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중국에 북한 급변대책을 논의하자고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는 AP통신의 보도는 두 가지 점에서 주목을 끈다.

우선 미국이 북한 급변사태를 언제 벌어질지 모를 ‘임박한 위기’로 보고 있다는 점을 확인시켜 준다. 중국에 가장 민감한 북한 문제는 핵(核)이 아니라 체제안정이다.

중국 자신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면서, 동북아에서 미(美)·일(日) 영향력 확대를 막아주는 방파제 역할을 해주는 게 바로 북한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중국의 그런 입장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북한 급변사태’에 대해 논의하자고 요청했다는 사실은 그만큼 상황을 급박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둘째, 북한 급변사태라는 돌발상황이 발생할 경우, 그 불안정성을 최소화하기 필수적인 미·중 간의 협력은 용이하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미국이 스타인버그 국무부 부장관이라는 공식채널을 통해 문제를 제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거절’ 의사를 밝혔다는 점은 북한 급변사태에 대한 중국의 관점이 미국의 그것과 공통분모를 찾을 수 없다는 분명한 의사표현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의 북한정책의 우선순위가 핵(核)에서 북한 급변대책으로 자리 옮김을 하는 조짐이 나타난 것은 지난 1월 오바마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였다. 지난해 8월 뇌졸중을 앓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문제가 새로운 변수가 등장하면서 북한문제의 본질이 변했다는 말이 미 전문가들 입에서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북핵문제가 장기과제라면, 김 위원장의 건강문제에서 비롯되는 후계문제와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도 있는 혼란은 언제 어떻게 닥칠지 모르는 문제가 된 것이다. 또 북한 급변사태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면 미국이 가장 큰 위협으로 생각하는 핵물질 이전을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 북한 붕괴 시나리오의 근거는 북한의 경제난으로 인한 식량난과 내정불안, 그리고 인권문제였다. 최근 다시 등장한 북한 급변대책 논의는 김 위원장의 건강과 권력 승계, 북핵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되지 못할 가능성, 대북 제재에 대한 북한의 반발로 인한 우발적인 사태 등과 복잡하게 얽혀 있다.

워싱턴에선 새로운 북한 급변사태와 관련한 논의가 쏟아져 나왔다. 외교위원회(CFR)는 지난 1월 ‘북한 급변사태의 대비’란 보고서에서 북한에서 혼란이 일어날 경우 그 잠재적 위협은 한·미의 힘만으론 해결하기 어렵다고 봤다. 그래서 중국과 비공개 논의를 통해 잠재적 우려 사항을 공유하고 오해의 소지를 제거하라고 권고했다.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들도 다양한 의견을 내놨다. 브루킹스연구소의 마이클 오핸런 연구원은 지난달 “북한 붕괴 시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되는 북한의 핵물질이 문제가 된다면 미군이 북한 진주(進駐)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해병대 지휘참모대학의 브루스 벡톨 교수는 한 세미나에서 “김 위원장의 후계자가 권력 기반을 마련하지 못한 상황에서 당이 분열하고 군부 내 파당 간 경쟁이 일어날 경우 내전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국가전략연구소(INSS)의 제임스 프리스텁 박사는 최근 방한해 “포괄적인 정치·경제적인 플랜을 포함한 급변대책을 짜야 한다”고 말했다.

오바마 행정부 내에선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지난 2월 방한 때 북한 후계문제와 그로 인한 위기 가능성을 처음으로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이후 정부 관리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국방부의 마이클 나트 세계전략담당 차관보는 지난달 15일 하원 청문회에서 “미국은 모든 가능한 북한 사태 발생 시나리오를 개발하고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겠다”라고 했다.

티머시 키팅 미 태평양사령부 사령관은 지난달 22일 “북한에서 불확실한 권력승계가 이뤄질 경우 (오바마) 대통령이 명령하면, 주한미군 등과 함께 실행할 수 있는 계획들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출처: 조선일보 강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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