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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핵실험 목격한 위구르 노인.. "나는 신(神)을 봤다"
中핵실험 피해 실태 추적한 전문가, "신장자치구에서 기이한 현상 자주 발생"

일본 삿포로(札幌) 대학의 다카다 준(高田潤) 교수에 의해 지난 32년간 진행된 중국의 핵실험으로 말미암아 약 19만 명이 사망했다는 충격적인 주장이 제기된 가운데 지난달 28일 도쿄(東京)신문이 신장위구르(新疆維吾爾) 자치구 출신의 외과 의사를 인용해 핵실험이 한창 진행되던 당시의 생생한 정황을 보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20일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에 따르면 신문은 94년 우루무치(烏魯木齊) 병원에 근무했던 암전문의 아니왈 트후티(45)의 증언을 토대로 신장자치구에서 기이한 현상들이 자주 발생했으며, 방사능 피폭으로 인해 주민들의 암 발생률이 타 지역보다 30% 이상 높았다고 전했다.

 

신문에서 트후티는 “94년 이후 2년 동안 조사한 결과 위구르인의 백혈병과 악성 림프종, 폐암 비율 역시 중국 본토에 비해 현저히 높았고 (이것이) 핵실험 방사능과 관련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며 “한(漢)족 동료의사로부터 ‘목숨이 아까우면 조사를 그만두라’는 충고를 받아 자료를 파기하는 시늉까지 했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진상을 알아갈수록 내가 어릴 적 경험한 기이한 현상들이 모두 핵실험과 관련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자신의 경험담을 소개했다.

 

트후티는 우선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73년 무렵 3일 연속으로 하늘에서 모래가 내리던 기이한 사건을 우루무치에서 접했다며 당시 학교 교사는 “우주에서 온 모래”라고 설명했지만 의문을 지울 수 없어 계속 하늘을 지켜봤다고 밝혔다.

 

그리고 93년 현지에서 만난 한 목동 노인은 “신(神)을 봤다”고 주장한 뒤 “하늘이 태양보다 밝게 빛나더니 동시에 지진이 일어나 즉시 기도를 드렸다”고 말했다며 지진 발생 이튿날 인민해방군 병사가 노인의 양 100마리를 모두 구매했고 이 노인은 2년 만에 사망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사건에 대해 “노인이 본 ‘신’은 핵실험의 섬광으로서 인민해방군이 양을 구매한 것은 방사능이 생명체에게 주는 영향을 조사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트후티는 또 98년 영국의 TV방송국인 ‘채널4’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실크로드에서 일어나는 죽음(Death on the silk road)’에 참여했는데 동년 7월부터 신장자치구에서 핵실험 피해자들의 정보를 수집하던 중 핵 실험장이었던 롭 누르 사막 인근 마을에서 다수의 선천성 장애아들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그는 현지 의사를 통해 마을 어린이의 80%가 입천장과 입술이 갈라지는 ‘구순구개열(토순)’을 앓고 있다는 증언을 확보했고 선천성 농아 등도 발견했지만 현지 부모들은 ‘칼슘 부족 증상’이라는 당국의 설명을 믿고 있었다고 전했다.

 

그리고 위구르 지역 병원의 병상 수도 97년 4백 병상에서 2008년 2천 병상으로 늘었다며 같은 기간 중국 최대 인구규모인 허난(河南)성에서는 불과 1.6배의 병상 수 증가를 보였음을 지적한 뒤 롭 누르의 현지 의사도 방사능 오염이 원인일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앞서 다카다 준 교수는 구소련의 핵실험 자료를 바탕으로 컴퓨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만든 뒤 중국의 사례를 적용한 결과 32년간 총 148만 명이 방사성 오염물질에 노출됐고 그 중 약 19만 명이 방사능 때문에 유발된 암이나 백혈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또 영국의 선데이타임스는 핵실험에 참여했던 인민해방군 8023부대 생존 대원들이 중국 정부에 보상을 요구하고 나섰다고 보도하며 이들은 고글과 마스크만을 착용한 채 방사성 낙진으로 뒤덮인 실험장을 드나들고 물품들을 맨 손으로 수거해오기도 했었다고 전했다.

 

중국은 64년 10월 16일 첫 핵실험을 실시한 이후 96년까지 46차례에 걸쳐 공중과 지하에서 원자탄과 중성자탄 등을 실험했으며, 76년에는 히로시마 원폭의 320배에 달하는 위력을 가진 폭탄의 투하실험을 실시하기도 했으나 96년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에 가입하면서 핵실험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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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4월21일 11시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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