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정착한 1만6,000여명의 탈북자들, 대부분은 ‘고난의 행군’이라 부르는 북한의 大식량난 이후 자유를 찾아온 이들이다. 어느새 한국사회를 이루는 당당한 구성원이 된 탈북자들. 재일 통일일보는 최근 수년사이에 입국한 탈북자 가운데 북한에서 엘리트교육을 받은 3040세대들과 覆面 좌담회를 가졌다. 좌담에는 인민군 상좌(=대령)로 국가보위부 소속 외화벌이 요원이었던 이명석(43세,2003년 입국)씨와 예술단의 베테랑 희극작가였던 문정희(38,2007년 입국)씨, 폐쇄사회에서도 탁월한 장사수완을 보였던 김현성(33,2004년 입국)씨가 참가했다. 신변 문제로 세 사람의 얼굴과 실명은 공개하지 않는다. [서울=이민호]

귀국짜-째포-반쪽발이

탈북자들의 이야기보따리는 김일성의 ‘공화국은 지상낙원’이란 거짓 구호에 속아 북한으로 간 재일동포로부터 풀어헤쳐졌다. 1980년대말 북한의 추정 GDP가 200억 달러일 때, 조총련의 경제 활동규모는 650억 달러. 당시 총련은 북한인구의 1%에 불과했지만 북한의 3배가 넘는 경제력을 갖고 있었다. 탈북자들은 북한의 시장경제 첫 실험은 1959년부터 일본에서 넘어간 10만명의 북송재일동포(이중 7000명은 일본인妻)로부터 비롯됐다고 증언한다.

文 - 북송동포들이 가장 많이 걸리는 병이 결핵이다. 면역이 떨어져서인지 북한의 원래 주민들보다 더 잘 걸리는 것 같다. 자본주의 나라에서 와서 굶주려서 결핵 환자가 되다니 기가 찰 노릇 아닌가.

金 - 북한의 도시에서 북송동포를 만나는 일은 흔하다. 학생시절 클래스메이트 40명 가운데 6~7명이 북송동포의 자녀였다. 그만큼 쉽게 만날 수 있다.

李 - 북송동포들이 오던 60년대에도 북한의 主食은 옥수수밥이었는 데 ‘계란밥’인 줄 착각했다고 하더라. 수용소에 갔다온 후 실어증에 걸리고,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수용소로 끌려가고, 미치거나 자살하고... 비참하다.

文 - ‘고난의 행군’때 마사코라는 일본여인이 굶어 죽어가는 과정을 목격했다. 구걸하러 다니는 마사코에게 몇 번 팥죽을 나눠 주기도 했다. 마사코는 끝내 그해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쓰레기장에서 얼어 죽었다. 굶어죽은 시체가 뒹굴고 제 식구 입에 풀칠하기도 바쁘던 때니 알고서도 도울 수 없었다.

李 - 북한에는 3개 부류 51개 출신성분으로 계급을 나누는 데, 북송동포들은 ‘적대층’ 바로 윗 계층인 ‘복잡군중’으로 분류된다. 그들은 100% 여기에 속하므로 언제나 감시를 받는 요시찰자인 것이다.

金 - 북송동포라도 일본에 부자 친척을 둔 이는 영웅 취급을 받는다. 고향 함흥에서도 한 북송동포는 일본친척이 해마다 김일성 부자의 생일 등 명절 때마다 거액을 송금해오는 덕에 선망의 대상이 됐다. 생일 날짜에 맞춰 일본 엔화로 216만엔(김정일 생일)과 415만엔(김일성 생일)씩을 꼬박꼬박 부쳐오고 일제차를 몰고 다녔다. 하지만 일본에서의 송금이 중단되자 그의 주위에서 굽신대던 그 많던 당·군 간부들은 온데간데 없고, 그는 일순간 하층민으로 전락했다.

북한에서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인식은 심하다. 북송동포들은 귀국‘짜’라고 부르며 깔보는 게 예사다. 재일동포를 줄여서 ‘째포’라고도 하고 더 심하게는 ‘반쪽발이’ ‘쪽발이’라 부르며 멸시한다.

李 - 북송동포들은 북한의 경제개혁 및 생활 변화을 이끌어낸 선구자들이다. 당장 밥과 국, 국수 이 3가지 밖에 없던 북한의 식탁에 커피와 카레라이스, 카스테라, 돈까스, 고로케를 보급했다. 찻집도 그들이 효시다.

내가 아는 카스테라상은 하루에 박스로 20개를 만드는 데 없어서 못팔았다. 얼마나 인기가 많으면 당 간부들이 사전예약을 해놓고 집으로 배달해 먹었다. 그렇지만 카스테라는 보통 주민들에게 그림의 떡이다. 가격이 비싸 환갑이나 칠순잔치 때나 먹는 귀한 음식이다.

文 - 2년전에는 암시장인 장마당에서도 카스테라를 구할 수 있었다. 전에는 평양 같은 대도시에서나 구하는 당간부들이나 먹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중국에서 밀가루와 분유가 많이 수입돼 그런 것 같다. 지금도 보통 빵보다 10배는 비싸다.

李 - 따지고 보면 개성공단의 원조는 1980년대 중반 재일조총련들이 북한에 세웠던 합영회사들이다. 광산과 의류, 피복, 서비스(식당) 등에 100개가 넘는 기업들이 들어섰지만 100% 망했다. 조총련 간부들이 1989년 봉사매점을 세워 전부 기증하고 일본에 돌아가기도 했다.

지금의 북한이란 곳은 비즈니스의 목적인 이윤을 낼 수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 자본주의가 먹혀 들 틈새가 없다. 하나를 주면 둘을 달라 그러고, 그렇게 하면 다시 왜 그것밖에 안주냐고 따지는 곳이다.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이다. 오죽하면 북송동포들 사이에서는 “꼬리부터 먹으면 소리라도 지를 텐데 머리부터 먹으니 ‘켁’ 하고 소리도 못낸다”는 말이 돌았을까.

김대중은 ‘장군님의 혁명전사’

한국사회에서 전직 대통령 김대중 씨에 대한 평가는 상반된다. ‘햇볕정책’의 창시자로 남북 화해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호평이 있는 반면, 자유와 인권을 옹호하는 민주투사를 가장해 대통령에까지 오른 親北인사로 ‘김정일의 하수인’이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북한 주민들은 김대중 씨를 어떤 사람으로 보고 있을까?

李 - 2000년 6월, 13일로 예정됐던 김대중-김정일 회담 일정이 하루 전날 연기됐다. 그 때 평양의 당·군의 고위간부들 사이에서는 “돈이 미납되었기 때문”이란 이야기가 돌았다. 당간부들도 술자리에서 “김대중이 3억달러 밖에 입금하지 않아 못오게 된 것”이라 떠벌렸다. 북한 핵심부에서 나오는 정보는 대개 김정일의 충복들이 김정일의 위대성을 자랑하다가 새는 경우가 많다.

金 - 김대중은 일반 주민들 사이에서도 오래전부터 ‘장군님의 전사’로 불려왔다. 1970년대 김대중이 소위 민주화운동을 할 때 장군님이 얼마를 지원했다는 말들이 꾸준하게 새어 나왔다. 그런 사람이 남쪽에서 대통령이 됐으니 북한 주민들이 ‘곧 통일될 것’이라 믿는 건 당연하다. 나도 그 때는 금방 통일되는 줄 알았다.

李 - 북한 사람들은 개성공단이 세워질 때도 이건 김대중이 장군님께 바치는 선물이라고 여겼다. 김정일은 김대중 집권 후 자기 뜻대로 남한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무척 답답해했다. 측근들에게 “알다가도 모를 남조선이다, 다원주의가 무섭긴 무섭네”라 토로했다고 한다.

알다가도 모를 하지만 강한 대한민국

死線을 넘어 천신만고 끝에 정착한 대한민국. 탈북자들의 눈에 비친 한국 사회는 ‘알다가도 모를 곳’이었다.

李 - 한국은 유약해 보이면서도 강하다. 지난 2008년 여름 좌파들이 주동한 광우병 촛불파동때 서울시내 중심가가 점거되고 경찰력이 마비되지 않았나? 북한의 시각에서 그 정도 지경이 되면 나라가 망한다고 본다. 그런데 계속될 것만 같던 혼란상황은 일순간에 진압됐다. 그리고 마치 아무 일 없었던 듯 모두 평상으로 되돌아가는 걸 보고 무척 놀랐다. 여러 목소리를 자유롭게 낼 수 있는 한국사회의 다원화 그 힘은 알다가도 모를 일, 여하튼 대단하다.

金 - KBS의 ‘콘서트7080’이란 음악프로를 보며 충격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70년대 80년대를 독재시대라고 부르는 데, 그 당시 음악을 들어보면 다양한 감성들이 녹아 있다. 우리가 북한에서 혁명가와 군가를 부를 때 남쪽은 발라드를 노래하고 있었다.

李 - 말이 같은 민족이지 남과 북의 갭은 너무 크다. 외국이나 다름없는 것 같다. 언어 차이도 심하다. 남쪽에서 쓰는 말 북한 사람들은 30%는 이해 못할 것이다.

文 - 한국은 경제적 도약에 비해 정신 의식은 뒤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지하철 안에서 책 읽는 사람을 찾기 힘들고 신문도 안읽는 것 같다. 한국에 올 때 ‘내가 본 북한의 진실을 말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는 데,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 어둡고 고생스런 이야기에 도통 관심이 없어 보인다.

金 - 술 문화도 다르다. 북한에서는 한 잔씩 돌리고 다음부터는 스스로 따라 마셨는 데 이제는 남의 잔 비었나 관찰하는 게 일이다. 술 마시는 게 좀 피곤해졌다. 거리낌없이 성형하는 여자들, 남녀 연애관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하긴 북한에서는 대학생이 연애하는 것도 죄가 된다. 발각되면 퇴학을 당한다. 대학 다닐 때 친구가 연애죄(풍기문란죄)로 탄광에서 3년간 노역하는 것도 봤다.

文 - 남쪽 여자들은 북한 여자들에 비하면 행복하다. 북한에서 여자는 모든 생계를 도맡아야 한다. 남자들도 사회주의노동법에 의해 일을 하지만 생계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남자는 장마당에 나가는 것도 불법이다. 이러니 여자들이 장사에 나서고 며칠만에 남편 월급을 번다. 남자들이 도움이 안되니 ‘낮전등’ ‘풍경화’라고 부른다. ‘남편은 불편’이라고도 한다. 예술단의 작가인 나도 배급으로는 살 수 없어 장사를 해야 했다. 탈북자중에 여자가 많은 건 생계를 책임지도록 하고 있는 사회체제의 탓도 있다.

통일의 가교가 되리

李 - 1만6000명의 탈북자 중 현실상황을 분석하고 미래를 고민하는 이는 별로 없다. 저 혼자 먹고 살면 그만, 심지어 ‘장군님이 나빠서가 아니라 그저 배가 고파 한국에 왔다’고 말하는 탈북자도 있다.

하지만 과거를 망각하면 자기정체성을 잃어버리는 법이다. 고난의 행군 시절 북한에는 사람시체가 개보다 많았다. 아침에 일어나 동네 언덕에 올라가 보면 사방에 시체가 널부러져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김정일이 나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나?

金 - 탈북자들은 남과 북의 체제를 모두 겪었다. 대개 탈북 후 몇 년간 중국에서 살아봤으니 3개 체제를 경험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남쪽 사람들과 경쟁하며 살아가는 탈북자는 많지 않다. 하지만 여러 체제를 겪어본 탈북자들의 경험들은 통일과정에 보탬이 될 것이다. 한국에서 아무리 밑바닥 생활을 하고 있어도 지금 북한에 있는 사람보다는 우월하다.

文 - 문화적 격차를 줄이고 이질감을 해소하려면 한국사회와 부딪쳐야 한다. 우리 탈북자들이 통일의 선각자가 되려면 의식을 끌어 올리는 작업부터 해야 할 것이다.

북한엘리트들은 이미 김정일을 포기했다

李 - 북한의 권력은 김정일을 정점으로 극소수의 충성분자들이 거머쥐고 있다. 고등 교육을 받은 엘리트 절대다수는 여기에서 배제돼 있다. 엘리트들은 현실적으로 판단하려 한다. 만약 한국 정부가 “북한주민들이여 당신들을 지켜주겠습니다. 김정일만 받치세요”라고 선언한다면, 김정일 체제는 순식간에 무너질 것이다. 챠우체스크도 자기 비서들에 의해 처형되지 않았나.

金 - 북한의 엘리트들은 김정일에 대한 기대를 접은 지 오래다. 북한의 체제는 지난 60년간 주민들이 서로 이중삼중 감시 통제해 왔다. 겉으로는 잠잠해보이지만 결속력은 모래알과 같다. 이건 아니다 하는 계기만 있으면 한순간에 붕괴될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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