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희(金賢姬)씨가 2003년부터 현재까지 가족들과 함께 도피생활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金씨는 한반도 분단사가 만들어 낸 또 다른 비극의 주인공이다. 그는 1987년 88서울올림픽을 훼방하기 위해 북한정권이 저지른 대한항공 858기 폭파의 2인조 폭파범 중 한 명이었다. 이 사건으로 탑승했던 승객과 승무원 115명 전원이 사망했었다.

폭탄이 설치된 858기가 기착했던 UAE 아부다비 공항에서 체포된 金賢姬씨는 한국으로 송환됐고, 대법원에서 사형판결이 확정됐었다. 그러나 그는 이 사건이 북한이 저지른 국가범죄였음을 입증하는 산 증인으로서 특별사면 처분을 받고 자유의 몸이 되었다.

<이디 아민이 지배했던 우간다에서나 있음직한 인권유린>

金賢姬씨의 도피생활이 알려진 계기는 노태우(盧泰愚) 정부 시절 안기부 제1특보였던 이동복(李東馥) 북한민주화포럼 상임대표가 전달받은 한 통의 편지였다. 李대표는 지난달 말 안기부 직원 출신인 金씨의 남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金賢姬가 쓴 편지를 갖고 있다. 만나자』는 내용이었다. 그날 저녁 이 대표는 한 식당에서 金씨의 남편을 만나 金씨가 직접 쓴 편지를 전달받았다.

편지 내용은 한 마디로 충격적이었다. 좌파 정권 10년 동안에 국가정보원과 친북ㆍ좌파 세력들은 국가기관과 TV방송매체들을 조직적으로 동원하여 KAL기 사건 조작 의혹을 부풀리는 기획 공작을 꾸몄고, 金賢姬씨는 방송과 인터뷰 하라는 국정원 지시를 거부한 뒤, 살던 곳에서 추방당해 5년째 도피생활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李대표의 표현을 빌자면, 『친북`좌파세력들은 金賢姬와 그의 가족에게 과거 이디 아민이 지배하던 우간다에서나 있었음직한 인권유린 행위를 자행했다』는 것이다.

<73페이지에 서술된 국정원의 압력>

73쪽에 달하는 편지에는 金씨가 지난 정권 국정원으로부터 받은 지속적 압력이 상세히 적혀 있다. 그들은 金씨에게 『858기 폭파사건은 북한이 저지른 것이 아니라 남한에 의하여 조작된 것』이라는 내용의 「양심선언」을 강요했었다.

이들은 첫 번째 공작이 여의치 않자, 두 번째 공작에 나섰다. 金씨에게 TV와 방송을 통해 『858기 폭파사건을 김정일(金正日)이 지시하지는 않았다』는 내용만이라도 「양심선언」을 할 것을 끈덕지게 강요한 것이다.

최초 국정원과 친북`좌파세력의 압박이 시작된 시기는 2003년 11월 중순경이었다. 국정원의 끈덕진 인터뷰 요구로 金씨의 남편이 국정원 담당간부에 불려나간 사이, MBC PD수첩의 취재기자들이 金씨의 집을 습격했다. 이날 새벽 金씨는 어린 자식들을 업고 다른 곳으로 피신했지만, 다시 SBS취재기자들이 집 주변을 취재하고 돌아다녔다.

金씨는 『국정원 담당관이 MBC 방송에 출연하거나 인터뷰해줄 것을 재차 요구하는 논쟁 과정에서, MBC의 습격사건은 바로 국정원에 의해서 저질러진 것임이 탄로 나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이어『국정원이 경찰당국, 방송사들과 서로 연계하여 공작사업을 추진해 왔음을 알게 되었다』며 『저를 두고 국정원은 정보관리를, 경찰당국은 보안 관리를 각각 나누어 맡고 있기 때문에 저와 관련된 사업을 추진함에 있어서 그들은 서로 공조체계를 구축하지 않으면 안 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金씨 가족은 이날 이후 현재까지 만 5년 동안 원래 살던 보금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피난 생활을 하고 있다.

<국정원이 방송사에 특별지원>

방송3사들은 사건 16주기를 전후로 해서 MBC는 「PD수첩」 프로그램에서, SBS는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KBS는 2부작 「일요 스페셜」에서 「金賢姬, 그는 누구인가」, 「16년간의 의혹과 진실」 등의 제목으로 대한항공 폭파사건에 의문을 제기하는 프로그램을 잇달아 내보냈다. 金씨는 이 과정에서도 한 국정원 관계자로부터 『사건 16주년을 맞아 방송사들에 특집방송 지원을 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역시 국정원이 이 모든 공작을 지휘했다는 주장이었다.

문제는 이들 방송 내용의 진실성이었다. 金씨는 『국정원이 지원했다는 프로그램을 보니 하나같이 「안기부 수사는 엉터리였다. 金賢姬는 거짓말을 했다」고 성토하는 내용이었다.』며 『방송사들이 안기부의 수사 의혹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데, 국정원이 이를 계속해서 지원했다는 것을 납득할 수 없었다』고 했다.

金씨는 당시 방송 3사가 제기한 의혹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우선 의혹을 풀기 위해선 당시 안기부 수사 책임자들을 취재하는 것이 기본인데, 방송사들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예 취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金씨가 KAL기 폭파 임무를 부여받은 뒤 낭독한 맹세문에 북한에서 쓰이지 않는 단어가 들어있다는 점을 들어 방송은 의혹을 제기했지만, 이는 공작원으로서 남한 철자법 등에 대해 철저히 교육받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발전위가 4심, 화해위가 5심… 인민재판』>

金씨에 대한 유린은 소위 과거사위원회에 의해서도 지속됐다. 국정원은 2005년 과거사발전위(過去事發展委)를 조직해 金씨에게 조사받을 것을 십여 차례 요구했고, 이를 거부하자 지난해 진실화해위(眞實和解委)를 통해 또다시 조사를 시도했다는 것이다.

金씨는 편지에서 『2007년 국정원 관계자들이 남편을 찾아와 「발전위원회의 면담 조사에 응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썼다. 그러나 金씨는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사실을 왜곡시키거나 강압적 진술을 해야만 하는 불행한 사태를 염려해 응하지 않았다』고 했다.

金씨는 이어 『이미 사법부가 3심한 것을 발전위가 4심을 하고, 화해위가 5심을 하는 행위는 인민재판(人民裁判)이나 다름없다』면서 『사건의 실체가 명백한 사건을 국가 공권력으로 계속해서 재조사하는 것은 일종의 음모로 간주된다』고 주장했다.

<참여정부의 정치이념과 연관>

金씨는 『국정원이 KAL기 조작의혹 사태를 기획 공작하고 음모를 꾸민 배경에는 참여정부의 정치이념과 연관이 많은 것 같았다』고 했다.

그는 『친북 정부는 KAL기 사건으로 16년간 족쇄를 차고 있는 북한에 대하여 그 족쇄를 풀어주고 관계 개선을 하는 동시에, 국내 정치세력 구도를 변화시키는 데는 과거사들 중 해당 사건은 KAL기 사건이 가장 좋은 소재거리라고 여겨졌나 본다』고 했다.

金씨는 『북한이 기획한 KAL기 폭파공작은 제가 체포되어 사건의 전모가 밝혀진 반면, 국정원의 KAL기 사건 음모 공작은 지킬박사와 하이드 같은 교묘한 양면 전술을 펴 와서 여태껏 세상에 탄로 나지 않고 무사히 버티어 왔다』고도 했다.

그는 『국정원은 저를 아무런 힘이 없는 여자라고 살해(殺害)협박까지 하며 계속 괴롭혀 왔다』『그들은 퇴직한 선임자들의 등을 향해 총질을 해대는 비겁함을 보였다』『추방지에서 감시에 더 가까운 보안관리를 하고 있는 경찰당국도 조직윤리의 상실이 국정권과 다를 바가 없었다』고 폭로했다.

金賢姬 사건과 관련, 한나라당은 국회 차원의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친북좌익의 필사적 저항은 여전하다. 집권여당이 金賢姬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을지는 아직은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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