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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개성에서 열린 남북 당국자 접촉은 22분 만에 각자 입장을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것으로 끝났다. 이번 접촉이 어떤 성과도 내놓지 못할 것이라는 점은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다.
북측은 이날 한국이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참여하면 개성공단이 문을 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협박했다. 북한은 우리 정부 안팎에서 북한이 들고나올 최대 강경책으로 꼽았던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그러나 개성공단이 남북 어느 쪽에 더 절실한 존재인지는 누가 봐도 명백하다. 남측 입장에선 중소기업과 북한 노동력이 결합한 산업단지 중 하나라는 경제적 측면보다는 남북 경제협력을 보여주는 정치적 상징성이 더 크다.
반면 북한은 개성공단에서 근로자 임금을 통해 연간 3400여만달러를 가져가고 부지 임대료를 비롯한 유·무형의 경제적 이득을 챙기고 있다. 북측 근로자만 해도 3만9000여명이 일하며 생계를 해결하고 있다. 한 해 무역액이 30억달러 안팎인 북한 경제 규모에서 개성공단의 경제적 의미가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도 북한은 툭하면 개성공단이 마치 남한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몰아세우고 때론 개성공단이 자신들이 붙잡은 인질인 양 취급하고 있다.
이래서는 개성공단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없다. 북한이 한국의 PSI 참여와 개성공단을 연계한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PSI 참여는 한국이 독자적 판단에 따라 결정하는 외교안보 정책이다.
남측은 이날 북한이 면회도 허용하지 않은 채 23일째 억류하고 있는 현대아산 직원 유모씨에 대한 접견을 요구했지만 북측은 이마저 거부했다고 한다. 북한은 최소한의 인도적 원칙마저 지키지 않는 존재임이 새삼 확인된 셈이다.
정부는 북한이 개성공단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나선 이상 대북 정책을 원점부터 다시 검토해야 한다. 이 정부에 닥친 남북관계의 위기 상황에 걸맞은 비상한 각오로 이 문제를 다뤄야 한다.
무엇보다 최근 정부 내에서 벌어졌던 혼선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대북 정책의 원칙과 로드맵을 세우되,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태도를 함께 갖춰야 한다. 북한이 국제 규범조차 무시하고 도발을 일삼는 존재이지만 이런 북한을 상대할 수밖에 없는 게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출처: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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