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은 지금 서울과 마찬가지로 거센 소나기가 내리고 있는 것으로 기상청 일기예보에 의해 전해지고 있다. 북한에 억류되어 대남 협박을 위한 인질이 된 채 22일째를 맞고 있는 현대아산 직원의 심정은 그야말로 절망감 그 자체일 것이다.

북한정권은 ‘체제비방’이라는 그 범위를 규정할 수 없는 애매모호한 죄목을 내세워 남한 당국과의 접견도 허락하지 않은 채 현대아산 직원을 잡아두고 있으며, 이와 함께 북중 국경지역에 접근했던 미국 국적의 여(女)기자 두 명도 역시 마찬가지의 형태로 억류하고 있다.

남한의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 참여를 선전포고라 주장하고 “서울이 군사분계선(DMZ)에서 불과 50km밖에 떨어져있지 않음을 잊지 말라”고 협박하는 북한의 행태로 미루어 이번 억류는 ‘인질’의 성격임이 분명해 보인다. 다름 아닌 ‘테러’인 것이다.

억류된 남한 국민이 철저히 협박을 위한 인질이라는 것은 북한이 남북관계가 악화되는 와중에 돌연 남한 국민을 억류해 남한과의 접견마저 막은 채 아무런 법적 절차도 밟지도 않으면서 일방적으로 21일 남북 접촉을 제안한 것에서도 입증되고 있다.

그런데 좌파정부 출범 이후 한국 정부는 그 동안 자국민이 범죄 집단에 의해 인질이 되는 사태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해온 바 있다.

중동 등지의 테러리스트 세력에게 납치된 국민들을 모두 현금과 맞바꾸는 형태로 구출해왔으며, 이를 성공적인 구출이라 자화자찬했다. 결국에는 ‘한국=협박에 약하다’는 공식을 국제 테러리스트들에게 확인시켜준 꼴밖에는 되지 않았다.

때문일까, 북한도 그들의 협박이 관철되지 않자 인질이라는 카드를 들고 나와 이명박 정부를 협박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入北은 그 자체가 자살행위였다

그런데 사실 북한의 사법기관 자체가 북한의 인질 억류를 정당화하는 보호막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북한은 헌법 제7절 158조에서 ‘재판은 공개적으로 진행하고 피소자의 변호권을 보장하지만 법에 따라서는 비공개로 재판이 진행될 수 있다’고 밝히고 있지만 어떤 ‘법’에 근거해 재판을 비공개로 진행하는지 뚜렷이 설명하지 않아 이번과 같이 그 신변안전조차 파악할 수 없는 인질극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그리고 161조에서 ‘북한의 최고 재판기관인 중앙재판소는 모든 재판소의 재판 사업을 감독 한다’고 명시한데 이어 162조에서 ‘중앙재판소는 자기 사업에 대해 최고인민회의와 그 휴회 중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앞에 책임진다’고 밝혀 재판 과정이 철저히 정권의 의도대로 진행됨을 드러내고 있다.

게다가 157조 2항에서는 ‘중앙재판소는 ‘계급적 원수들’ 및 온갖 범법자들에 대한 반대와 적극 투쟁을 독려 한다’고 밝혀 80년 10월 13일 제6차 당(黨)대회에서 개정된 노동당 규약에 명시된 ‘계급노선’이 말하는 계급적 원수인 자본계급, 즉 남한에 대한 절대적인 적대의식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입북(入北)한 남한 국민은 애초부터 북한 헌법에 의거해 언제든 ‘계급적 원수’로 규정되어 강제 억류될 소지를 다분히 남기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金-盧 정권이 무능한 탓에 이를 몰랐는지 아니면 알면서도 묵인했는지 그 가능성은 후자 쪽에 가깝다 할 수 있지만, 우리 국민의 입북은 그 자체가 자살행위였다.

憲法에서 인질납치를 정당화하는 세력과 무슨 협상인가

金-盧 정권에게 이번 사건의 책임을 물어 응당한 처벌을 내려야함은 마땅하다. 하지만 헌법에서 ‘계급적 원수’를 구실로 인질 납치를 정당화하고 있는 테러 세력에게 이미 억류되고만 우리 국민을 구출하기란 쉽지 않다.

21일 접촉에서 북한이 내놓을 인질 석방의 대가는 분명 PSI 참여 입장 철회와 6.15 공동선언의 이행과 같은 ‘남조선 계급적 원수’들의 사실상의 항복일진대, 이에 응하는 것은 결국 대한민국과 5천만 국민의 안전을 해치는 행동이 되고 말 것이다.

외교의 핵심은 주도권이다. 주도권을 잃는다면 지난 반세기 동안 갖은 범죄행위를 저질러 온 북한의 치밀한 협박 전술에 말려들어 그들의 요구를 거부하기 힘들어지며 그만큼 인질 석방도 어려워질 것임은 자명하다. 남북 관계를 주도할 방안은 무용지물(無用之物)의 협상이 아닌 바로 원칙의 견지이자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조차 모르게 하는 기만(欺瞞)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명박 정부는 우리 국민이 인질이 되어 있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원칙을 잃어버리고 우왕좌왕하며 북한에게 ‘패’를 보여주는 실수를 저질러 주도권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는 듯 보인다.

정부는 이번 인질극에 대해 지극히 소극적인 태도로 대응하는 것도 모자라 당초 북한과는 무관함을 주장한 PSI 참여 발표를 21일 남북 접촉 이후로 연기함으로서 그 동안 북한을 속이기 위한 기만(欺瞞)전술을 전개해왔음을 스스로 시인했다.

정부는 인질 문제는 북한의 명백한 범죄행위임을 경고해 원칙을 견지하는 한편 PSI 참여를 그대로 강행해 북한정권의 목을 옥죔으로서 기선을 제압당한 북한이 결국 인질을 자진 석방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옳았던 것이다.

비록 대륙간 탄도탄을 발사해 국제적 고립을 자초하고 장사정포의 서울 타격과 서해상에서의 국지적 도발을 위협하는 등 위험한 폭주를 하고 있는 북한이 자칫 인질을 해(害)할 위험이 있다 하더라도 정부는 이를 단호히 해결하는 동시에 보다 큰 틀에서 남북관계를 바라보아야만 했다.

21일 접촉에서 정부는 북한과의 그 어떠한 협상도 무용지물임을 깨닫고 범죄에는 반드시 응당의 대가가 따를 것임을 경고하는 한편 PSI 참여는 물론 모든 강력한 압박을 동원해 북한정권으로부터 주도권을 빼앗고 수세(守勢)에 몰린 형국을 공세(攻勢)로 전환시켜야 한다.

이를 잊는다면 현재의 남북관계 질서의 붕괴에 따른 북한의 남북관계 주도라는 상황은 한 층 더 악화될 것이고, 그것은 곧 2012년 적화통일을 천명한 북한에 의한 대한민국의 위기로 이어질 것이다.

물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테러 세력의 인질이 된 자국민을 구출하기 위한 노력 또한 끊임없이 진행되어야 한다. 또한 이를 빌미로 해서 발발할 수 있는 반정부 촛불난동도 강력한 공권력으로 진압해야한다(2009년 2월 19일자 '北, 교전 중 개성공단 인력 사살로 촛불난동 기획?' 분석기사 참조).

대통령은 대한민국과 5천만 국민 모두를 책임진 막중한 자리임을 잊지 말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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