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대학교수들이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며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릴레이식으로 번지던 시국선언에 전교조까지 뛰어들면서 정치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좌파세력의 공세가 점차 거세지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탄핵서명운동을 승리로 이끌어 국민과 함께 정권을 끌어 내리고야 말 것"이라며 '이명박정권 퇴진운동본부'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그야말로 좌파의 모든 정치세력이 반정부투쟁에 집결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들은 이명박 정부와 끝장을 보겠다며 달려들고 있는 것이다.

촛불에 이은 조문 정국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반부터 물러나라는 정치적 도전을 받았다. 10년 만에 이루어진 정권교체가 불러온 기득권 계층의 상실감은 컸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실패는 좌파세력의 무능함으로 국민에게 인식되었고, 그동안 누려왔던 정치 헤게모니, 세금을 돌려쓰던 풍족함이 사라졌다.

성숙한 민주주의 세력이라면 정권교체의 결과를 민주주의의 과정으로 받아들였겠지만, 우리 사회의 좌파세력은 그러지 못했다. 자신들만이 옳다는 착각 속에서 민주주의를 자신들만의 것으로 해석했다. 자신들만이 민주 세력이라는 환상이 다른 세력을 독재세력으로 규정하는 오만함으로 이어졌다.

정치권력을 상실한 집단에게서 과거의 추억을 그리워하는 금단현상은 흔한 일이다. 민주주의의 절차적 정의를 지키기 보다는 힘으로 정치권력을 다시 찾겠다는 시도들이 그런 연유에서 일어난다. 후진국에서 가끔 볼 수 있듯이 선동을 하거나 테러를 저지르고, 시위를 통해 정부를 하야시키고, 군대를 동원해 정권을 뒤집기도 한다.

우리사회의 좌파세력은 10년 동안 자신들이 업적이라고 주장하는 것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인내할 만큼 성숙하지 않았다. 과거와 다른 정책을 인정할 수 없고, 자신들이 만든 것을 바꾸는 것은 역사의 반동으로 간주했다. 국민의 선택에 따른 변화를 받아들이기 보다는 이를 부정하려 했다. 새로운 정부를 인정할 수 없다는 마음과 자신들이 10년 동안 만든 것들을 하나도 잃을 수 없다는 편협함이 촛불에 이어 시국선언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정권을 인정하지 못하는 비이성적이고 반민주적인 태도는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MB OUT'이라는 구호를 만들어냈다. 민주주의를 앞세우던 세력이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힘에 의한 정권 허물기를 꿈꾸고 있는 셈이다.

이번 시국선언을 이끌어내고, 정치적 소용돌이를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노무현 전 대통령의 돌연한 자살이었다. 노무현은 깨끗하고 불의에 맞서는 이미지를 만들어 정치적 자산으로 삼았던 정치인이다. 퇴임 후 비리가 연이어 드러나자 그는 도덕적 추락을 견디기 어려워했다. 동지들에게 자신을 버리라고 스스로 밝힐 정도였다. 하지만 그의 불법자금 문제는 처음이 아니었다. 이미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당선이 무효로 될 정도의 불법정치자금을 받았음이 드러났었다. 이 두 번의 위기에서 그가 보여준 승부사적 기질은 역사에 남을 만하다.

첫 번째 위기에서 그는 탄핵이라는 길을 택했다. 한나라당은 제1당의 자리를 내줘야 했고, 불법정치자금과 선거법 위반은 자연히 역사 속으로 묻혔다. 두 번째 위기에서 그는 죽음을 택했다. 이번에도 그의 부채는 다시 자산으로 둔갑하였다. 노무현이 남긴 열린우리당을 폐기하고, 그와 멀어지고 싶어 했던 사람들이 다시 그의 유산을 물려받기 위해 모였다.

'MB OUT'을 외치던 촛불시위의 화려한 불꽃이 꺼져가던 상황에서 노무현의 투사적 삶은 그들에게 새로운 계기를 마련해준 것이다. 역시 김대중 전 대통령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명박 대통령을 독재로 규정하면서 모든 역량을 집중하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시국선언은 반정부투쟁

서울대(124명), 중앙대(68명), 고려대(131명), 연세대(162명) 등 좌파성향의 교수들이 중심이 되어 시국선언이 나왔다. 지난 2004년 탄핵반대 시국선언에 참여했던 교수가 약 1,500명이었으나, 이번에는 3,000명 이상이 참여했다. 문화계, 법조계, 종교계에서도 시국선언이 뒤이어 나왔고, 전교조가 가세한 상황이다.

이번 시국 선언에 참여한 서울대 교수 124명중 41명은 지난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 철회 서명에도 참여했던 교수들이다. 몇몇 교수는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의 임원이며, 상당수도 민교협 소속이다. 또한 참여정부와 참여연대에서 활동한 교수들이 여럿 포함되어 있다.

서울대 일부 교수들이 발표한 “국민적 화합을 위해 민주주의 지켜나가야”라는 글은 제목부터 잘못됐다. 국민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고 투쟁에 나서자는 말이 어떻게 성립가능한가?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평화는 없다는 협박에 다름 아니다. 지식인으로서 가져야할 사상적 가치를 담지 못하고 자신들의 민주주의만이 옳다는 독선으로 가득하다. 그야말로 반정부 투쟁에 나서자는 격문에 불과하다.

시국선언문에 포함한 내용들은모두 정치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사안들이다. 그 현실적 시사점을 보면, 미디어법을 반대하고, 대운하사업을 반대하고, 비정규직법 개정을 반대한다. 모두 이성적으로 따져보고 논의할 정책 사안들이다. 이 내용들은 정치의 장인 국회에서 논의하고 있으며, 정치인들에게 맡겨서 해결하는 것이 올바른 일이다.

지식인이라면 마땅히 논문과 글로 자신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지만, 그들은 이성적 행동보다는 집단적으로 정치적 압력을 행사하고자 했다. 그들은 시국선언을 통해 국정을 재단하고 특정 정치집단의 이해를 도모하고자 한 것이다. 이는 지식인이 할 일이 아니다.

요구사항의 첫 번째에 포함된 “시민사회단체를 진심으로 국정의 동반자로 받아들여야 한다”라는 내용을 보면, 자신들과 일부 정치시민단체들이 국정에 참여해야 한다는 의사를 표현하였다. 하지만, 국민은 정치교수들과 정치시민사회단체에게 정치를 위임한 적이 없다. 정치에 참여하려면 떳떳하게 투표를 통해 국민의 선택을 받아 정치의 장에 참여해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이 채택하고 있는 대의민주주의이다. 책임없이 권력만 휘두르겠다는 태도는 잘못된 정치행위이다.

과장된 표현들의 일상화

선언문은 민주주의 후퇴를 우려한다고 말한다. 공안정국, 집회 결사의 자유, 사회적 약자처럼 구시대적인 용어를 거론하면서 국민의 소리에 귀기울리라는 식이다. 과장된 수사를 동원해 21세기 대한민국을 과거로 되돌리려 하고 있다.

좌파세력은 본래 민주주의 투쟁경력을 소중히 하는 습성을 갖는다.

그러다 보니, 과거의 투쟁에 대한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복고풍이 유행하듯이, 독재시대의 언어에 대한 그리움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손쉬운 민주투쟁 방식을 고집하는 것일까?

현실을 오도하는 잘못된 일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촛불시위과정에서 미국산 소고기가 위험하다면서 국민을 속인 바 있다.

MBC PD수첩이 앞장서서 불안감을 조성했고, 광우병 공포가 온 나라를 뒤집어 놓았다. 당시 프로그램에 참여한 작가의 이메일에는 “출범 100일된 정권의 정치적 생명줄을 끊어놓고”라는 섬뜩한 문구가 들어 있었다. 당시 방송이 어떤 일을 하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불신사회를 만들어서라도 자신들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반문명적 투쟁은 지금 지구상에서 테러집단이나 북조선만이 행하는 몰염치한 짓이다. 그들의 투쟁방식은 인질극, 벼랑끝 전술처럼 극단화된 상황을 연출한다.

서울 한 복판에서 화염병을 던지고, 죽창을 휘두르는 일이 반복되는 것도 단순한 폭력을 넘어 우리나라를 야만의 사회로 후퇴시킨다. 그런 불법적인 폭력시위를 공권력이 제압하는 것은 법치국가에서 당연한 일이지만, 그들은 공권력을 폭력으로 몰아붙이는 신출귀몰한 수법을 쓴다.

도전받는 민주주의

정권교체를 부정하고 사회를 분열과 불신의 길로 몰아가는 일은 반민주적인 일뿐만 아니라 우리사회의 도덕과 질서를 후퇴시키는 일이다. 자신들의 처지가 후퇴하고 있다는 말을 민주주의의 후퇴로 왜곡하는 것은 옳지 않다. 민주주의 후퇴를 우려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자신들이 요구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으면 우리사회를 결딴 내겠다고 협박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기반이 도전받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 정권교체를 이루는 장점을 갖는 정치시스템이다. 과거 민주주의가 이루어지지 못했던 사회에서 정권교체는 혁명이나 내전처럼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짧은 기간에 그것도 내전이나 혁명을 통해서나 가능했던 정권교체를 투표를 통해 이루어낸다. 우리나라는 평화로운 정권교체를 여러 번 이루어냈으며, 사회적 역동성이 그 어느 나라보다 높다. 대한민국은 이미 아시아 최고의 민주국가가 되었다.

대한민국 정체성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이다. 이를 지키고 보호하는 것이 바로 정부의 역할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명박 정부가 스스로 실용정부라고 불렀다가 아예 중도를 표방한다는 점이다. 좌파정부가 실망스러워 국민이 뽑아준 정부가 어떻게 중도일 수가 있는가. 좌파세력의 힘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스스로를 중도로 포장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세계적으로 좌파정부들이 좌파의 속성을 버리고 우파의 정책을 따르면서 자신의 변신을 포장한 것이 제3의 길이다. 유럽의 나라들이 그랬고, 최근에는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이 그랬다. 그래서 그들은 노동당이라는 이름을 유지하면서 우파의 정책을 쓰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우파정부는 스스로 중도라면서 우파의 정책을 포기하려 하고 있다. 만약 정치적 포장이라고 해도 제3의 길은 헛되다.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겠는가. 이념다툼은 피하고 싶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치인은 마땅히 이념갈등의 중심에 있다. 현대의 정치다툼은 본질적으로 이념다툼을 바탕으로 한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세계관을 나라의 체계에 담고 싶어 하고, 그래서 정치인들이 자신의 신념을 지지해달라고 국민에게 호소한다.

올바른 이념을 찾고자 하는 노력은 결코 나쁜 것도 아니며, 값없는 일이 아니다. 좌파 세력에는 차고 넘치는 것이 이념인데, 우파 세력에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이념이다. 노무현 정부가 정치과잉이었다면, 이명박 정부에는 정치가 없다.

http://www.hanbal.com/review/review174/siron2.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