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의 레임덕(lame duck. 권력누수)이 가속화되고 있다?

지난달 26일 오후 9시 45분경 서해 백령도 인근에서 발생한 천안함 사건 원인이 너덜너덜하게 찢겨져나간 선체 절단면 등을 근거로 북한군의 어뢰공격일 가능성에 상당한 무게가 실리고 있는 가운데 북한의 의도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이번 사건은 김정일의 방중(訪中) 여부가 대북 관련 최대 현안으로 부상하던 시점에 기습적으로 터졌다. 김정일은 베이징을 방문해서 6자회담 복귀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다시 말해 북한은 체제유지의 생명선이라 할 수 있는 핵무기의 폐기 논의를 앞두고 대남 어뢰공격이라는 초강수를 둔 것이다.

중국은 사건 발생 직후 신속하게 청와대로 위로 전문을 보내온 일본 하토야마(鳩山) 정부와 달리 아직까지 침묵을 지키는 한편 외교라인으로 ‘북한의 소행이 아니다’는 소식을 흘리는 등 난처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암묵적으로 북한을 지원해온 중국은 천안함 사건으로 인해 북중(北中)동맹의 명분을 잃는 것은 물론 주변국들과의 관계가 경색될 위험에 처했다. 중국은 현재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이며, 북한의 대남 어뢰공격은 묵과할 수 없는 엄중한 정전협정 위반 행위이다. 북한은 중국이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할 것을 알면서도 어뢰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을 위해 애써오던 북한의 태도를 고려할 때에도 천안함 어뢰공격은 의외이다.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을 통해 미북(美北) 관계정상화를 이룩함으로서 체제보장을 약속받으려던 북한은 정전협정의 평화협정화(化)는 고사하고 정전협정 위반을 자초한 셈이 되었으며, 급기야 6자회담을 주도해 온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을 포함한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국은 핵공격 제한에서 예외”라고 천명하는 사태에 직면하게 되었다.

대외관계 개선이라는 김정일의 정책 집행을 코앞에 두고 스스로 찬물을 끼얹는 북한의 행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북한은 제17차 남북이산가족상봉을 앞둔 작년 9월 초 황강댐 수공(水攻)을 기습적으로 가해 우리 국민 여섯 명을 살해했다.

남북이산가족상봉을 제3차 남북정상회담의 길목으로 여기고 야심차게 추진하던 북한은 무단방류가 급작스러운 수위 상승으로 인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주장했으나, 기상청 발표 결과 사건 당일 전후로 북한에는 큰 비가 내리지 않았다. 9월 들어 황강댐이 소재한 평강지역에 비가 내린 날은 5일 하루뿐이었으며, 그 날 강수량도 0.2mm에 불과했다. 명백하게 의도적인 군사적 공격이었던 것이다.

북한은 왜, 무슨 이유로 스스로의 정책에 스스로 치명타를 가하는 행위를 자초해왔을까?

황감댐 수공과 천안함 어뢰공격 사건은 세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김정일의 대외관계 개선 정책을 앞두고 기습적으로 터졌다는 점, 북방한계선(NLL)과 비무장지대(DMZ) 이남을 직접 공격해 남한 국민과 병사를 살해했다는 점, 그리고 이전의 대남도발과는 달리 즉각적인 반응을 회피했다는 점이다.

북한은 천안함 사건이 발생한지 보름이 넘어가는 지금까지도 입장을 나타내지 않고 있으며, 황강댐 수공 당시에도 북한은 한 달여 만에야 책임을 회피하며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이 세 가지 공통점을 종합하면 북한은 현재 김정일의 통제 하에 온전히 놓여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본 기자는 지난 1월 북한 최고사령부 통신부대 장교 출신의 탈북자 김용화(가명)씨의 증언을 인용해 김정일이 근래 중증 마약중독에 따른 폭력적인 반응 표출 등 심각한 심신장애를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약 한 달 뒤 원세훈 국정원장이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김정일이 신경질이 부쩍 늘었다”고 밝힘으로서 사실로 입증되었다.

건강이 극도로 악화된 김정일이 레임덕에 빠져 체제 통제력을 상실해감에 따라 그동안 선군(先軍)정치로 막강한 권력을 키워온 김영춘 국방위 부위원장 등 강경 군부세력이 오래전부터 후계자로 지지해온 김정은을 앞세워 김정일과는 별개로 북한의 대외정책을 움직이고 있을 가능성이 제기될 수 있는 것이다.

김영춘은 김정은의 생모 고영희의 생존 당시 ‘고영희 라인’으로 분류될 정도로 측근이었으며, 2004년 국내 언론보도에 따르면 오극렬 국방위 부위원장은 자신이 이끄는 노동당 작전부 소속 공작원들을 동원해 후계 라이벌인 장남 김정남을 오스트리아에서 암살하려한 바 있다.

이를 뒷받침하듯 군부는 2008년 7월 금강산관광객 故 박왕자씨 살해를 시작으로 같은 해 8월 ‘불필요한 남측 인원의 전원 추방’ 통보, 9월 정권수립 60주년 행사의 정규군 불참, 10월 북한이 일방적으로 설정한 NLL침범에 대한 단호한 대처 경고, 11월 개성공단 철수 종용, 2009년 5월 2차 핵실험, 9월 황강댐 수공, 2010년 1월 대남침공 훈련장면 공개 등 이미 2년 전부터 북한의 핵심적 대외정책들을 집행해왔다.

[김정일의 오리걸음(lame duck) 이후 세 갈래의 길목에 서게 될 한반도]

군부의 독자행보 수위가 높아지는 만큼 김정일의 절름발이 오리걸음(lame duck)은 지금 가속단계에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커트 캠벨(Kurt M. Campbell)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지난달 서울을 방문해 비공식 면담 자리에서 김정일의 남은 수명은 3년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김정일 집권시절과는 다른 방식으로 북한에 접근해야 한다. 그리고 중국이나 쿠바와 같은 일반 독재세력의 개념으로 접근해서는 안 되며, 유일신(神)이 다스리는 중세기 왕조세력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역사상 왕조세력은 통상 사회와 중앙정부가 안정된 상태에서 후계자가 확실한 인물일 경우 권력이 순탄하게 이양되었지만, 사회가 어지럽고 중앙정부에 파벌이 조성된 상태에서 후계자가 불확실한 인물일 경우 십중팔구 거센 피바람 속에 빠져들었다. 지금의 북한은 후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질 경우 이후의 상황은 남한 주도의 북진통일, 궁지에 몰린 북한 군부의 남침 공산통일, 중국을 포함한 유엔(UN) 주도의 북한 지역 신탁통치와 같은 세 가지의 시나리오를 생각할 수 있다.

어느 것 하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몰락을 극복할 수 없음을 깨달은 북한은 체제유지를 위해 이미 작년 3월과 올해 2월에 2012년 통일강성대국을 천명한 채 미 증원군을 막을 핵무기 개발에 몰두하고 있으며, 지난달 18일 서울방송(SBS)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근래 한미 양 국과 함께 북한 급변사태시 개입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반세기 동안 통일을 염원해 온 우리로서는 북한 주도의 공산통일이나 중국이 개입하는 유엔 주도의 신탁통치를 용납할 수 없음은 명백하다. 세계 톱 수준의 천연자원이 매장된 북한과 자본을 가진 남한의 자유통일은 국토수복과 민족해방 달성과 더불어 한민족을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이르게 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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