획일적인 고시(考試) 제도가 그 나름의 한계와 경직성과 타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고시 위주로 하다 보면 책상머리 책벌레들만 혜택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조직이 관료화되고 특권화 될 수도 있다. 정보화 사회와 연성(軟性) 사회가 필요로 하는 다양성, 상상력, 특성화, 감성이 억압받을 수도 있다. 이명박 정부가 고시제도 대신 특채 제도를 고려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 일단 제기됐을 법한 아이디어였다.

 그러나 고시제도의 상당한 정도의 불가피성 또한 경시할 수 없다. 채용 과정을 제멋대로 주물럭 주물럭 조작하려는 시험관들이 엄존하는 한, 특채가 ‘엿장수 마음대로’에 내맡겨질 우려가 아주 크기 때문이다. 그런 일들은 이미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추천’ 제도도 정착해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추천’은 아직도 충분히 믿을 게 못 된다. 우리 사회엔 신뢰와 책임성이 정착해 있지 않다. 한 마디로 믿을 수 없는 사회다. 이른바 빽이라는 것도 여전히 유효하다. 정실(情實)과 ‘끼리끼리’도 그대로다.

 이런 폐단을 방지하고 그나마 공정성을 기할 수 있다고 해서 도입된 것이 고시제도였다. ‘특채=정실=빽=끼리끼리’가 상존하는 한 시험제도는 그래서 여전히 최소한의 방부제 노릇을 한다는 주장이 등장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우리 사회는 아무리 ‘선진화’ 운운 해도 역시 객관성에 앞서 주관성이 상당히 작용하는 ‘동양 사회'다. 매뉴얼보다는 “세상이 다 그런 것 아냐?”가 꽤 큰 힘을 쓰는 사회다. 오죽했으면 김영삼 대통령이 김대중 비자금설을 수사하지 못했고, 이명박 대통령이 노무현 비자금설을 조사하지 못하는가? 세상이 어디 논리대로인가?

 세상이 다 그렇고 그렇게 돌아가는 한 특채 위주는 그렇고 그런 해먹기 판을 더 키우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렇다고 고시제도가 유일한 최선이라고 말할 수도 없겠지만 말이다. 정부와 사회가 더 고민할 문제다.

류근일 2010/9/9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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