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박이 어떤 사람인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좀 더 지켜봐야 그의 행동의 전모와 성격을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가 김정일 정권을 정면으로 규탄하면서 고함을 지르며 공개적으로 국경을 넘어갔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전율을 느낄 만하지 않은가?

 그의 행동은 우선 “날 죽여라”는, 몸을 던지는 식이었다. 유신 정권과 신군부 정권에 대해 남한의 젊은이들이 ‘불복종(civil disobedience)’과  ‘분신(焚身)’으로 항의한 적이 있다. “날 죽여라”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로버트가 항의한 상대방은 과거의 남한의 권위주의보다 수 백배, 수 천배 더한 세계 최악의 탄압권력이다. 그런 김정일 정권의 철옹성에 한 젊은이가 온 몸을 던져 돌진했다? “전쟁 나면 도망가겠다”고 한다는 남한의 일부 청소년들과는 확실히 다른 유형의 사람인 모양이다.

 진상이 밝혀지기 전이긴 하지만 지금의 시점에서도 한 가지만은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김정일에 항의한 것 못지 않게 남한 국민들을 향해 이렇게 외친 셈이라고. “당신들은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왜 그렇게 무관심하냐?”

 ‘합리주의자’들은 로버트 박의 행위를 하나의 ‘해프닝’ 정도로 보려 할 것이다. 그러나 세상사는 ‘합리적’ ‘논리적’으로만 전개 되는 것은 아니다. 결사적인 심정과 확신을 가진 개개인의 의지적 몸부림-이것은 ‘합리’와 ‘논리’를 뛰어 넘는, 세상의 꿈틀거림의 의외의 불씨가 된 적도 꽤 있다. 지금 쯤 로버트 청년의 신상에 어떤 험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궁금하다. 동기 못지 않게 끝이 좋기를 바라기에.

류근일 2009/12/25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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