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3월23일 미국에서 건강보험개혁법이 공식 발효됐다. 이 법은 전 국민이 건강보험(한국으로 치면 의료보험)에 가입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 법에 대해 공화당은 격렬하게 반대했다. 미국인 3억 명 중 절반이 반대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논란의 이유는 미국의 자유주의 전통에 기초한다. 기업형 보험이 발달한 미국은 한국과 달리 전 국민 건강보험이 아닌 기업형 건강보험을 운용해왔다. 한국으로 치면 삼성화재, AIG보험 등이 의료보험 사업도 해온 셈이다.

그러나 건강보험개혁법이 통과되면서 미국에서도 전 국민 건강보험 시대가 열렸다. 이에 대해 자유주의 시장운용을 앞세운 공화당과 소수자·약자 보호를 내세운 민주당은 첨예하게 대립했다.

미국 내 이민자 등 소수자·약자의 지지에 힘입어 당선됐고 특히 대선공약의 핵심이었던 까닭에 오바마 대통령은 전 국민 절반의 반대를 무릅쓰고 건강보험개혁법을 밀어부쳤다.

건강보험개혁법이 논란이 된 또 다른 이유는 ‘낙태’였다. 최초 이 법안은 낙태에 대한 정부지원도 포함됐다. 그러나 민주당 내에서도 반대여론이 커서 오바마 대통령은 조건부 법안을 만들었다. 즉 23일 건강보험법에 서명한데 이어 다음 날인 24일에는 낙태시술에 정부기금이 이용될 수 없는 내용의 대통령 행정명령을 발효시킨 것이다. 따라서 건강보험개혁법이 ‘낙태지원법’이라는 비난은 일단은 무마됐다.

건강보험개혁법은 미국사회의 거대한 방향전환을 의미한다는 분석이 많다. 건강보험이 미국경제의 6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엄청난 영역인 탓이다. 따라서 이 법의 통과는 국가가 미국 경제 6분의 1을 장악해 ‘유럽식복지모델’로 들어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위 ‘유럽식복지모델’은 세율인상을 영구화(永久化)시키고 관료체제를 팽창시켜 경쟁력과 진취성을 질식시키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른바 대처리즘은 이 같은 사회주의적 폐단을 자유주의 모델로 극복한 것인데, 오히려 미국은 과거의 유럽모델로 좌(左)선회하게 됐다.

종교적 직관을 가진 이들은 자유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방향조정이 권력의 집중을 낳고 이것이 결국 적(敵)그리스도의 탄생을 가능케 할 것이라 우려한다. (물론 미국은 물론 유럽, 중국보다 훨씬 더 ‘사회주의적’ 경제운용을 하고 있는 한국입장

에서는 이런 비판이 궁색하다.)

2.

건강보험개혁법이 많은 우려를 낳고 특히 미국 인구 절반이 반대하는 과정에서 온갖 음모론도 대량생산(?)되기 이른다. 대표적인 것이 국가가 전 국민에게 36개월 이내에 마이크로칩을 삽입하는 법조문이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적으로 666, 짐승의 표를 삽입한다는 것이다. 이는 기독교인 사이에서 빠른 속도로 번져갔고, 한국에도 블로그에 광범하게 확산돼 있다.

필자는 이 무시무시한 주장을 확인하기 위해 수일 간 복수의 전문적 식견을 갖춘 후배들을 동원해 취재해 보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또는 다행스럽게도 인터넷 상에서 건강보험개혁법의 원문(原文)을 구해볼 수도 없었고, ‘마이크로칩’ 운운한 신문기사도 찾을 수도 없었다. 오직 존재하는 것은 출처불명의 블로그 글들이었다.  

그렇다면 대체 왜 이런 주장이 나오게 된 것일까?

복수의 블로그 글들은 자신들 주장의 근거로 의회기록문서(HOUSE OF REPRESENTATIVES) 3200을 제시한다. 건강보험개혁법 원문을 구할 수 없는 것과 달리 이 문서 3200은 인터넷에서 쉽게 입수할 수 있다.

어이없게도 문서 3200 어디에도 ‘마이크로칩 삽입’ 운운한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블로그 네티즌들이 ‘마이크로칩 삽입’을 주장한 이유는 황당한 오역(誤譯)과 왜곡(歪曲)에 기초한다.

우선 문서 3200에 device 1, 2를 언급한 내용이 있다. device 1, 2는 체내 또는 체외에 삽입하는 의료기기로서 법에서 인공심장, 인공신장과 같은 것을 가리킨다. 문서 3200은 이 device 1, 2의 판매(販賣), 사용(使用) 등에 관해 건강보험개혁법이 규정하고 있음을 설명한다. 헌데 음모론자들은 이 device 1, 2를 체내에 삽입하는 마이크로칩이라고 단정한다. 물론 체내 삽입 의료기기에 마이크로칩이 포함될 수 있을지 모르나 어디에도 그 같은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혹자는 FTA에 device 2의 정의는 verichip(*체내 삽입 원격 조정 마이크로칩)을 정의하기 때문에 문서 3200에서 device 2는 곧 논란이 되는 마이크로칩을 가리킨다고 말한다. 그러나 FTA의 device2에 대한 애매한 정의가 이 글에서 거론되는 마이크로칩이라 해도 문서 3200은 그 같은 체내 삽입 마이크로칩의 판매, 사용에 대한 규정을 말한다. 즉 이 칩을 체내에 전 국민에게 의무적으로 삽입한다는 규정은 없다는 것이다.

둘째, 음모론자들은 마이크로칩을 전 국민에게 ‘삽입’한다는 주장의 근거로 문서 3200에 숱하게 등장하는 ‘inserting’이라는 표현을 든다.

예컨대 문서 1006페이지에 “Cosmetic Act is amended by inserting ‘519(h)’”같은 부분이다. 그러나 이 같은 표현은 기존의 법령인 미용법(cosmetic law))에 건강보험개혁법의 519(h)를 삽입하라는 것이다. 다른 부분에 나오는 inserting이라는 표현 기존 법령에 새로운 법령의 조항을 ‘삽입’하라는 것이다. 음모론자들은 법령 삽입을 마이크로칩 삽입으로 치환하는 놀라운 상상력을 발휘했다!

셋째, 음모론자들은 ‘36개월 내’ 마이크로칩을 전 국민에게 삽입하는 조항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36개월이라는 표현은 건강보험개혁법이 적용되는 시점을 표현한 법조문 내용이다. 이 같은 법적용 시점은 어느 법이나 등장하는 것이다.

3.

필자는 건강보험개혁법 원문(原文)을 확인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것이 진실인지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인터넷 상에서 떠도는 수많은 음모론들 중 사실(事實), fact에 기초한 글은 확인할 수 없었다.

필자가 바쁜 시간을 할애에 황당한 거짓말 확인에 나선 이유는 불법과 거짓이 횡행한 세태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적지 않은 청년들이 이 마이크로칩 음모론을 반미주의(反美主義)와 연결시킨다. 미국은 악마(惡魔)의 제국이라는 것이다. 한반도를 놀이터로 삼아 중국과 전쟁을 내려고 한다는 주장도 여기서 힘을 받는다. 미국은 전쟁 없이 살 수 없는 국가라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당시 미국은 이미 6개월 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말도 한다.

미국이 천사(天使)의 제국이 아니고 프리메이슨이 주도하는 군산복합체(軍産複合體)의 존재도 막강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을 악마(惡魔)의 제국으로 단정할 순 없는 것도 사실이다. 어느 국가든 천사와 악마의 모습, 빛과 어둠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위험한 것은 이 같은 음모론이 반미주의(反美主義)와 결탁해 결국은 한반도에서 친북주의(親北主義)로 귀결되는 것이다. 김정일의 절대적 악행에 대해 침묵 내지 방관해 버린다는 사실이다. 악(惡)을 욕하며 악(惡)의 편이 되는 것이다.

신념은 중요하다. 신앙에 기초한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신념, 거짓을 말하는 신앙은 그와 그가 속한 세상을 파멸로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