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날 시원한 맥주 한잔에 모든 것을 잊고 친구들과 함께 대화는 나눌 수 있는 자유는 북한에선 상상도 못할 즐거움이다. 한동안 맥주를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태어나서 맥주를 처음 먹어본 것은 87년 19살 나던 가을 평양 창광원(대중목욕탕)앞에 있는 락원백화점(외화상점)에서 일본산 ‘삿뽀로’ 맥주다.

낙원백화점은 평양시내 외화상점 가운데 가장 고급스러운 제품들이 많은 상점인데 일제 상품이 대부분이었다.
 한 캔에 한 달 월급 수준으로 비싼 맥주여서 일반 서민들은 아예 쳐다볼 수 없는 비싼 맥주였지만 돈 많은 지인 때문에 그 비싼 맥주를 몇 캔씩 마시고 취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 외화상점의 일제 캔 맥주는 60~80원을 주고 외화를 바꿔야 한캔을 살 수 있었다. 당시 노동자 평균월급이 80~120원임을 감안하면 일반 서민들이 이런 캔 맥주를 감히 입에 대볼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북한의 첫 맥주 광고로 소개된 '대동강맥주'

요덕 수용소에서 10년간 썩다 나니 맥주 먹을 기회는 더 없었겠지만, 외화가 없으면 그 어떤 것도 먹을 수도 입을 수도 없는 세상으로 급속히 악화되고 있는 과정이었다.

요덕 식료공장에서 만든 생맥주라는 것은 포장도 안돼 있어 맥주 냄새만 나는 김빠진 것이어서 맥주라고 말할 수도 없다. 평양시 체육단 등에서도 市 식료공장에서 만든 생맥주는 대부분 유통과정에서 김빠진 맥주로 변해 맥주 맛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

북한에서 맥주가 귀한 것은 맥주 원료인 호프를 수입해야 하기 때문이고 식량난 때문에 더 먹기 어려워졌다.
1990년 새해 설날을 거창하게 맞기 위해 연말 평양에 들어갔다가 일제 캔 맥주를 배낭으로 하나 가득 지고 요덕으로 향한 적이 있다. 평생 캔 맥주 한번 먹어보지 못한 시골 친구들에게 일제 맥주를 먹이기 위해서였다.

부모님들께 세배를 드리고 나서 우리 집에 모인 친구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처음 본 일제 캔 맥주가 놓인 밥상이 눈에 부시도록 찬란했기 때문이다. 차가운 캔을 하나씩 따서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새해 건배를 했다. 소주를 몇병씩 먹고도 취하지 않던 친구들이 맥주 한잔에 취기가 도는 사람들이 있었다. 캔 맥주를 처음 먹어본 사람들은 알코올 흡수력 때문에 취기가 빨리 돌기도 한다.

나중에 친구들은 맥주 한캔의 가격을 묻고는 다시 한 번 놀래 자빠졌다. 나 때문에 친구들이 그 해 설날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남겼다고 말했다. 일제 맥주 한캔에 그렇게 행복해 했다.

 북한 TV에 소개된 맥주 공장 모습

요즘 북한 뉴스를 보다 보니 희한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평양 대동강 맥주가 조선중앙방송에서 광고되고 있다. 평양주민들은 대동강 맥주에 흠뻑 취한 것 같은 느낌이다. 200여 곳에 생맥주집이 생겨나고 싼 가격에 맥주를 시민에게 공급한다고 선전하고 있다.

이게 웬일이냐 싶어 최근에 입국한 탈북자들에게 물어보니 그것은 광고일 뿐이고 여전히 북한에서 맥주는 평민들이 먹기 어려운 귀한 것이라고 한다.

90년대 초와 다른 것은 온통 일본산으로 차있던 외화상점의 물건들이 모두 중국산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맥주도 일제는 너무 비싸져 먹어보기 어렵고 중국산 맥주밖에는 없다고 한다. 평양시내 특권층만 가는 일부 외화상점에 일제 상품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산 맥주를 마시고 설사나 위장에 문제가 있다는 소문이 돌아 ‘룡성맥주’나 ‘대동강 맥주’가 가격면에서는 더 비싸다고 한다.
국산 병맥주인 경우 보통 1500원 선이고 중국산은 1300원에 거래된다고 한다.

또 달라진 것은 일반 서민들이 먹는 ‘8.3맥주’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김일성 생전 어느 해 8월 3일 인민소비품 생산을 증가시켜 인민들의 실제 생활수준을 높이는 획기적 교시가 있었다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름이 8.3 소비품이다.

8.3은 북한에서 ‘짝퉁’을 빗대어 말할 때 통하는 ‘대명사’가 됐다.
룡성맥주나 대동강 맥주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낙후된 8.3맥주는 각 지방 식료공장에서 자체생산하는 맥주인데 그저 맥주 냄새만 나는 정도의 한심한 것이다.

그나마도 한병에 300원씩 한다니 짝퉁 맥주 먹기도 쉽지는 않다. 지방경제가 대부분 무너진 상태 어서 8.3맥주 생산도 대부분 중단된 상태이니 서민들이 맥주 먹기는 더 어려워진 것이다.
대다수의 근로자가 공장 가동 중단으로 월급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태반이고 그나마 많이 받는 무산광산 노동자들도 겨우 7000원에서 1만원의 월급을 받는다. 그러니 이 더운 날 맥주를 시원하게 마실 수 있는 사람은 여전히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평양에 새로 생긴 대동강생맥주집에서 맥주를 마시는 평양시민들

대한민국에서는 물보다 싸진 맥주가 북한에서는 그렇게도 귀한 것이니 북한사람들이 참 불쌍할 뿐이다. 이 더운 날 시원한 맥주 한잔에 여름을 날리는 그 즐거움을 언제 북한 동포들도 함께 공유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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