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해는 지고 저녁별 반짝이는데…
|
|
정월 초하루 새벽이 되면 해가 솟아오르는 장엄한 경치를 보기 위하여 동해안의 정동진을 찾아 달려가는 젊은이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일출은 지구 어디에서나 벅찬 감격의 시간을 마련해줌이 당연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해 뜨는 광경 못지않게 또한 장엄한 것이 해가 지는 광경이라 하겠습니다. 넓은 바다를 배경으로 하고 때로는 험한 산을 배경으로 하고 어쩌다 바라보게 되는 일몰이 또한 장엄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던 때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자기 삶의 황혼을 절실하게 느낀다는 것은 가능한 일이라고 여겨집니다.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세월 가는 줄 모르고 분주하게 살던 사람도 어느 듯 “해는 지고 저녁별 반짝이는” 저녁이 되면 조용히 앉아 자신의 살아온 길을 돌이켜 보게도 되는 법입니다.
“늙고 병들어 요를 깔고 누워서 앓다 죽는 것”은 매우 사람답지 못한 삶이라는 큰 자부심을 가지고 젊은 날을 정의를 위한 싸움으로 일관했겄만 성삼문처럼, 안중근처럼, 윤봉길처럼 그렇게 살다 그렇게 가는 영광은 나 같은 범속한 인간에게는 결코 허용될 수없는 한갓 “애달픈 꿈” “어리석은 꿈”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결코 용기가 없었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죽는 것은 하늘이 극소수의 선택된 이들에게만 허락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황혼에 들려오는 저녁 종소리”를 들으며 나는 이제 떠날 날을 준비하는 한 초라한 노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나의 석양 빛을 바라보면서 나에게 정말 못할 짓을 하고 나를 곤경에 빠뜨렸던 사람들의 이름을 일일이 되새기며 조건 없이 용서한다고 한 마디 전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 반면에 나 때문에 상처를 받은 이들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만일에 있다면 한 사람씩 찾아가 무릎 꿇고 사과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시인 테니슨이 마지막 읊은 노래에서처럼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어, 파도는 나를 멀리 싣고 갈지나, 나 주님 뵈오리 직접 뵈오리, 하늘나라 그 항구에 다달았을 때” - 이 구절을 읊조리며 나의 남은 날들의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하여 살기 원합니다.
김동길
www.kimdonggill.com
|
|
|
|
 전체 독자의견: 3 건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