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으로 향하는 북한발(發) 우편물들이 급작스럽게 등장하고 있어 재미동포 사회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한인라디오방송국(KRB)의 아침 프로그램 ‘여성싸롱’의 진행자인 장미선 씨는 16일 방송에서 현재 황해남도에 거주 중인 북한 주민 안OO씨가 미국의 사촌누나 이OO씨에게 보낸 편지를 소개했다.

지난달 9일 자필로 작성되어 19일 황해도 해주 우체국을 통해 발송된 편지는 북한의 가족들이 잘 지내고 있고 사촌누나와 큰아버지의 안부를 묻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겉봉에 적힌 수신자 주소에 살고 있던 중국인으로부터 편지를 전달받아 KRB에 보낸 재미교포 김영주 씨는 “편지 겉봉에 영문으로 ‘Yi Chong Won’으로 쓰여 있기에 내가 처녀 때 성이 원 씨라 뜯었더니 전혀 엉뚱한 내용이었다”며 “봉투를 살펴보니 보낸 사람 주소가 ‘조선인민공화국 황해남도’라 되어 있어 깜짝 놀랐다”고 밝혔다.

북한에서 작성된 편지가 중국을 거치지 않고 현지 우체국에서 곧바로 미국에 전달된 사례는 지난달에도 있었다.

당시 KRB는 함경북도 부령군에 거주하는 북한주민 노OO씨가 소식이 두절된 서울의 아버지를 찾기 위해 뉴욕에 사는 고모부에게 보낸 편지를 소개했다.

노OO씨의 고모부는 재미교포 사회에서 대표적인 행사 장소로 자리 잡아가는 ‘대동연회장’의 김중현 회장이었으며, 그는 당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과 미국 간의 왕래 편지는 보통 2~3개월이 걸린다”고 밝혀 북한발 편지가 모두 중국을 거치게 됨을 시사한 뒤 “이 때문에 (수신자가) 이사를 가는 경우 편지가 잘못 전달되는 수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김 회장에게 전달된 편지는 1월 14일에 북한 현지에서 발송되어 약 5주 만에 미국에 도착했으며, 김 씨에게 전달된 편지는 이보다 빠른 23일 만에 미국에 도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불과 5주 만에 김 회장에게 전달된 편지는 70원(북한 원화 기준)짜리 봉투와 30원 우표 5장을 합해 도합 220원이라는 발송요금이 소요되었으며(북한 주민 한 달 평균월급은 3천6백 원으로 추정), 23일 만에 김 씨에게 전달된 편지는 도합 270원의 발송요금이 소요되었다.

이 중 황해도발 편지를 받아 김 씨에게 전달한 중국인은 그 주소지에서 20년 이상 거주했으며, 이로 미루어 편지를 보낸 북한 주민은 비싼 발송요금에도 불구하고 애당초 수신자 주소를 잘못 기재한 것으로 짐작되었다.

이들 편지는 모두 ‘빠른우편’ 등의 소인이 전혀 찍혀 있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발신된 장소는 중국이 아닌 북한 현지였다

그런데 남북의 이산가족이 분단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서로를 잊지 못해 그리워하는 훈훈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발송된 일련의 편지들은 한 가지 미심쩍은 부분을 남기고 있다.

편지가 브로커에 의해 은밀히 운반되어 중국의 우정국(우체국)에서 발송된 것이 아니라, 북한 현지에서 북한 우체국을 거쳐 곧바로 발송되었다는 점이다.

북한인권 단체에 종사 중인 탈북자 최OO(女. 2001년 탈북)씨에 따르면 북한의 우편물, 특히 해외를 오가는 우편물은 엄격한 검열을 거치게 된다.

최 씨는 “체신성에서 편지 겉봉을 뜯어서 내용을 확인한 후 다시 붙여 보낸다는 소문이 파다했다”며 “편지를 받은 중국의 친척들이 북한을 방문하면 어떻게 알아냈는지 당국에서 감시를 한다”고 밝혀 편지가 철저히 감시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북한의 우편 업무를 관장하는 체신성(체신상 유영섭)은 김정일이 장악한 최고인민회의에 의해 움직이는 내각의 산하기관으로서, 북한은 헌법 제6장 4절 117조 7항에서 “내각이 체신 등의 사업을 조직 집행 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9항에서 “국가 관리질서 수립을 위한 검열 및 통제 사업을 집행 한다”고 노골적으로 밝히고 있다.

북한은 한국전 이후 일반 주민이 서방국가, 특히 한국인과 사사롭게 편지를 주고받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으며, 또 실제로 북한 주민이 버젓이 현지 우정국을 통해 최근 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 미국의 한국인에게 편지를 발송한 사례는 올 해가 처음이라는 점에서 이번 편지들은 의혹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편지 발송에 소요된 비용 또한 의구심을 남기고 있다.

탈북자 최 씨는 “황해도에서 골동품 도굴로 큰돈을 버는 사람도 있지만 이는 극소수”라며 “장사와 밀수가 횡행하는 국경연선 지역과는 달리 황해도는 서해와 내륙에 가로막힌 지형이라 경제가 한 층 열악한 실정”이라고 밝혀 황해도의 일반 주민에게 270원은 적지 않은 돈임을 시사했다.

해외동포들의 감수성 자극을 통한 대북송금 유도.. 日조총련의 경우와 흡사해

그런데 앞서 지난 1월 16~17일 양 일 간에 걸쳐 미국에서는 종북 세력들의 대대적인 총회가 개최되어 반(反) 이명박-적화통일 결의가 선언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자유민주 통일을 기치로 하고 있는 재미 언론매체인 미주통일신문사(대표 배부전)의 당시 보도(2009년 1월 28일자 ‘北, 美에 제2의 조총련 구축.. 충격주장’ 보도기사 참조)에 따르면 한국 정부에 의해 이적 단체로 규정되고 있는 단체인 재미동포전국연합회는 LA 코리아타운 소재 JJ그랜드 호텔에서 총회를 열고 ‘미국판 조총련’의 조직 구축을 완료했다.

지난 반세기 동안 북한 정권의 자금줄과 공작 거점의 역할을 하다 이미 붕괴해버린 일본의 조총련을 대체할 목적으로 북한이 미국에 조총련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는 주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지난 95년에는 ‘재미교포 사회를 노리는 북한의 침투책략(저자 은인영)’이라는 논문이 발표되기도 했으며, 2006년에는 김찬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이 “방북 당시 노철수 해외동포원호위원회 참사가 재미 조총련 구축에 동참할 것을 요구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북한의 美조총련 조직 구축 완료 이후 불과 한 달여 만에 발생한 일련의 북한발 편지의 미국 배송 사건은 북한이 일본 조총련으로부터 자금을 받을 때 사용한 수법과 흡사해 그 의혹을 한 층 증폭시키고 있다.

1955년 조총련 출범 이후 북한 정권은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들에 대한 재일동포들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수법으로 재일동포들이 북한에 돈을 송금하게 함으로서 막대한 유흥비와 군비(軍費)를 비축할 수 있었다.

대북송금은 전문가를 통하는 것이 바람직

북한 현지 주민이 뇌물 등의 편법(便法)을 동원해 검열을 피해 편지를 발송했을 수도 있지만 이러한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앞서 언급했듯 황해도 지역은 북한 내에서도 경제상황이 가장 열악한 지역 중 하나이며, 브로커를 통한 편지 발송에 소요되는 금액과 체신성 간부에 대한 뇌물이 가격 대비 면에서 차이가 거의 없기에 굳이 위험한 북한 우체국을 거칠 이유가 없다.

게다가 북한은 올 해 신년사설에서 ‘혁명적 대고조’를 언급한 이후 각종 검열을 강화하고 있어(2009년 3월 20일자 ‘中현지 밀매상, “지난주부터 입북 금지당해” 보도기사 참조) 편법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오히려 앞서 은밀히 전달된 편지가 예상치 못하게 라디오 방송국에 전달돼 방송됨으로서 재미교포 사회에 대한 선전 효과를 맛 본 북한 정권이 이를 전략화해 악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 현실인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기에 남북 이산가족들의 편지 왕래는 당연한 것이며, 그 누구도 막을 권리가 없고 멈추어서도 안 된다. 하지만 이것이 북한 정권에 의해 불순한 목적에 이용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따라서 재미교포 사회는 북한의 가족친지를 돕기 위해 돈을 송금할 때 북한 현지 은행을 이용할 것이 아니라 대북송금 분야에서 믿을 수 있는 전문가를 통해 가족친지들에게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 주민이 은행에서 출금 할 때는 출금액 중 상당량을 수수료 명목으로 은행에 상납해야 하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도 은행을 거의 이용하지 않고 있는 현실을 재미교포 사회는 인지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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