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7일 북한에 피랍된 美여기자 유나 리(左)와 로라 링(右)

미국 케이블방송 커런트TV 소속 여기자인 한국계 유나 리와 중국계 로라 링이 탈북자 취재 도중 지난 3월 17일 북한에 납치된 현장인 북중 국경도시 투먼(圖們)을 최근 방문했다.
 
한국계 미국 프리랜서 여기자 H씨와 함께 동행한 투먼 시내는 수 년 전과는 달리 번화한 모습이었다. 시내를 가로질러 기자 일행은 유나 리 등이 납치된 두만강에 도착했다. 이들은 투먼 관광지에서 떨어진 월청(月晴)접경지에서 북한군 27경비여단 초병들에게 납치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지인의 말에 따르면 투먼 인근의 두만강은 이미 오래전부터 중국인들이 마음대로 배를 몰고 헤엄칠 정도로 사실상 중국의 영토화가 되어 가고 있다고 했다. 강은 과거에 비해 수위가 크게 낮아지고 혼탁해진 상태였다.
 
쌍안경으로 바라보자 북중 양 측을 잇는 투먼대교 건너에는 북한의 민둥산들과 김일성의 초상화가 눈앞에 잡힐 듯 보였다. 간간히 북한군 병사들과 주민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사이 투먼대교를 건너 중국으로 오는 북한 측 차량도 종종 있었다.
 
강가로 내려가 바라본 두만강은 강폭이 불과 수십 미터 남짓했다. 서울에서 만난 한 탈북자는 강폭이 수 미터밖에 안 되는 곳을 건넜다고도 했다. 지금은 날씨가 따뜻해져 물살이 흐르고 있었지만 현지인에 따르면 3월 당시에는 아직 얼음이 언 상태였다.
 
강을 사이로 중국 쪽은 관광객을 위해 보도가 놓여 있었지만 북한 쪽은 갈대숲이 빽빽하게 무성했다. 때문에 도처에 산재해 있을 북한군 경비초소는 찾아보기가 불가능했다. 그야말로 매복하기에는 최상의 조건이었다. 다만 얼핏 식별하기는 힘들지만 간간히 북한군 초병들의 모습은 보였다.
 
갈대숲을 좀 더 가까이에서 관찰하기 위해 관광용 보트를 타고 접근하자 북한군 초병들의 움직임이 보다 확연히 드러났다. 실탄이 탄착되었을 것으로 예상되는 AK-47 자동보총(소총)으로 무장한 그들은 줄곧 갈대숲 사이에서 일행을 주시하고 있었다.
 
보트 운전사에 따르면 만약 보트가 고장나 표류하다 북한 땅에 닿게 되면 기자 일행도 언제든 체포되어 심문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는 일행이 카메라를 꺼내 들자 북한군 병사들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며 자제를 요구했다.
 
수상에서 북한과 중국 양 측을 바라보자 비로소 유나 리 등 미국인 여기자들이 납치되었을 당시의 상황이 정리되었다.
 
당시 얼어붙은 강 위로 중국 쪽 방향에는 사건발생 직후 중국 공안에 체포된 카메라 기자 미치 코스 프로듀서와 이들을 안내한 조선족 가이드가 서 있었다.
 
두 여기자는 북한 쪽에서 중국 쪽 방향으로 걸어 나오는 장면을 카메라 앞에 연출하려 했으며, 이들은 도강하는 탈북자를 접하기 쉽지 않자 스스로가 탈북자인 것처럼 꾸미려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기자들이 북한 땅에 근접하자 무성한 갈대숲에 매복하고 있던 북한군 초병들이 뛰어나와 두 여기자를 붙잡았고, 카메라 기자와 가이드는 중국 쪽으로 도주하려다 출동한 공안 당국에 체포되었다.
 
스스로를 탈북자처럼 연출하려 했다면 여기자들은 북한 땅에 발을 디뎠을 가능성이 있으며 초병들은 때를 놓치지 않고 뛰어나왔을 것이다. 카메라 기자와 가이드는 중국 땅과 가까워 북한군에 잡히는 것을 모면할 수 있었지만 여기자들은 그렇지 않은데다가 얼어붙은 강 표면까지 미끄러워 도주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얼어붙어 도주가 쉽지 않은 두만강과 북한 땅에 발을 디뎠을 가능성이 있는 여기자들 그리고 북한을 배경으로 촬영한 카메라. 북한이 이들을 납치하기에는 기후와 명분이 그야말로 최상의 조건이었던 것이다. 
 
체포 절차를 밟지 않았든 가이드와 사전 공모했든 계획된 피랍이라는 결론이 내려진다
 
그런데 의혹은 이들이 어떻게 절묘하게도 반 지하 형태로 식별이 불가능한 북한군 초소 앞에서 포즈를 취했냐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보행 자세로 갈대숲 사이를 순찰하는 북한군 초병들의 존재는 충분히 주의를 기울인다면 육안으로 힘들이지 않고 식별할 수 있었다. 따라서 여기자들은 순찰 중인 초병들이 아닌 초소에 매복하고 있던 초병들에게 불시에 급습당한 것이 확실한 듯 했다.
 
하지만 인민군 출신의 한 북한 전문가에 따르면 두만강의 북한군 초소는 줄지어 배치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일정 거리를 두고 띄엄띄엄 산재해 있다. 갈대숲 속에서 일부러 찾기도 힘든 초소 앞에 여기자 일행이 설 수 있냐는 것이다. 우연이라 해도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초소가 아니라 우연히 인근을 순찰하던 북한군 병사들이 이들 일행을 발견하고 미국인임을 판단해 포복 자세로 매복하다가 근접하기를 기다려 체포했을 가능성도 희박했다.
 
세계 각처에서 모인 많은 관광객들이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흩어져 북한을 촬영하는 가운데 초병들이 유독 이들만 체포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실제로 기자 일행이 두만강을 방문했을 때에도 현장은 적지 않은 수의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또 여기자들은 외모 상 아시아계였고 북한 땅과 인공기가 바라보이는 현지는 영어로 크게 떠들만한 분위기가 아니어서 자칫 중국인 관광객일수도 있는 이들을 초병이 섣불리 체포할 수는 없을 터였다.
 
북한군 초병들이 여기자들을 계획적으로 피랍했을 가능성은 초병들의 사전절차 이행 여부와 조선족 가이드가 취한 당시 행동에서 한 층 높아진다.
 
초병들이 이들을 우발적으로 체포했다고 가정한다면 북중 관계를 고려해 반드시 경고 및 신분 검사와 같은 사전 절차를 밟았을 것이며, 또 일각에서도 이 점을 고려해 신분을 묻는 질문 등에 여기자 일행이 대답하지 못하자 초병들이 체포했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는 조선족 가이드가 함께 하고 있었으며, 비록 한국어를 모르는 여기자들이 겁에 질려 신중하지 못한 행동을 했다 해도 가이드가 초병들에게 정황을 설명하고 뇌물 등을 통해 충분히 무마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가이드는 초병들이 나타날 것을 미리 알고 있었거나, 혹은 초병들이 아무런 사전 절차도 없이 여기자들을 체포하자 바로 그 자신이 그 곳으로 안내한 일행들을 버려둔 채 도주하기 시작했다.
 
어떤 가능성을 제시하든 결국 북한이 이들 여기자들을 계획적으로 납치했다는 결론에서는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북한에 정통한 중국 현지 소식통은 특히 현장에 초병들이 나타날 것을 가이드가 미리 알고 있었다는 가능성에 비중을 두었다(2009년 5월 12일자 ‘“美여기자 납치, 北보위부와 가이드 합작품”’ 보도기사 참조).
 
취재를 끝내고 기자 일행은 투먼대교 중심으로 향했다. 미국인 여기자들이 두 달 가까이 억류되고 있는 지금 북한 쪽의 분위기를 보기 위해서였다.
 
대교 중간에 페인트로 그어진 국경선 앞에 서자 다리 끝자락 북한 쪽의 동태가 확연히 들어왔다. 위기감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분위기는 평소와 다름없어 보였다. 군인과 주민들은 각각 제 할 일을 하며 평온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중국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돌아오는 길에 본 투먼 시내에는 자동소총으로 중무장한 인민해방군 병사들의 모습이 간간히 눈에 띄었다.
 
“중국이 북한에 매우 분노하고 있다”는 게리 세이모어 미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정책조정관의 말처럼 미국인 여기자 피랍 사건 이후 북중 양 측의 거리는 과거에 비해 한 층 더 크게 멀어지고 있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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