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8일 성명에서 “오바마 미국 정부의 100일간 정책 동향을 본 결과, 대북 적대 정책에서 (과거 정권들과) 조금도 변화가 없다는 것이 명백해졌다”며 “우리를 적대시하는 상대와 마주 앉아 봤자 나올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미 밝힌 대로 핵 억제력을 더욱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최근 대미(對美) 비난의 수위를 높여오던 북한이 ‘오바마 정부와 대화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미국 역시 완강하다. 8일 방한(訪韓)한 스티븐 보즈워스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미국이) 북한 핵실험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며 “북한이 (2006년에 이어) 추가 핵실험을 강행하면 상응하는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유엔 안보리를 통한 지금보다 더 강력한 대북(對北) 제재를 염두에 둔 말이라 한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도 7일 북한과의 교착상태를 풀기 위해 방북(訪北)할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게리 세이모어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정책조정관은 최근 “북한이 싸움 걸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은 명확하다”며 “우리는 북한이 대화에 복귀할 때까지 오로지 기다릴 뿐”이라고 했다.

미 정부 고위 인사들의 일련의 발언은, 오바마 정부가 당분간 ‘무시’와 ‘압박’의 대북 정책 기조(基調)를 끌고 가겠다는 뜻이다. 오바마 정부는 경제위기 타개에 집중하기 위해 외교·안보 분야의 이슈를 키우지 않으려 하고 있고, 국제 문제에선 아프가니스탄에 집중하고 있다. 북한의 추가 핵실험이나 장거리탄도미사일(ICBM) 발사가 당장 미국을 위협하긴 힘들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결국 북한이 도발을 통해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 양보를 얻어내는 과거의 패턴을 되살리기는 쉽지 않아졌다. 미국에선 올해 말까지 6자회담 또는 미·북 회담이 열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북한이 2차 핵실험을 강행하면 중국과 러시아도 지난 4월 장거리 로켓 발사 때처럼 유엔 안보리에서 북한의 방패 역할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북한의 추가 핵실험은 미국과의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큰 고립과 제재를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외교가에선 북한이 과거의 관성에 젖어 상황을 오판(誤判)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북한은 주민 전체의 희생을 강요하면서 장래도 불투명한 위험한 길을 가기보다는 지금이라도 오바마 정부가 제안한 미·북 대화에 나서는 게 현명한 선택이다.

미국 정부가 당분간 미·북관계의 교착상태를 감수하겠다고 나선 원인은 북한이 만들었다. 오바마 정부가 ‘강력하고 직접적인 미·북 대화’ 의지를 밝혔는데도 북한은 장거리 로켓 발사를 강행하는 등 각종 도발을 벌였다.

이런 북한에 대가를 치르도록 한 뒤 대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 미국의 생각이다. 북한의 통미봉남(通美封南) 정책은 미국과 통하고 남한을 따돌리기는커녕 북한의 고립만 불러온 것이다.

그러나 지금 같은 교착상태를 마냥 끌고 가는 것이 능사(能事)인가를 생각해볼 때가 됐다. 북한처럼 예측 불가능한 상대가 고립된 상황에선 무슨 일을 벌일지 알 수 없고, 북한은 기다린다고 해서 태도를 바꾸는 상대도 아니며, 대북 제재에 쉽게 굴복할 가능성도 작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과 미국은 교착 국면을 어떻게 관리할 것이며, 언제 어떤 조건에서 ‘교착 이후(以後)’의 국면으로 넘어갈 것인지에 관한 전략을 함께 나누고 있어야 한다. 한국과 미국은 ‘기다리는 전술’이란 명분으로 손을 놓고 있을 게 아니라 ‘교착 이후’의 대북 정책을 이끌 전략적 나침판을 마련해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중국·러시아 등 다른 6자회담 참가국들도 이 과정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래야 북한이 돌이킬 수 없는 도발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고, 교착 국면 이후의 상황에서 북한을 효과적으로 설득하고 압박하면서 문제를 풀어갈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한국과 미국이 대북 정책의 근본 청사진을 새로 그릴 때다.

출처: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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