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최근 한·미가 북핵(北核) 문제 해법으로 제안한 ‘포괄적 패키지 전략’을 “말도 안 된다”고 일축했다. 또 힐러리 클린턴(Clinton) 미 국무장관에 대해 “소학교 여학생” “부양받아야 할 할머니” 등 인신공격성 표현을 쏟아붓는 등 대미(對美) 비난수위를 높였다. 최근 강화되고 있는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에 대응해 본격적인 반격에 나선 것이다.

23일 태국 푸껫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석한 북한 리흥식 외무성 국제기구국장은 기자회견을 자청, 미국이 포괄적 패키지의 전제로 내세운 ‘불가역적 비핵화’에 대해 “부시 정부에서 나왔던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핵폐기)’를 그대로 파다 옮긴 것에 지나지 않는다.

포괄적 패키지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문제다”고 했다. 그는 “현 위기상황의 본질은 미국의 뿌리 깊은 적대시 정책의 결과다. 미국이 이를 포기 안 하고 어떻게 패키지를 얘기할 수 있는가”라며 “담보 없이 안전과 자주권을 몇푼 돈으로 바꿀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또 “유엔 안보리 제재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우리는 반세기 동안 이미 제재를 받아왔다”며 “6자회담은 이미 종말을 고했다”고도 했다.

앞서 북한측 수석대표인 박근광 외무성 순회대사도 ARF 전체회의에서 “미국은 북한을 반세기 이상 위협해왔으며 지금도 남한에 WMD(대량살상무기)를 계속 공급하고 있다. 미국과 남한의 시대착오적인 적대행위가 아시아·태평양 평화 파괴의 주범”이라며 “북한의 핵보유는 전적으로 평화유지, 핵억지용”이라고 주장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도 클린턴 장관 개인에 대한 공격에 집중하며 거들고 나섰다. 그는 조선중앙통신과의 문답에서 “클린턴 장관이 취임 벽두부터 가는 곳마다에서 우리에 대해 직분에 어울리지 않는 속된 발언들을 연발하고 있는데 허튼 말이 너무 많다”고 했다.

또 “횡성수설하기 좋아하는 여자” “때로는 소학교 녀학생 같아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장마당에나 다니는 부양을 받아야 할 할머니 같아 보인다” “전혀 지능도가 느껴지지 않는다” 등의 표현을 쓰며 클린턴 장관을 비꼬았다.

최근 한동안 상대적으로 ‘침묵’을 지키던 북한이 이날 일제히 대미 포문을 연 것은 결국 향후 북핵 국면을 미·북 양자구도로 끌고 가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특히 미국의 ‘선(先) 비핵화’ 조건에 맞서 ‘선(先) 적대정책 해제’를 내세운 것은 일종의 기싸움 성격이 짙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리흥식 국장은 이날 “일본과는 전혀 대화할 생각이 없다”면서도 “미국과는 대화를 반대하지 않는다. 전적으로 미국에 달려 있다”며 여지를 남겨두는 모습을 보였다.

또 외무성이 클린턴 장관을 비하한 것은 클린턴 장관이 최근 북한을 “관심 끌려고 보채는 꼬마이자 철부지 10대” 등으로 표현한 데 대한 맞대응으로 보인다.

한편 클린턴 장관은 이날 ARF 회의 뒤 기자들을 만나 북한이 미국을 비난한 데 대해 강한 유감을 표하며 “북한의 태도변화가 없으면 단호하게 제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비핵화를 요구했는데 북한이 엇박자를 내고 있다”며 “북한이 과거 국제회담에서 강경발언을 하면 지원이 주어지곤 했는데 이런 일은 앞으로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출처: 조선일보 임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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