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대부(代父)의 비극은 경쟁관계 마피아 두목의 마약 거래 제안에 대해 큰 아들이 흥미를 보이게 되자 그것이 돈 꼴레오네 가족을 분열시킬 수 있다는 약점으로 인식되어 발생하게 된다. 조그만 몸짓 하나가 상대방에게 약점으로 부각되고 상대방은 그 약점을 틈타 공격을 하게 된다. 어릴 때 굴종하게 된 강아지는 덩치가 커진 후에도 조그만 강아지에게 굴종하게 된다. 굴종이 습성화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치는 개인 간에도 적용되며 집단 간에도 적용된다.

두 명의 미국 여 기자를 석방시키면서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을 불러들이는데 성공한 북한의 독재자는 그 후 자신이 주도권을 쥐었다고 확신하고 한국 정부를 마음대로 주무르고 있다. 북한의 독재자가 갑자기 천사처럼 변해서 한국 정부가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는 것처럼 선심을 쓰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에 감지덕지하여 싫다는 시늉조차 하지 못하고 독재자가 원하는 대로 응하고 있다.

북한의 독재자가 현대그룹의 회장을 불러들여 마치 현대그룹 회장의 청을 너그럽게 들어주는 형식으로 독재자가 원하는 모든 것을 챙겼다. 사실은 북한의 독재자가 한국 정부에 대해 무릅을 꿇고 간청해야 마땅한 것을 거꾸로 현대그룹회장 현정은이 간청하기 때문에 마지못해 허락하는 듯한 모양새를 갖추었다. 때로는 형식이 내용보다 더 중요하다. 남북관계가 바로 그러하다.

모든 일에는 격식이 있으며 때로는 격식 자체가 거래 내용보다 더 중요하다. 격식을 무시한 거래는 제도화가 불가능하다. 제도화가 되지 않으면 독재자의 자의(恣意)에 항상 끌려 다니게 마련이다. 따라서 한국정부는 북한의 독재자와 거래할 때 격식과 원칙을 엄격하게 지킬 것을 요구하여야 하고 또 지켜야 한다. 제도화가 불가능한 거래는 적극적으로 피해야 한다. 특히 5년마다 정권이 교체되는 한국에 있어서는 원칙과 제도화가 중요하다.

김정일은 금강산관광과 개성관광 나아가 백두산 관광까지도 포함하여 현정은 회장이 청원한 모든 것을 들어주는 형식으로 한국정부의 금강산관광 중단 조치를 일방적으로 무효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김정일에 있어 한국정부는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김정일은 개성공단 입출경을 일방적으로 제한하더니 또 일방적으로 풀었다. 과히 독재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횡포를 한국정부를 상대로 부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싫다는 표정조차 짓지 못하고 끌려가고 있다.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가 이유 없이 사살되었으나 사과는 커녕 공동조사조차 거부하였다. 현대아산 직원 유성진씨를 억류하면서도 그에 대한 접견은 물론 정보조차 일체 제공하지 않았다. 김대중 조문사절단도 일방적으로 통고만 하고 무조건 내려왔다. 심지어 현정은 회장이 권한도 없이 이산가족상봉까지 합의하고 돌아왔다. 뿐만 아니라 금강산관광 재개가 유엔의 제재결의를 위반하지 않는다고 미국무부 조정관이 해석하였다. 한국과 미국이 모종의 일을 꾸미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남북관계는 이런 편법으로 풀어질 수 없다. 어차피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한국정부는 조급하게 서둘지 말고 처음부터 하나하나 차근차근 짚고 넘어가야 한다. 우선 김정일의 사과 그리고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내고 나아가 사과와 약속을 제도화하여 동일한 사건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우리는 북한의 독재자가 조신하게 굴지 않는 한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도록 하여야 한다. 이 정도의 의지가 없다면 죽은 사람만 억울할 뿐이다. 국가가 국민의 눈물을 닦아 주지는 못할망정 국민이 억울한 눈물을 흘리게 만들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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