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은 6.25를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가?<편집자 註>
1951년 4월 25일 밤 10시, 경기도 파주군 적성면 설마리 235고지. 나흘 동안 중공군 3개 사단의 공격을 일곱 번째로 격퇴한 영국군 제29연대 글로스터(Gloucester) 대대의 카네(Carne) 중령이 여단장의 마지막 명령을 전했다.
"아군 포병대가 적의 공격을 받아 우리 후퇴를 엄호해 줄 수 없다고 한다. 제군들은 각자 알아서 무사히 후퇴하기를 빈다. 나는 부상자들과 여기 남겠다."
지금으로부터 59년 전, 영국군 글로스터 대대의 치열했던 나흘이 영국인 감독 대니얼 고든(Gordon·37)에 의해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어진다. 고든은 '천리마 축구단'(2002), '어떤 나라'(2004), '푸른 눈의 평양 시민'(2006) 등 북한의 실상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영화 3부작으로 호평을 받은 인물이다. 그는 2010년 6·25 60주년에 맞춰 임진강 전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를 개봉하기 위해 촬영 중이다. 그는 "전투 생존자 50여명 가운데 15명과 인터뷰를 마쳤다"고 했다.
- ▲ 1951년 4월 임진강 전투를 주제로 한 6·25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고 있는 영화감독 대니얼 고든(37·뒷줄 오른쪽). 뒷줄 왼쪽은 이 영화의 기초가 되는 책을 쓴 앤디 새먼, 앞줄은 영국군 참전용사들이다. /대니얼 고든 제공
임진강 전투에서 영국군은 1개 여단 병력(5700여명)으로 중공군 3만여 명의 남하를 나흘 동안 저지했다. 이들은 병력의 3분의 1이 죽거나 포로로 잡혔다.
전쟁사를 전공한 육군사관학교 김광수 교수는 "임진강 전투는 영국군의 투혼과 전투력을 보여준 전투"라며 "영국군은 수적인 열세를 무릅쓰고 나흘을 버티며 한국군과 미군이 철수할 시간을 벌어줬다"고 했다.
고든은 "영국인들은 임진강 전투에서 싸운 병사들의 휴먼 스토리는 물론 6·25 자체를 아예 모른다"며 "평생 전투 후유증에 시달린 참전용사들이 인생의 황혼을 앞두고 입을 열었다"고 했다. 특히 매년 4월 한국 재향군인회와 영국대사관 초청으로 한국에 다녀간 참전용사들은 고든과의 인터뷰에서 "화염에 휩싸인 서울만을 기억했는데, 한국이 이렇게 발전할 줄은 몰랐다"고 기뻐한다. '전우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감동이다.
영국군은 6·25 때 미군 다음으로 많은 8만7000명이 참전해 1100여명의 사상자를 냈다. 이를 기념해 1957년 파주군 적성면 마지리에 영국군 참전 기념비가 세워졌다.
고든은 북한 축구 대표팀이 1966년 월드컵 8강에 오른 이야기에 매료돼 북한 다큐멘터리 영화 3부작을 만들었다.
고든의 임진강 다큐 영화의 바탕이 되는 것은 영국 기자 앤디 새먼(Salmon)의 책 '마지막 남은 탄약까지(To The Last Round)'다. 새먼은 "고든의 관심은 정치가 아닌 인간"이라고 했다.
고든은 임진강 참전용사들의 육성을 필름에 기록하면서 "전우애를 뛰어넘는 인간애를 느꼈다"고 했다. 특히 영국 참전용사들이 생사를 함께한 전우뿐 아니라 서로 총을 겨눴던 중공군에 대해서도 '경의'를 표시하는데 그는 놀랐다. 그는 "영국군은 군인이기 이전에 한 개인이었고, 바로 그 때문에 '상대를 죽여야만 자신이 살 수 있다'는 전쟁터의 비극에 대해 중공군들과 공감했다"고 했다. 고든 감독은 이달 20일쯤 임진강 전투 참전용사 5명과 함께 방한할 예정이다. 그는 "한국에 다녀간 참전용사들은 당시 전투 현장을 둘러보고, 한국의 발전된 모습을 보면서 비로소 평생의 짐을 내려 놓는다"고 했다.
출처: 조선일보 김어진, 박승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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