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16일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을 계기로 명동성당 일대는 1주일 가까이 북새통을 이뤘다. 애도 인파는 종교를 뛰어넘고 있었다. 서울 명동만이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그리고 해외 교민들까지 동참해 추기경의 선종을 애도했다.

일부 언론은 김 추기경을 「200년에 한번 나올 수 있는 인물」로 추모했다. 필자는 그 대목이 오늘을 살아가는 내로라하는 인물들에게 「이름에 어울리는 역할을 하라」는 채근으로 들렸다.

추기경의 선종 며칠 전까지 명동성당 갤러리에서는 「순교의 꽃」이라는 제목으로 전시회가 열렸었다. 중국 장춘가자에 있는 김대건 신부 순교기념관의 운영을 돕기 위해 마련된 전시회였다. 외교안보포럼을 운영하는 김현욱 박사가 후원하고 나선 전시회로, 이름을 대면 금방 알 수 있는 저명인사들이 먼저 다녀간 터였다.

전시 마지막 날 잠시 현장을 들른 필자는, 현재 한반도 정세에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미국 디펜스포럼의 수잔 솔티 대표와의 만남까지 준비된 사실을 알고 함께 참석했다.

2월17일 오전, 이춘근 박사님을 비롯한 외교안보포럼 회원 20여명과 함께 서울 서교호텔에서 수잔 솔티 대표를 만났다. 서울평화상을 수상한 수잔 솔티 대표는 멋진 외모만큼이나 현재 수행하는 역할 또한 주목받는 훌륭한 일이었다.

잘 알려진 대로 솔티 여사는 디펜스포럼을 통해 북한의 인권 개선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서울평화상을 수상한 바 있다. 디펜스포럼은 대북 방송 및 북한으로 보내는 전단지 살포 등을 지원하는 재단법인이다. 우리가 미처 감당하지 못하는 분야에서 나름의 소명감으로 열정적으로 일하는 자세는 김대건 신부나 김수한 추기경이 걸었던 순교자의 길과 흡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도 우리나라를 방문한 바 있었다. 물론 힐러리 장관과 솔티 대표가 맡고 있는 분야는 서로 다르지만 북한과 관련된 분야에서 김정일 위원장 등을 압박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 점에서 두 여성 지도자의 역할은 특히나 돋보였다.

1.어떤 동기로 이일을 하게 되었는지요?

저는 기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하나님에게 『당신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일이 곧 저의 가슴을 아프게 해주세요』라고 늘 기도했습니다.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명백하게 하나님과 저의 가슴을 아프게 하였고, 그 모든 것을 알게 된 뒤로는 이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디펜스포럼은 1996년 북한인권과 난민과 관련된 일을 시작하였으며, 그 해 처음으로 탈북자들을 미국으로 모셔와 그들이 북한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서 탈북을 하게 되었는지에 관해 증언을 하게 했습니다. 누가 이 세상에서 가장 박해받고 있는 북한 주민 및 난민들을 위해 싸우고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탈북자들이 이끄는 몇몇 단체들, 그리고 헌신적 투사들과 함께 하고 있는 지금의 이 일이 참으로 중요하다고 확신하게 된 이유입니다.

2.인권 문제와 관련해 관심을 갖고 있는 나라는 북한 이외에는 어떤 곳들이 있는지요?

지금 세계에는 많은 비극과 부정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다르푸르, 티벳 그리고 버마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곳에서 일어나는 참사들로 인한 고통이 결코 작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만, 조지 클루니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다르푸르를 옹호하고 있습니다. 달라이라마와 리처드 기어 등은 티벳을, 그리고 아웅산 수지 여사는 버마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볼 때 북한 같은 참상은 전례가 드문 경우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매년 4월 말, 워싱턴 D.C.에서 개최하는 '북한자유주간'에 탈북 인사들을 모시고, 의회에서 증언할 기회를 마련하며, 여러 사람들이 힘을 모아 집회와 여타 항의운동을 전개함으로써 북한의 실상을 외부 세계에 알리고 인식시키는 것은 매우 중요한 행사임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3.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활동을 하면서 어려움은 없는지요?

『부시 행정부나 클린턴 행정부 시절의 미-북 관계는 핵 문제에 치우치는 바람에 「인권」이 후순위로 밀리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희 디펜스포럼은 지난번 40만 달러에 이어 이번에 50만 달러의 지원금을 국무부로부터 받아냈습니다. 이 지원금으로 대북 전단지는 물론 대북 라디오 방송에도 많은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방송은 하루 5시간 정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자유북한방송은 북한 내에 있는 청취자들에게 진실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북한에 풍선 날리기 운동을 지지하는 사람들로부터 개인 기부금도 받고 있습니다. 전단지는 북한 주민들 입장에서 보면 바깥 세계를 접하는 유일한 창구인 셈이죠.  북한 난민들을 돕다가 중국 감옥에서 옥살이를 하신 두 분, 난민 구출자로 널리 알려진 필립 벅 목사님 그리고 스티브 김 선생님과 함께 중국에서 인신매매를 당해 구금 상태에 있는 탈북자들을 구출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탈북자들을 초청해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일도 계속하고 있는데, 이처럼 다양한 일을 추진하다 보면 어려움이야 많지요.』

4. 북한을 지원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기구가 유엔이라고 생각되는데, 유엔과는 협조는 잘 되는지요?

『말씀하신 것처럼 유엔이 맡아야 할 북한 인권 문제의 많은 부분을 우리가 담당하고 있는 셈입니다. 북한의 인권은 세계적으로도 최악의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체제 차원의 인권 탄압도 심각해 국제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지요. 그렇다면 유엔이 앞장서서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개선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유엔은 그다지 신뢰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5. 북한을 직접적으로 상대하는 분야에서 한국은 접근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는 간접적으로라도 포럼의 활동에 도움을 주고 있는지요?

『저도 처음에는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돕는 줄 알았습니다. 10년 전부터 한국을 방문할 때면 공항에서부터 귀빈용 승용차를 제공해주는 등 많은 협조를 해오고 있거든요. 그 점을 보고 한국 정부도 북한 인권 개선에 많은 관심과 협조를 하는 것으로 생각했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부터 귀빈용 승용차는 저희의 활동을 돕거나 예우하기 위한 게 아니라, 은연중 감시를 하기 위한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로는 그런 일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6. 북한이 세계 최악의 인권 탄압국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렇다면 북한 주민들의 종교생활이 가능하다고 보시는지요?

『디펜스포럼이 주도하는 북한 인권 개선 운동은 일종의 영적인 전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평양은 구한말 기독교를 가장 먼저 받아들인 지역으로 한때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불렸던 곳 입니다. 그런 점에서 북한 주민들의 인권 상황이 획기적으로 개선돼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도 저희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7. 이런 일을 하는 다른 단체도 있는지?

『세계적인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근래 미국 정부 차원의 지원금은 늘고 있습니다. 국무부는 그 밖에도 여러 가지 명목으로 지원을 해주고 있는데, 금액으로 치면 거의 100만 달러에 달합니다. 그러다 보니 대북 인권 운동이 「돈이 되는 일」로 인식되기 때문인지, 탈북자 관련 운동에 관심을 갖는 단체가 갑자기 많아졌습니다. 오래 전부터 정성을 들여 온 단체들이 조금씩 성과를 얻고 있는 가운데, 아직은 활동 성적이 미미한 단체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 시간에도 죽어가는 많은 북한 주민들을 생각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북한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종합적으로 보면 보다 내실 있게, 보다 의미 있는 활동을 벌이는 단체가 더 많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절실한 과제입니다.』

8. 현실적으로 북한이 좀체 변화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데, 외부 단체들의 인도주의적 활동이 과연 효과가 있겠느냐는 회의론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만.

『그렇게 생각할 여지도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앞으로 북한이 어떤 지도자 구도로 어떻게 변하든 북한은 달라져야 합니다. 북한 인권의 실상과 정권 차원에서 저질러진 범죄를 전세계에 알려야 한다는 것이죠. 탈북자들의 증언 등을 통해 북한 인권의 실상을 기록하고 증거로 활용해야 합니다. 영상 매체를 통해 좀더 리얼한 방법으로 접근하다 보면 북한 사회에도 점차 자유와 인권의 물결이 스며들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9. 한국 정부의 대북 지원이 더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정치적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녀가 굶어 죽는 것을 지켜보던 부모가 그 고통을 견디다 못해 탈출하는 그들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극한상황에 처한 탈북자를 방치해서는 곤란하지 않습니까. 그런 점에서 탈북자 단체에 대한 지원은 확대해야 합니다. 그들을 위한 교육시설을 마련하는 것은 물론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은행대출제도 등으로 도와줄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그렇게 구축한 제도적 인프라는 훗날 통일이 되면 분명 한국에 큰 이익이 될 것입니다.』

10. 탈북자로 위장한 간첩이 미국에 침투하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실제로 미국에서 그러한 경우가 적발된 사례가 있는지요?

『실제로 그런 사례가 있다고 해도 그것을 적발해내기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누가 어떤 신분인지를 정확히 알아내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처럼 불순한 의도로 미국으로 입국하는 경우는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딱한 처지에 놓인 탈북자들에 대한 지원을 늘리기 위해서라도, 불순한 목적을 지닌 탈북자들은 한국 정부나 미국 정부가 함께 잘 감시하고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필자가 준비해간 질문을 다른 분이 대신 물어준 부분까지 함께 정리했습니다. 서교호텔 간담회에서 그리고 미국에서 전화로 헨리 송이 통역을 해주었고 부족한 부분은 서면질문으로 보충했습니다. 4월 27일 워싱턴에서 열리는 디펜스포럼에 사단법인인 외교안보포럼 회원들도 참석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한국 출신이지만 유엔을 객관적으로 이끌어야 할 입장이기 때문에, 반기문 유엔사무총장도 북한 문제에 관여하는 데 나름의 한계가 있다고 합니다. 이에 외교안보포럼 회원들은 워싱턴을 방문한 뒤 뉴욕의 유엔 본부를 방문해 반기문 총장을 만나서 북한 문제에 유엔이 좀 더 적극적으로 임해줄 것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솔티 대표는 자리를 함께 한 자유북한방송 김성민 대표에게 「형제와 같다」는 표현으로 친밀감을 나타냈고, 김 대표는 그간의 긴밀한 협조에 대해 솔티 대표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