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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인권법 여야 합의는 민주당이 사는 길
박지원 의원이 ‘빨갱이’ 비난 감수하며 北인권법 막는 이유는 국익, 당익이 아닌 私益 때문

 박지원(朴智元) 의원이 민주당 원내대표직을 마감하던 날, 자신의 재임기에 가장 잘한 일이 “북한인권법을 막은 일”이라고 했다. 북한인권법이 악법(惡法)이기라도 한 것인가. 북한인권법안의 특기할 만한 내용이라면 북한인권대사를 임용하고 북한인권자문위원회를 설치하며 북한 주민에 대한 정보 전달 북한인권 교육, 그리고 북한인권 관련 민간단체를 지원하는 일이다.
 
 소요예산도 연간 300억원 선에 못 미치는 규모로 대형사업이라고 할 수도 없다. 미국에서 2004년 상•하원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것과 같이 여야(與野)가 이견 없이 만장일치로 통과시켜야 마땅했을 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국회에서는 북한인권법이 2005년 발의된 이후 7년째 손만 타고 통과되지 못하고 있는데 그것 자체가 흥미로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민주당이 북한인권법을 반대하는 이유를 요약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북한인권법 제정이 남북경색 국면을 더 경색화하고 정상회담과, 결과적으로 6자회담, 평화협정 논의에 우리가 불리해질 수 있다.(신낙균) 이 법에서 대북 인도적 지원을 국제적 기준에 의해서 식량분배 감시가 될 때 한다고 되어 있다. 북한 인권의 실질적인 개선보다는 오히려 대북 인도적 지원을 막는 법이 될 수 있다.(송민순) 뉴라이트 지원법이다. 이 법은 북한에 삐라 날리는 단체에 돈을 주는 것이 핵심이다. 남북정상회담에 방해가 된다.(정동영) 김정일이 살아 있을 때 남북관계를 풀어야 한다. 따라서 김정일을 자극하면 좋지 않다.(박지원)
 
 남북정상회담은 목적이 될 수 없다
 
 민주당 중진들의 입을 통해 나온 이 같은 주장에는 섬뜩한 느낌이 있다. 민주당은 북한인권법 제정이 “대북 압박의 상징으로서 남북정상회담을 가로막는 악재가 될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김정일’의 편에 확고히 서기로 작정한 듯한 발언들을 쏟아내 왔다.
 
 북한 주민들의 인권문제는 현재 제반 북한문제뿐 아니라 대북문제에 있어 가장 핵심적이고 중차대한 문제다. 북한 변화의 바로미터 혹은 기준이기도 하다. 북한 주민들의 인권문제가 풀리지 않는 한 북한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정상회담 등 김정일과의 대화를 위해 주민들의 인권문제는 2차적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인권을 유린하는 ‘악한(惡漢)‘의 편에 서겠다는 표명과 다를 바 없다.
 
 서독의 경우 대(對)동독 정책에 있어 “동독사람들에게 생존권과 인권이 지켜지는 것”을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보았다. 그리하여 베를린장벽이 세워지자 곧바로 동독과 가장 긴 경계를 갖고 있었던 니더작센주 잘츠기터에 동독 탈출자 증언을 통해 동독 내(內) 인권침해를 조사하는 문서보존소를 설립한 것이다. 동독 정부는 이 기관을 매우 두려워하여 끝까지 폐지를 주장했지만, 서독 정부는 담대하게 동독 정부가 저지르는 모든 종류의 인권 유린에 대해 정면으로 맞섰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동독인들의 마음을 애초부터 사로잡은 서독의 통일 기초 사업이 아니었던가 한다.
 
 우리가 지금에 와서 설립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이러한 기관을 1960년대에 이미 세운 서독인들은 동독인들을 위한 ‘인권지킴이’가 되어 주었다. 그리하여 오히려 통일은 덤으로 얻었던 것이다. 우리는 무뚝뚝해 보이는 서독 지도자들의 인간미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말 그대로 북한사람들도 먹고살고 인권을 누릴 수만 있다면 통일은 2차적 문제가 아니겠는가.
 
 따라서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더 중요한 문제를 유보하자는 발상은 ‘통일’을 위해, 또는 ‘혁명’을 위해 기본적 삶까지 포기하도록 요구하는 북한의 발상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남북정상회담이니 남북대화가 북한 주민들의 전반적이고 광범위하며 혹독한 인권침해에 침묵하는 근거가 될 수 없고, 그런 방식으로는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선점할 수 없다. 통일을 주도한 독일 콜 수상이 끝까지 동독의 마지막 지도자 크렌츠를 만나기 거부했던 것도 그가 독재자이기 때문이고 동독 주민들의 편에 섰기 때문이다.
 
 인도적 지원은 정권지원이 아니다
 
 송민순(宋旻淳) 의원이 언급한 “대북 인도적 지원에 있어 투명성 요구가 인도적 지원을 방해한다”는 발상은 그대로 북한정권의 의사와 일치하는 것이다. 많은 인도적 지원 활동가들이 “아프리카와 북한 지원의 가장 큰 차이는 돕고 싶은 만큼 도울 수 없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인도적 지원이란 북한 당국자들의 체제유지 비용을 대 주는 일이 아니다. 그것이야말로 UN과 WFP, 그리고 대한민국 헌법 정신에 배치되는 것이다. 인도적 위기가 있는 곳에 즉각적이고 충분히 지원할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겠는가. 그러나 북한을 돕는 일은 당국자들의 간섭 때문에 여전히 제한되고 어렵다. 인도적 지원이 아니라 정권 지원이 되어 온 것은 이런 까닭이고, 이로 인하여 남한 내 여론도 분열되는 것이다.
 
 진정 ‘투명성’만 보장되고 도움의 창구만 열린다면 국제사회나 우리가 북한 주민들 속으로 들어가 극단적 위기에 대처할 수 있게 된다. 김정일 정권이 지원의 투명성만 보장해도 당장의 주민 생존권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따라서 투명성 주장이 인도적 지원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송민순 의원의 시각은 옳지 않고, 기우에 불과하다. 우리는 김정일 정권을 향해 큰소리로 투명성 보장과 지원의 자율성을 주장해야 한다. 10년 전에는 못했어도 지금은 반드시 그렇게 해야 옳다.
 
 정동영(鄭東泳) 의원이 ‘뉴라이트 지원법’이라고 한 것이야말로 편협한 시각이다. 왜 북한 사람들의 분명하고 부인할 수 없는 현재의 고통에 대해 말하는 것조차 정치적 코드로 바꿔 읽는 것일까. 지난 10여 년 우리 사회에서 북한 인권 담론을 주도해 온 세력을 ‘뉴라이트’라고 지칭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정동영 의원이 쓴 당파적 안경으로는 당면한 북한 사람들의 인권 위기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최근 박지원 의원은 “김정일이 살아있을 때 남북관계를 풀어야 한다”고 《한국일보》와의 인터뷰(6월 10일)를 통해 밝혔다. 상식을 가진 사람은 ‘김정일이 있는 한 남북관계에 의미 있는 진전이 어렵다’고 보는데 박지원 의원은 변함없이 김정일에 대한 신뢰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햇볕정책의 기조가 그러했다. 박지원 의원은 북한인권법 통과가 햇볕정책을 폐기시키는 효과, 나아가서는 DJ 대북노선에 못질을 하는 효과를 낳을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하는 듯하다. DJ의 정치적 아들 박지원 의원이 북한인권법 저지에 열심인 것은 정치적 아버지에 대한 효도인 셈인가. 따라서 박지원 의원이 종북(從北)이니 빨갱이니 하는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북한인권법을 막겠다는 것은 적어도 박 의원 개인으로서는 매우 절실한, 현실적 이유가 있다. 박 의원은 자신의 권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민감하게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요컨대 박 의원이 원내대표로서 가장 잘한 일이 북한인권법을 막은 것이라고 한 것은 국익(國益)이나 당익(黨益)을 위해서라기보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그렇다고 정리할 수 있다.
 
 민주당, 정체성을 포기할 것인가!
 
 민주당의 당익(黨益)을 위해 북한인권법을 막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지적하고 싶다. 민주당은 대한민국의 공당(公黨)으로서 헌법에 의거하여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실현하며, 인권(人權)을 중시하는 데 존재 의의를 두어 왔던 당이다. 인권, 민주주의를 보편가치로 주장해 왔고, 그것을 위해 박해받았던 역사를 자랑 삼아 왔다. ‘안보’ ‘산업화’의 명분에도 타협하지 않고 인권과 민주주의 수호에 있어 절대성 보편성 근본성에 대한 주장을 거듭해 왔는데 유독 ‘북한’에 관해서만은 그 모든 것을 유보하고 이중잣대를 대겠다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최근 박지원 의원은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통해 6󈵗공동선언에 대해 매우 깊은 애착을 표명했다. 북한에도 한류가 들어가 있고, 남한에 대한 적대감이 해이해진 것이 햇볕정책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북한을 어디서, 어떻게 들여다보고 있는 것일까. 남쪽의 햇볕정책으로 인해 북한 주민의 생존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거나 평화무드가 형성된 바가 없다. 한류라고 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불법적이고 위험한 유통에 불과하며, 그나마도 1990년대 초부터 있어 온 사실이다.
 
 6󈵗공동선언 이후에도 북한 정치범수용소는 없어지지 않았고 환경의 개선도 없었다. 최근에는 화폐개혁으로 인해 삶은 더욱 극단적인 위기에 내몰려 있다. 마약과 빈곤, 절망에 찌들어 있는 북한 주민들의 이러한 상황은 남한이 어떤 대북정책을 취하는가와는 거의 관련이 없다. 오히려 북한 내부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목숨을 건 탈출 행렬과 탈북자들로부터 유입되는 정보 및 자금이다. 남한의 정책과는 상관없이 김정일 정권은 여전히 주민들의 요구에 역행하고 있을 뿐이다.
 
 결국 가장 중요하고 기초적 판단인 ‘김정일’에 대한 판단이 잘못된 데서 모든 문제가 출발하고 있다. 과연 김정일이 진정으로 ‘식견 있으며’(김대중) ‘유머러스하고 스마트’한 사람(박지원)인가. 이런 종류의 칭찬과 판단은 김정일을 북한을 책임질 지도자이고, 그가 인민의 관점에 서 있는 선인(善人)이라는 암시를 준다. 김정일은 결코 무바라크나 카다피보다 선하지 않고, 친(親)인민적이지 않으며, 인류가 일찍이 체험해 보지 못한 수준의 ‘날것 그대로의 악(惡)’을 체현하고 있을 뿐이다.
 
 작년 천안함 사건이 터졌을 때, 그 많은 햇볕론자들이 도무지 북한 소행이라는 것을 못 미더워하는 것을 보고 신념이 사실을 압도하고 있는 현실을 실감했다. 최대 규모 포털 네이버에 소위 언론의 간판을 걸고 캐스트하는 수 개의 언론은 마치 파라노이아(paranoia•편집증) 상태에 빠진 듯 ‘북한소행’을 믿지 않았다. ‘제발 남한 해군이나 군함에서 결함이 찾아지기를’ 그들은 얼마나 노골적으로 고대했던가! “김정일이 안 했으면 도깨비가 했겠느냐”는 고(故) 황장엽(黃長燁)씨의 일갈이 뇌리에 생생하다.
 
 반복건대, 이제 ‘김정일’에 대한 오판을 근거로 수립한 민주당의 대북정책은 불가피하게 수정되어야 한다. 북한인권법을 철저히 정치적으로 이해하고 이용하며, 무엇보다 자신들을 지지하고 있는 유권자들의 인식을 오도하는 민주당은 결국 ‘악중 악’ 김정일과 운명을 같이할 지경까지 이르게 될 것이다. 다가오는 심히 ‘민망한’ 순간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김정일의 반민주, 몰인권, 학살과 학정 앞에 눈을 떠야 한다.
 
 민주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북한인권법 논의 과정에서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도 “총론에는 동의하나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침묵하는 많은 의원에게도 이와 같은 마음이 있지 않나 추측해 본다. 모두가 깨어 일어날 때가 아닌가 한다.
 
 북한인권 주장에는 왜 어김없이 논쟁이 따라붙는가
 
 최근 필자는 18년 전에 나왔다가 금세 절판되어 버린 오길남(吳吉男) 박사의 《잃어버린 딸들, 오! 혜원 규원》(원제: 김일성 주석, 내 딸과 아내를 돌려주오!)이라는 책을 다시 펴냈다. 저자를 대신하여 새 판의 서문을 쓰면서 ‘한국판 실화 파우스트’라는 제목을 붙였다.
 
 독일 유학생 오길남이 신고 간난의 어려움을 거쳐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가족을 솔가(率家)하여 북한으로 갔다가 홀로 탈출해 온 이야기의 줄거리는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이 책을 다시 펴내면서 20년 전의 사건이 아직도 미제이며, 더구나 오길남 일가의 북송에 관여한 어떤 사람도 그로 인하여 처벌받은 일이 없고, 심지어 비난받지도 않은 것에 또 하나의 아이러니를 느낀다. 언젠가 독일의 송두율(宋斗律) 교수에게 이 사건에 대한 견해를 묻기 위해 전화한 적이 있었다. 전화를 받은 그의 부인은 오길남이라는 이름을 꺼내자 흥분부터 하기 시작했다. “처자식을 버린 사람 얘기를 누가 믿어요!”
 
 파우스트의 주제가 그렇듯 오길남 박사의 책은 ‘지성의 한계’ ‘지성의 함정’을 드라마틱한 현실로 생생히 보여준다. 어떤 면에서는 파우스트보다 더 처절히 파멸과 구원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여전히 이곳에서는 오길남 박사의 두 딸과 아내를 구해 내자는 얘기를 꺼낼 때 왜 그리 많은 논쟁이 따라붙는지 알 수가 없다. 북한인권 문제를 하필 한국에서 꺼내면 어이없는 논쟁들이 수도 없이 따라붙는다. 그 모든 대가가 고스란히 북한 주민들과 북한에 억류된 사람들에게로 돌아간다. 우리의 정신적 사치가 그대로 북한 주민들의 고통으로 돌아간다면 다시 한 번 과연 “정의란 무엇인가?”
 
 민주당은 물론이고 이제 각자가 쓴 안경을 벗고 투명한 눈, 뜨거운 가슴으로 북한문제를 바라봐야 할 시점이다. 우리 자신이 아니라 역사의 수레바퀴에 눌려 너무 큰 희생을 치르고 있는 북한 주민들을 사랑의 관점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정말이지 북한 주민들도 생존권을 누리고 인권을 누릴 수 있다면 지금 다른 것이 급할 것이 무엇인가.
 
 민주당이 북한인권법에 만장일치로 합의하는 것은 민족적 양심을 회복하는 일이며, 진정으로 ‘악’을 다루는 노련한 솜씨를 쇄신하는 것이다. 역사가 곧 김정일을 옆으로 치울 것이다. 대한민국 공당이 그와 운명을 같이하는 일만은 어떻게든 막고 싶은 심정이다.⊙

전체 독자의견: 1 건
조영무
제가 봤을 때 이 기사는 객관적입니다.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2012년 02월24일 13시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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