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전 혈맹(血盟)으로 맺어졌던 중국과 북한 양 측의 사이가 최근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기자가 현재 취재 중인 북중 국경지역에서는 아직 피부로 느낄 수 없지만, 들리는 바로는 김정일과 그 수하들을 바라보는 베이징(北京)의 눈길은 싸늘하기 그지없다고 한다.

장거리 탄도탄 발사와 2차 북핵 실험으로 촉발된 북중 양 측의 관계 악화와 반비례해 한중 양 국의 관계는 한 층 돈독해지고 있다고 하니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을 ‘동북 4성’으로 삼으려는 중국의 영토 확장 야욕이 사라졌는지 여전한지 그 가능성은 후자 쪽에 가깝지만, 한중 양 국의 대북 공조가 활발해졌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정부가 북한을 잘 파악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 했던가, 외교부 등 관련 부처들이 위기를 기회로 삼아 노력한 덕분이라 생각한다.

중국 내 북한통인 천즈리(陳至立) 전국인민대표대회 부위원장의 방북 일정이 취소될 정도로 양 측의 관계가 악화되었다고는 하지만, 기자가 눈과 귀로 보고 듣는 중국은 아직 크게 바뀐 것이 없다.

그 중 하나가 최고 30만 명으로까지 추산되고 있는 중국 내 탈북자들의 지위이다.

기자는 국경지역을 횡단하며 적지 않은 탈북자들을 만나고 있지만, 기자나 그들이나 매 때마다 느끼는 긴장은 여전하다. 중국 정부가 탈북자를 아직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비법월경자(非法越境者)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두 차례의 한중 정상회담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탈북자 강제북송 중단을 당부한 탓인지 공안 당국의 자발적인 탈북자 색출은 사라졌지만, 포상금을 노린 누군가의 신고로 인한 검거는 여전히 자행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에는 중국으로 출장 나왔던 기자의 지인이 우연히 탈북자들과 한 숙소에 묵게 되었다가 누군가의 신고로 공안에 체포된 사례도 있다.

그는 공안에서 4시간을 심문당한 끝에 탈북자를 경제적으로 돕거나 한국행을 주선한 것이 아닌 것으로 판단되어 풀려났지만, 함께 있던 탈북자는 그 길로 도문(圖們)을 거쳐 북송되고 말았다.

때문에 탈북자들은 외부 출입을 거의 삼가거나, 조선족으로 신분을 위장하거나, 혹은 대다수 여성의 경우 중국인에게 헐값에 팔려가거나 하는 방식으로 숨어 살고 있다.

신분 노출을 꺼리는 탓에 그들과의 만남은 쉽지가 않다.

시내를 걷다 보면 탈북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얼핏얼핏 보이기는 하지만 무작정 접근하면 그들은 경계심을 숨기지 않는다.

또 설득 끝에 대화를 나눈다 하더라도 대부분은 암울한 과거를 떠올리기 싫은 탓인지 인간적인 신뢰가 쌓이지 않는 한 좀처럼 입을 열려 하지 않는다. 그들 중 적지 않은 수가 과거의 악몽과 미래에 대한 절망이 겹쳐 하루하루 자살을 꿈꾸고 있는 실정에서 대화를 이끌어내기란 쉽지 않다.

대화의 방식도 여의치 않다.

탈북자들과의 대화에서는 상식 밖의 방법이 필요하다. 자택 등 밀폐된 공간에서는 만나지 못하며, 사람이 많거나 믿을만한 제3의 공간에서 만난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시내를 걷게 될 경우 앞을 바라보거나 딴청을 피우며 대화를 나눈다.

탈북자와 한국인이 길을 걸으며 뭔가 비밀스런 대화를 나누는 것이 누군가의 시선을 끌어 자칫 한국행을 모의하는 것으로 오판될 경우 서로의 안전에 좋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타인 아닌 타인이 되어 길을 걷다 공안 요원이나 차량이라도 발견하게 되면 흠칫 놀라 황급히 발을 돌려 달아나는 것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중국 내 탈북자들의 처연한 모습이다.

그 모습은 바로 자유가 결핍된 공간에 갇힌 자들의 침묵의 절규, 침묵의 항의인 것이었다.

그들과의 만남이 잦아질수록 그만큼 기자의 고뇌도 커지고 있다.

그 어떤 만인(萬人)들과도 동등하게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갖고 태어난 사람들인데, 왜 이런 지극히 불평등한 고통을 겪어야만 하냐는 것이다.

이들은 경제적인 이유로든 정치적인 이유로든 그 어떤 이유로든 근본적으로 북한 정권의 폭압에서 비롯된 고통을 견디다 못해 탈출을 결심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명백한 난민이다.

범죄자처럼 숨어 살며 가축처럼 팔려 다니다 북송되어 악(惡)의 희생량이 되어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이들에게도 인간으로서 살아남을, 미래를 꿈꿀 권리가 명백히 있다.

기자는 지금 북중 양 측의 관계 악화에서 한 줄기 실낱같은 희망을 보고 있다.

숨어 지내는 자와 비밀을 보장해야 하는 자의 관계가 아닌, 이들과 한 명의 인간과 인간으로서 만나 이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취재하고 싶다. 침묵을 강요당했던 자들의 입이 되어 이들의 ‘말 할 권리’를 보장하고 이들이 말하는 북한을 남녘의 우리 국민들에게 전하고 싶다.

과거의 악몽과 미래의 절망에 찌든 이들이 아닌 비로소 살아가야할 이유를 발견하고 열심히 삶의 터전을 일구며 자유의 땅으로, 통일된 민족의 땅으로 돌아갈 그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이들의 미소와 웃음을 보고 싶다.

이러한 희망이 비단 희망이 아닌 현실이 되기를 오늘도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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