진을 대조해보더니 갑자기 다른 직원을 불러 여권을 주며 뭔가를 지시했다. 그러자 그 직원은 필자의 여권을 갖고 황급히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마 신원 조회를 하러 간 듯 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필자의 여권을 가져갔던 직원이 나타나자 필자를 붙잡아두고 있던 직원은 다시 그에게 뭔가를 지시하며 어디론가 보냈다. 그렇게 두 번의 왕래가 계속되자 필자는 그제야 긴장됨을 느꼈다. 예전에 중국 정부와 관련해 민감하다면 민감한 기사를 보도한 바 있어 긴장감은 한 층 더했다.

다른 한국 여행객들을 포함해 필자 뒤의 행렬은 계속 무사통과되고 있었다. 심사에 걸려 통과하지 못한 채 우두커니 서있는 사람은 필자 혼자뿐이었다. 혹시나 이대로 추방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밀려들었다. 얼마 전 국내의 한 인권운동가가 유럽에서 개최된 국제 인권회의에 참석차 가던 도중 베이징 공항에서 억류되었다가 서울로 추방된 사건도 떠올랐다.

사라졌던 직원이 다시 나타났다. 그 직원이 여권을 건네자 필자를 붙잡아두고 있던 직원은 다시 컴퓨터와 필자를 번갈아 쳐다보며 대조하더니 비로소 여권을 돌려주며 통과를 허락했다.

그제야 긴장이 조금이나마 풀린 필자는 그 직원에게 물어보았다.

“제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명단에) 이름이 같은 사람이 있어서 그랬습니다”

다행히 통과되기는 했지만 뭔가 석연치않은 통과였다. 필자가 중국 정부의 블랙리스트(black list)에 올라가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왠지 중국 생활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이대로 다시 비행기에 올라 서울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필자는 그 길로 짐을 찾고 공항을 나와 예정된 곳으로 향했다.

오는 길에 도로변에서 붉은 색으로 ‘OO 호텔’이라 쓰여진 간판을 발견했다. 후에 마을 주민에게 물어보니 북한 국가안전보위부(보위부) 요원들의 근거지 역할을 하는 곳이라고 했다. 그들은 현재 이곳에서 정보를 수집하며 방첩(防諜) 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무고한 탈북자들을 색출해 갖은 고문이 기다리고 있는 북한으로 다시 끌고 들어가는 만행(蠻行)을 저지르고 있다.

호텔의 정체를 일러준 주민은 보위부 요원들의 근거지 역할을 하는 건물이 이 근처에 산재해 있다고 귀띔해 주었다.

숙소는 깨끗하고 넓었다. TV와 냉장고, 가구 등 생활에 필요한 물품은 모두 갖춰져 있었으며, 쌀도 비치되어 있었다. 간단히 요기를 하고 잠시 누워 피로를 푼 뒤 필자는 곧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사람은 많았고, 정보도 많았다.

그런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필자의 얼굴을 다시금 굳어지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필자는 만약을 위해 작업 중에는 OO은행의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해킹 및 바이러스 방지 툴을 항상 켜두고 있다. 일반 바이러스 백신 프로그램보다는 은행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더 효과가 있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바 있어서이다.

그런데 어느 날 무심코 이 프로그램을 열어 지금까지 차단된 해킹 및 바이러스의 목록을 보자 숫자 211로 시작하는 한국과는 다른 처음 보는 IP주소가 등록되어 있었다. 각각 62와 218로 시작하는 주소였다.

필자는 급히 IP주소 추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웹사이트를 찾아가 이 주소가 발신된 국가를 찾아보았다. 헝가리와 베이징(北京)이었다. 62로 시작하는 헝가리에서는 필자의 컴퓨터로 침입(inbound)을 시도했고, 218로 시작하는 베이징에서는 웜(worm) 바이러스 유입을 시도했다.

구소련이 붕괴하기까지 과거 동구권 국가였던 헝가리는 지난 2006년 현지에 주재하고 있던 북한 외교관 가족이 한국 대사관을 통해 망명을 했던 곳이다. 지금도 그 곳에는 북한 외교관들이 파견되어 있고, 공작원들도 파견되어 있다. 그것은 북한 대사관이 설치된 베이징도 마찬가지이다.

더구나 북한은 현재 중국의 인터넷 망을 사용하고 있다. 베이징발 바이러스 유입 시도는 평양에서의 직접적인 행동일수도 있었다.

침이 바짝 마름을 느꼈다. 필자는 직업의 특성상 지금까지 많은 탈북자들과 접촉을 가졌고 또 북한 내부로 직접 자유의 목소리를 담아 전파를 쏘아 보내고 있기도 하다.

필자와 같은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마찬가지이겠지만, 필자의 사진과 이름도 필시 북한 보위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을 것이었다. 그들이 만약 필자가 중국에 입국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소재지를 찾아내기 위해 요원들을 풀었을지도 모른다.

2000년대 초에 납북되어 사망한 故 김동식 목사와 작년 12월 중국 심양(瀋陽)에서 불의의 사고로 명을 달리한 故 조계창 특파원이 뇌리에 스쳐가고, 헝가리와 베이징에서의 해킹 시도가 바로 그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미치자 안심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엊그제 지인(知人)과의 대화 도중 “만에 하나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외교통상부에 즉시 전화해 달라”고 말해 두었다. 그 분은 “설마 그런 일이 있기야 하겠는가”라며 필자를 안심시키려 했지만 ‘남측 민항기 안전담보 불가’등이 언급되는 민감한 시기에 사지(死地)로 들어온 마당에 사람의 앞일을 어찌 알겠는가. 그저 그 분의 배려가 고마울 뿐이었다.

지금 이 지역의 풍경은 평화롭디 평화롭다. 엄마와 함께 나온 아이들은 뛰어 놀고, 수염을 길게 기른 영감님은 자전거를 타고 가며, 서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파랗고 청명한 하늘에는 흰 구름들이 두둥실 떠 있다.

하지만 필자는 지금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고 있다. 해킹 시도는 뚝 끊겼지만 바이러스는 계속 차단 목록에 뜨고 있다. 해킹 시도가 끊겼다는 것은 그들이 필자의 소재지를 알아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얼마 전부터 필자의 숙소 앞에 주차되어 있는 몇 대의 차량들에 대한 의심이 그저 신경성 과민에 의한 기우(杞憂)에 그치길 바랄 뿐이다.

*필자는 작년 탈북자 출신의 한 북한인권 운동가로부터 필자의 글이 북한 보위부의 첫 번째 검색 목록에 들어가 있다는 말을 들은 바 있다. 따라서 필자의 소재지를 파악할 수 있는 지역명이나 건물명, 사진 등은 공개할 수 없음에 양해를 구한다.

*취재일기를 모두 작성한 직후 또 다시 일본발 해킹이 시도되었음을 밝혀둔다. 단순한 해킹인지, 필자를 노린 해킹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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