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티헤럴드 -libertyherald.co.kr-
   issue 예수께서 이 나라를 살리실 것이다. Up 최종편집: 4월5일(일) 17:08    

리버티헤럴드 > > 칼럼·시론
 한글파일로 저장  메모장으로 저장  워드패드로 저장   프린트 하기
남기고 싶은 이야기: '自由의 투사' 故봉태홍 대표의 유언

 

‘아스팔트 우파’의 원조 봉태홍(奉泰弘, 향년 53세) ‘라이트코리아’ 대표가 지난 18일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먼 곳으로 떠났다. 奉 대표를 알게 된 것은 대학 재학시절인 2002년 모 신문사에서 記者생활을 하면서 부터다. 당시는 노무현 정권이 愛國세력을 탄압하던 때다. ‘종편’도 없었고 ‘애국’ 또는 ‘우파’를 간판으로 내걸고 활동하기가 어려웠던 시기다.

기사본문 이미지

봉태홍 대표/사진촬영=조갑제닷컴

奉 대표가 ‘거리의 투사’로 나서게 된 시기는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대중 당선 이후 인터넷이 막 대중화 되던 시기 PC통신에서 ‘성산태두’라는 아이디로 글을 올리며 左翼정권에 대한 비판을 시작했다. 온라인에서의 활발한 게시판 기고 활동이 오프라인으로 이어져‘네티즌자유연대’라는 단체를 결성하기도 했다. 그러다 2003년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좌파 정권이 연장되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인 '아스팔트 우파' 생활을 하게 됐다.

 

奉 대표는 실향민 2세로 친족들이 모두 공산당에게 학살당했다. 부친만 살아 남한으로 내려온 탓에 친척이 거의 없었다. 左翼을 악(惡)으로 여겼던 그는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권을 거치며 연평균 90회, 주2회의 각종 기자회견 및 행사를 주도했다. 노무현 정권 시절인 2006년, 2007년도의 경우 연 150회의 행사를 가졌다. 일주일에 3번 거리에 나간 셈이다.

 

이명박 정부 말기 奉 대표가 ‘뇌수술’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지인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그래서 강북삼성병원에 입원해 있는 奉 대표를 김성욱 선배와 함께 면회 갔다. 환자복을 입고 있던 奉 대표는 병에 대한 이야기는 일체 하지 않았다. 記者도 일부러 묻지 않았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 뒤 “건강하셔야 합니다”라는 말을 전하고 이내 병원을 빠져 나왔다.

 

奉 대표는 이후 병원을 나와 자신이 운영하는 ‘라이트뉴스’에 애국칼럼을 기고하며, 다시금 아스팔트로 나가 從北-左翼세력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일주일에도 몇 번씩 열었다. 그래서 記者는 ‘봉태홍 선배가 이제 다 나았나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은 이와 정반대였다. 

 

2013년 1월 서울 모처에서 함께 활동해온 지인들과 신념모임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奉 대표의 건강상태를 잘 알고 있던 어느 선배(의사)로 부터 “봉태홍 선배 건강이 위중해, 1년을 넘기지는 못할 거야”라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그러나 記者 입장에서 직접 확인한 것이 아니었기에 그의 말을 신뢰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奉 대표를 만났다.

 

2013년 여름 어느 날 점심을 같이 하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선배의 건강과 관련된 이야기는 일체 꺼내지 않았다. 奉 대표는 그동안 애국활동을 하면서 “후회되는 것이 있다”고 말했다. 記者가 “뭡니까”라고 물으니, 奉 대표는 “그동안 아스팔트 생활하면서 집사람, 애들과 같이 외식도 못하고, 그 흔한 해외여행 못한 게 너무 후회가 된다”고 했다. 눈물이 나려는 것을 꾹 참았다. 대신 “이제 정권도 바뀌고 했으니, 여행도 가셔야죠”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 뒤 헤어졌다. 奉 대표는 이후에도 계속 인터넷을 통해 칼럼을 쓰고, 거리로 나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奉 대표가 마지막으로 가진 행사는 2013년 9월4일 서울 시청 앞에서 농성 중인 민주당 의원들을 상대로 ‘이석기 체포동의안 표결 참여촉구’ 기자회견이었다. 이후 奉 대표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불길한 생각이 들었지만 일부러 전화를 걸어 확인하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10월20일 오후 봉태홍 대표 번호로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으니 奉 대표의 부인이었다. “김필재 씨 맞느냐”며 “남편이 지금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김필재 씨를 찾는다”고 했다. 전화를 받고 받은 뒤, 조갑제 기자께 상황을 설명하고 바로 강북삼성병원으로 향했다. 환자실에 누워있는 奉 대표가 보였다. 거구였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매우 수척해 있었다. 식사를 못해 입에는 위장까지 내려가는 긴 호스를 끼고 있었다. 목에서 가래가 계속 나와, 부인이 화장지로 주기적으로 입을 닦아 주었다.

 

奉 대표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상태였지만 정신만은 뚜렷했다. 奉 대표는 말을 하고 싶어 했지만 목청을 낼 수 없어 입술에 귀를 가져다 대야 간신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부인의 말로는 “남편이 안정을 취했어야 하는데, 이석기 사건이 터진 후 안절부절 못하고 밤잠을 설쳤다”고 한다. 그러더니 결국 “추석 끝 무렵에 쓰러져 병원으로 왔다”고 말했다.  

 

가래를 닦아내던 휴지가 떨어져 부인이 휴지를 사러 나갔다.

 

奉 대표가 記者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래서 記者도 선배의 손을 꼭 잡았다. 거의 들리지 않는 나지막한 소리로 말을 했다. 내용은 아래와 같다.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 이상훈 장관-서정갑 대령-조갑제 기자님에게 항상 고맙게 생각했다고 전해 줘. 통진당 꼭 해산시켜, 그리고 ‘자유통일’ 꼭 해야 해. 필재 너도 잘 살아. 성욱이(김성욱), 희재(변희재) 열심히 하더라. 후배들이 잘 할 거야》         
       
눈물을 흘리면 奉 대표가 마음 아파 할 것 같아 꾹 참았다. 부인이 병실로 돌아왔다. 奉 대표가 힘이 없어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부인에게 인사를 하고 병원을 나왔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 문병을 갔다. 지난 번 보다 상태가 호전되어 침대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부인의 말을 들으니 식사가 가능해져 입에 물고 있던 호스도 뺐다고 한다. 환자에게 “문병을 오는 사람이 많지 않아 많이 외로워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서정갑 대령님이 얼마 전 문병을 왔었다”고 했다. 奉 대표는 “몸이 안 좋으니까 병원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면서 “정신은 멀쩡한데, 몸이 말을 안 들으니 답답하다”고 했다.

 

記者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 뒤 奉 대표가 산책을 나가려 했다. 부인과 함께 奉 대표를 부축해 휠체어에 앉혔다. 선배의 몸이 너무 가볍게 느껴졌다.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인사를 한 뒤 회사로 돌아왔다. 이날이 봉태홍 대표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2014년 1월3일 국민행동본부의 고성혁 선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奉 대표 부인이 사무실로 찾아와 경기도의 모 말기환자 요양병원에 奉 대표가 입원해 있고, 서정갑 본부장님과 향후 장례 문제를 상의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奉 대표를 직접 만나고 싶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부인에게 전화(1월9일)를 걸었다. 부인은 “지금 상태가 안 좋아서 만나기 어렵다”고 했다. 
  
그 후 열흘 뒤 봉태홍 대표가 소천(召天)했다. 記者가 기억하는 奉 대표는 ‘가장 어려운 시기, 누구보다도 가장 열심히 從北세력에 맞서 싸웠던 愛國투사’였다. 그렇지만 奉 대표는 그 흔한 ‘종편’ 한 번 나간 적이 없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프다. 모든 불편함을 감수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愛國활동을 했던 奉 대표에게 대한민국은 감사해야 한다. 故 봉태홍 대표는 2011년 6월 현충일을 앞두고 <조갑제닷컴>과 가진 인터뷰에서 아래와 같은 말을 남겼다.

 

“가족들하고 제대로 된 여행 한 번 못간 게 미안합니다. 어차피 희생이 따르지 않고서는 이 길을 갈 수가 없죠. 생활의 불편은 오래 전에 포기했어요. 그래도 인생이 빵만 가지고 행복할 수는 없는 거잖습니까. 꼭 필요한 그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제 행복입니다.”

 spooner1@hanmail.net

이 자리를 빌어 다시금 故 봉태홍 라이트코리아 대표의 명복을 빕니다.

  
김필재(한자연 기획국장)의 전체기사  
2014년 01월21일 14시52분  

전체 독자의견: 3 건
비타
가족과의 추억 아이들 사진이 없다고 하여 10여년전에 등산갔다가 댁을 방문해서 아이들 촬영한 사진이 있다고 하니 무척 기뻐하였다. 사진을 함께 보면서 큰넘이 지금 군에 있다고 하면서 대견해 하셨다 (2014년 01월21일 18시20분)
이승노
좌익척결의 불도저-검투사 봉태홍, 그러나 나의 과격한 행동에 오히려 완급을 요구했던
봉대표.... 그래서 생전에 나와 언쟁도 많았었다. 나는 동족살인악마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세습체제를 타도,붕괴와 남한내부 북괴추종,반역세력에 대하여 암살단을 조직하여야만 한다는 나의 주장에 항상 마찰이 있었다. 북괴와 남한내부의 반역 악마세력에게는 법보다 칼이 경륜에 가까워야함에는  지금도 이론의 여지가 없다.
봉대표는 그 더운 여름 땡볕에서 강승규 공동대표와 청와대 청운동에서 단식을 하면서
나에게 새조직 라이트코리아 자문위원을 맡아달라고...
그리고 아스팔트에서 각고의 투쟁을 같이했던 수많은 그시절 그장면이 사라질수는 없다.
종북좌파척결에 온몸을 받쳤던 봉태홍 애국동지의 극락왕생만을 빌 뿐이다.
그리고 제2 제3의 봉태홍이 나와야만 한다.
자유민주통일 그날이 올때까지.... (2014년 01월22일 18시48분)
백두태극
아스팔트 애국행동자는 대접 못 받고, 황여우와 남갱필이 같은 것들이 선진화법 만들어 발목을 잡고 혈세를 타먹고 있다.
애국자들은 자유통일과 중공멸망을 이룩하자! (2014년 01월22일 22시23분)
 
Search

북한판 임오군란? 軍식량배급 1/3 지시
세상 끝의 기도
말씀을 보내사 이 땅을 고치소서
9살 소녀는 팔리고 말하는 짐승들은 키..
북한군 코로나 사망자 속출 그리고 한국..
코로나19와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문
끝에 몰린 평양의 발악과 남은 자의 기..
코로나, 두려움 그리고 새 하늘 새 땅



 1. 세상 끝의 기도
 2. 북한군 코로나 사망자 속출 그리고 한..
 3. 북한판 임오군란? 軍식량배급 1/3 지시
 4. 9살 소녀는 팔리고 말하는 짐승들은 키..
 5. 말씀을 보내사 이 땅을 고치소서


단체소개개인정보취급방침 ㅣ 개인정보관리책임자: 김성욱 ㅣ 이메일 무단수집 거부

Copyright ⓒ Libertyherald.co.kr  All rights reserved    koreainjesu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