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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선언과 6.15선언의 문제점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상임대표
 

 역사는 반복(反復)되는 경우가 많다.

10월 평양회담 직전 나는 이런 글을 썼다.

 

「1938년 뮌헨을 갔다 온 네빌 챔벌린(Neville Chamberlain) 영국 수상이 되지 말고, 1970년 동독의 조그만 변경도시 에르푸르트를 갔다 온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서독 수상이 되기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노무현氏는 걱정했던 대로 챔벌린이 되서 돌아왔다.


<챔벌린이 되서 돌아온 노무현>


챔벌린은 1938년 9월28일 뮌헨을 찾았다. 당시는 나치 독일이 군비증강에 박차를 가하고, 全유럽은 전쟁얘기로 북적거릴 때였다. 챔벌린은 히틀러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전쟁을 막아보려 했다. 그는 뮌헨에서 에두와르 달라디에(Edouard Daladier) 프랑스 수상과 함께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독일 총통 및 베니토 무쏠리니(Benito Mussolini) 이태리 총통과 4자회담을 갖고 히틀러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어보았다.


히틀러는 체코의 1/3에 해당하는 주데텐란트를 요구했다. 그곳은 독일어를 사용하는 주민들이 살고 있고, 1차 대전 패전으로 체코 땅이 된 곳이므로 독일 땅이라는 것이었다. 챔벌린은 체코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주데텐란트를 히틀러에게 떼어준다. 다시는 다른 나라를 집적거리지 말라는 약속과 함께. 이것이 바로「뮌헨합의」였다.


챔벌린은 4자회담을 끝낸 직후인 9월30일 새벽, 히틀러와 단독회담을 갖고 별도의 「합의문서」를 제시했다. 히틀러는 이 「합의문서」를 두 말 않고 서명해줬다.「앞으로 모든 분쟁은 협상을 통해 해결한다. 다시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이런 내용이었다.


챔벌린은 이 문서를 들고 영국에 돌아 와 전용기 트랩 위에서 이렇게 말했다. 『peace of our time, 우리 시대의 평화를 가져왔습니다. 영국 수상이 명예로운 평화를 독일로부터 가지고 돌아 왔습니다.』


 全영국이 들끓었다. 신문과 사설은 찬양을 늘어놓았다.『기뻐하라. 이제 우리 자녀들은 안전하게 되었다. 우리 남편과 아들들은 전쟁터로 가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영국 의회는 369표 대 150표로 이 문건에 대한 찬성 결의를 채택한다. 물론 이때도 선각자들은 있었다.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과 앤토니 이든(Anthony Eden) 같은 이들이다.


이든은 챔벌린의 대독 유화정책에 항의하여 외상(外相) 직을 사임했다. 처칠은 10월4일 하원에서 유명한 연설을 한다. 처칠은 영국 의회에서, 챔벌린 수상이 독재자 히틀러에게 『완전히 항복』 했으며 이로 인하여 오히려 『영국은 전쟁을 회피할 수 없게 되었다』 고 경고했다. 


처칠의 경고는 6개월도 못 돼 현실이 되고 만다. 히틀러는 1939년 봄 체코슬로바키아의 나머지 국토마저 무력으로 병합한다. 같은 해 9월에는 팬저 탱크를 몰고 폴란드를 침공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영국민들은 챔벌린을 내치고 처칠을 수상으로 맞아들여 전쟁수행의 대권(大權)을 맡겼다. 수상에서 물러난 챔벌린은 암으로 죽게 된다.


<1938년이 환생했구나!>


역사적 사실을 염두에 두고 남북관계를 관조해보자. 노무현氏가 이번 평양회담에서 가져온 문서는 3장짜리인데, 핵심은「앞으로 전쟁하지 않겠다. 모든 문제는 협상을 통해, 대화를 통해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챔벌린이 가져 온 합의문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1938년이 환생하는구나!」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챔벌린은 히틀러로부터 평화약속을 받기 위해 대가를 지불했다. 주데텐란트를 갖다 바쳤다. 노무현氏도 대가를 지불했다. 그보다 훨씬 심한 대가를 지불했다. 무엇인가?


서해북방한계선(NLL)을 갖다 줬다. 내가 보기엔 국가보안법도 갖다 줬다. 그밖에도 천문학적 퍼주기를 약속했다. 훨씬 더 심한 것은 한미동맹을 완전히 헌납해버렸다.


1938년 영국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신문, 방송을 보라, 난리가 나지 않았나? 10월4일 평양선언의 내용이 이렇게 돼서 좋다, 저렇게 돼서 좋다. 영국에서 일어났던 일이 그대로 일어나고 있다. 


<10·4선언, 아무 의미 없는 가짜 문서>


10·4선언은 우선 6·15선언보다 훨씬 나쁘게 북한쪽으로 굴절돼 있다. 선언은 제1항에서 6·15선언에 대해 아주 장황하게 말하고 있다. 심지어 6·15선언을 기념하는 조치를 하기로 했다고 한다. 역설적으로 이 대목들 때문에 이번 10·4선언은 아무 것도 아니다. 이로 인해 그 내용 여부를 떠나 10·4선언은 가짜, 아무 의미 없는 문서가 됐다. 왜냐?


6·15선언은 우리 헌법에 어긋나는 위헌적 불법문서이다. 6·15선언은 제2항 통일방법에 있어서「남측의 연합제, 북측의 낮은 수준의 연방제가 공통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방향에서 통일을 추구하기로 했다.」고 했다.


우선 6·15선언에 등장하는 남측의 연합제도 문제이다. 김대중氏가 당시 말한 연합제는 노태우·전두환 前대통령이 말한 연합제가 아니고, 김대중氏가 74년부터 개인적으로 떠들던 연합제이다. 이름이 여러 번 바뀌었지만 사실은 북한의 연방제와 똑같다. 따라서 6·15선언에 등장하는 남측, 북측의 통일방안은 당연히 공통성이 있을 수밖에 없다.


단 이 공통성이 있는 것은 헌법을 위반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김대중氏가 대통령을 하면서 자신의 「3단계 통일방안·공화국 연방제 통일방안·공화국 연합제 통일방안」을 정부의 정책으로 만들지 못했다. 정부의 정책으로 만들기 위해 공론에 붙이면, 헌법과 상치되는 것이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왜인가? 


<6·15선언에 의해서 한국은 사실상 공산화>


대한민국 헌법은 다 아시다시피 「공산당」과 「공산주의」를 허용하지 않는다. 1조·8조·11조 등 여러 조항에서 공산당과 공산주의는 불법화 돼있고, 거기에 따라서 국가보안법이 정당화된다.


6·15선언 제2항은 대한민국이 북한의 연방제를 수용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무슨 의미인가? 아시다시피 연방(聯邦)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로 구성된다. 중앙정부(中央政府)는 참여정부간에 적절히 권력을 나눠 갖지만, 지방정부(地方政府)는 하나의 통일된 주권국가 안으로 들어온다. 


북한은 공산주의 국가이다. 공산주의 국가가 연방에 참여한다는 것은 연방의 일부가 된다는 것이다. 북한은 통일연방의 중앙정부에도 5;5로 참여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대한민국 헌법은 어디로 가는가?


결국 6·15선언 제2항 같은 합의는 대한민국 헌법을 개정하던가, 북한이 공산국가를 포기하던가! 하는 양단간의 결단을 내려야 가능한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상황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은 이 같은 합의를 결코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합의를 했다. 대통령이 헌법 제68조에 규정된 헌법을 수호하기는커녕 헌법을 정면으로 유린·파괴한 것이다.


따라서 6·15선언은 정치적 상황이 정상화되면, 헌법재판소로 가져가 헌법합치 여부를 가려야 한다. 그 전에는 정부가 어떠한 행위기준으로 삼아서도 안 될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일각에서는 6·15선언이 조약(條約)도 아니다, 법(法)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억지이다. 정부의 모든 통일정책 뿐 아니라 국내정책 상당부분도 6·15선언에 의해서 영향 받을 뿐만 아니라 6·15선언에 의해서 한국은 사실상 공산화돼 있다. 이것이 엄연한 현실이 아닌가?


이번 10·4선언이 갖는 근본적 문제점은 이 같은 6·15선언을 공식화시키는 많은 합의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10·4선언은 완전히 불법적인, 위헌적인 문건이다.


<굴종적이고 비굴한 표정의 노무현>


이번 평양회담은 전체적인 분위기(雰圍氣)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노무현氏가 평양에 갔을 때 내가 받은 느낌은 「남북은 연방제로 통일되고, 김정일은 연방국 수반(首班)이며 노무현과 김영남은 남북의 지방정부의 수반으로 노는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여러분들은 그런 느낌을 받지 않았는가?


저는 70년대 중반부터 김정일이 후계자로 부각되면서 주목해 왔었다. 적어도 제가 관찰한 김정일은 선전(宣傳)·선동(煽動)의 대가이다.


김정일은 64년 김일성대학 졸업 후 조선로동당 문화국 책임지도원으로 시작했다. 몇 년 후 로동당 조직지도와 선전선동 담당 비서가 된다. 73년이다. 북한은 이때부터 김일성 회장, 김정일 사장체제를 시작했다. 김정일이 꽉 틀어쥐었던 것이 선전선동이었다. 김정일은  영화광이고, 음악광으로 알려져 있다. 음악을 잘 하는지 못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73년 남북회담 당시부터 북쪽이 부탁했던 것이 영화필름과 음악테이프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왜 그러냐고 물으면 지도자 동지용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김정일이 그쪽으로 발달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사람을 다루는 것도 능수능란하다.


2박3일간 어떠했는가? 첫날부터 노무현氏를 데리고 놀기 위해 표정 관리하는 것이 느껴졌다. 첫날 다르고, 그 다음날 달랐다. 거기에 상대하는 노무현氏의 표정은 어떠했나? 얼마나 굴종(屈從)적이고, 비굴(卑屈)해 보이던가? 상전 앞에 지리는 뭐처럼 보이지 않았나? TV를 통해서 다 보지 않았나? 이것이 이번 평양회담의 성격을 결정해주는 그림이었다. 거기서 탄생한 것이 10월4일자 평양선언이었다.


<10·4선언, 악질적 사기문건>


10·4선언 내용을 보자. 6·15선언을 수용하면서 특히 강조한 것이 통일(統一)문제라기보다 평화(平和)문제였다.


10·4선언은「우리민족끼리」 정신이 강조된다. 이것은 민족공조(民族共助)와 외세배척(外勢排斥)이다. 전자는 북한의 말을 듣는다는 것이고, 후자는 미국을 배척하는 것이다. 그것을 10·4선언은 바닥에 깔아 놓았다.


10·4선언은 기술적으로 92년 남북기본합의서 중 몇 구절을 표절해 담았다. 예컨대 국가보안법 문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법적·제도적 장치』라고 했다. 그러면서 『사상과 제도를 초월해서』『내부 문제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남북기본합의서에 나오는 문구를 달았다. 이 문구를 가지고 『법적·제도적 장치』를 뜯어고치는 것을 합리화시켜놓았다.


이것은 사기이자, 범죄이다.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기본합의서 전체로서 의미를 갖는 것이다. 부분적인 한 토막 한 토막을 떼놓아서 다른 얘기를 하는 것은 남북기본합의서는 무의미해져 버린다.


남북기본합서는 25개 조항, 그에 근거한 4개 부속합의서, 5개 공동위원회, 이것이 전체적으로 되살아나야 거론할 수 있는 것이다. 두어 토막을 끄집어내 엉뚱한 것을 정당화시키도록 하는 것은 악질적 사기이다.


<국민들을 완전히 속이고 있는 盧정권>


10·4선언의 『법적·제도적 장치』와 관련, 盧정권이 급하게 설명하는 것이 조선로동당 규약과 맞물려서 국가보안법 문제를 조정해나갈 것이라는 것이다. 이건 양쪽의 체제 차이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법이란 있으면 지켜야 하는 것이지만, 북한은 법이라는 것이 있으나 마나한 사회이다. 북한과 같은 공산독재사회, 수령독재사회는 법치(法治)가 아닌 인치(人治)사회이다. 법은 있으나 마나 한 장식물이다. 김정일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중요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조선로동당 규약을 없앤들 무슨 의미가 있나? 게다가 북한체제를 아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로동당 규약을 바꾸지 않을 것임을 안다. 따라서 盧정권의 몇 사람이 하는 주장은 국민을 완전히 속이는 것이다.


<김장수 장관, 서울 오며 사표 냈어야>


NLL문제도 나온다. NLL 문제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뭐라고 표현했는가? 공동어로구역, 평화수역 설정, 경제특구건설, 해주항(港) 활용, 민간선박의 해주직항로 통과, 한강어구 공동수역 이용 등을 위한 서해평화협력 특별지대 운운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결국 NLL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말을 안 하고 있지만 NLL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이번 회담 기간 중 김장수 국방부장관이 아주 뻣뻣했었다. 그래서 우리 사회 히어로가 됐다. 저도 그에게 희망이 있나 하고 보았다. 그런데 어제 오늘 김장수 장관이 평양에 돌아와 무슨 얘기를 했나? 『다 잘 됐다. 앞으로도 잘 될 것이라 했다.』평양에서 김장수 장관은 허리에 통증이 있어서 그렇게 뻣뻣했던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웃음) 적어도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의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앞으로 두고 보자. 11월 평양에서 국방장관 회담이 열린다. 김장수 장관이 말하는 것과 이재정 장관은 180도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 누가 대통령의 의중을 말하고 있는가? 내가 보기엔 이재정 장관이라고 본다.


김장수氏는 10·4선언이 나온 뒤 서울에 돌아오는 길로 국방장관직을 사퇴했어야 한다. 그러나 『다 잘됐다』고 말하는 국방장관이라면 「볼일 다 봤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북핵문제, 눈속임 언급만>


이제 본론으로 가자. 이번 10·4선언은 통일문제 전혀 언급이 없다, 북핵문제도 비켜갔다. 북핵문제는 석 장짜리 문건 중 4항 다섯줄로 언급돼 있다. 『남과 북은 한반도 핵문제 해결을 위해 6자회담,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가 순조롭게 이행되도록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핵문제 해결을 위해서 아무 것도 안 하겠다는 것이다. 왜냐? 6자회담, 9·19공동성명, 2·13합의 등은 김정일과 노무현이 얘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소한 1992년 한반도비핵화선언 정신으로 돌아가서 아주 진솔하게 「핵은 우리가 갖지 않겠다」는 수준으로라도 얘기했어야 했다. 그러나 10·4선언에 있는 것은 순전히 눈속임으로 언급을 한 것에 불과하다.


<북한이 말하는 핵문제는 미국 문제>


그나마 여기에 문제가 있다. 4항은『한반도 핵문제 해결』이라고 표현돼 있다. 이것은 북한 표현대로라면 『조선반도의 핵문제 해결』이다. 이것은 한반도 핵문제를 비핵화(denuclearization)가 아니라 비핵지대화(nuclear free zone)로 본다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비핵화」는 非핵보유국이 핵을 갖지 않는 것인 반면 「비핵지대화」는 核보유국이 특정 지역에서 핵을 사용하지 않기로 하는 것이다. 이것은「북한의 핵」을 다루기에 앞서서 「미국의 핵」을 다루어야 한다는 것, 즉 『북한의 핵개발을 불가피하게 만들고 있는 미국의 對한반도 핵전략』을 먼저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비핵화」가 아닌 「비핵지대화」라는 의미를 담기 위해 굳이 「조선반도의 핵문제」라는 표현을 써왔고, 주변국은 알면서 또는 모르면서 이를 받아들이는 술래잡기를 전개해왔다.


북한의 이 같은 주장은 이전 6자회담에서는 물론 9월22일 최수헌 북한 외무성 부상이 UN총회에서 한 연설에도 등장했다. 최수헌은『조선반도의 핵문제는 조미관계의 정상화를 통한 미국의 핵위협을 제거하는 것이고 그 징표로 북한에 미국이 경수로를 제공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미국의 핵위협 제거, 이것이 북한이 말하는 조선반도의 핵문제이다.


10·4선언에서 북한의 핵문제는 놀음하는 꼬리처럼 붙어있다. 스쳐지나가는 언급을 하는 것으로 끝나 버렸다.  


<선언4항의 3者는 도대체 누구인가?> 


10·4선언은 평화체제(平和體制)도 언급이 돼 있다. 4항의 3줄 정도로 말이다.  4항에서 이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키 위해서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이렇게 돼 있다.


문제는 여기서 3자 또는 4자는 무엇을 의미하느냐이다. 노무현氏는 4자를 말했다. 남북과 미국, 중국이다. 여기에 대해 확인된 사실이 있다. 김정일이 3자 또는 4자로 하자고 제안해서 애매한 표현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3자는 뭐냐? 아무도 권위 있는 얘기를 하지 않고 있다.

노무현 정부도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말을 하고 있다. 『중국이 빠진다』이런 말을 한다. 이건 넌센스다.


4자회담이라는 것은 휴전 중인 한국전쟁을 종결하고 정치적 평화를 제도화하기 위한 마지막 처리를 위한 회담이다. 휴전 당시 북한과 중국이 참전했고, 남쪽은 유엔군이 참전했다. UN군은 16개 회원국이 참전했고 이 중 미국이 가장 크게 그리고 한국이 참전했다.


그런데 여기는 국제법적으로 많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6·25는 북한과 유엔의 전쟁이 아닌 당연히 남북한의 전쟁이었다. 그런데 남한이 물리칠 힘이 모자라니까, UN이 결의하고 미군은 미군대로 참전했다. 아주 초기에 UN안보리이사회 결의가 이뤄져서 UN군 사령부가 만들어지고, 미군지휘관이 UN결의에 의해 UN군사령관이 됐다. 이승만이 UN군사령관인 맥아더에게 한국군 작전통제권을 위임해서 한국군은 UN군의 일부가 됐다.


1953년 휴전협정(休戰協定)은 현지 사령관 간의 교전행위를 중지시키는 것으로서 정치적 합의가 아닌 군사지도간의 합의였다. 따라서 유엔군 사령관인 미군 장성과 북쪽에서는 조선인민군 사령관 김일성, 중국 인민군사령관 팽덕회가 서명했다. 이것을 정치적 협정, 즉 평화협정(平和協定)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앞으로 국제법적 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원론적으로는 평화협정(平和協定)의 주체는 당연히 남북한이 돼야 한다. 전쟁에 도와주러 왔던 나머지 UN회원국은 평화협정에 배서하는 부차적 참여가 당연하다. 


<평양회담을 앞두고 생긴 미묘한 변화>


그런데 요즘 4자회담 얘기가 나오고 있다. 북한은 이와 굉장히 다른 주장을 해왔다.  6·25는 오직 북한과 미국의 관계라는 것이 일관된 입장이었다. 평화협정(平和協定), 종전선언(終戰宣言)도 북한과 미국 사이 할 일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 평양회담을 앞두고 아주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 그 변화는 왜 생겼느냐?

노무현, 김정일 입장에선 대선을 위해 소위 정상회담이 필요했다. 그를 위해선 뭔가 명분이 요구됐고,「평화의 뭉게구름」을 일으켜야 했다. 또 「평화의 뭉게구름」을 일으키려면 6·25전쟁을 종결시키는 문제와 연결시킬 수밖에 없었다.


<평양물난리로 비롯한 노무현의 땜질외교>

그래서 노무현氏가 4자회담을 들고 나와 김정일을 설득하려 했고, 김정일로 하여금 4자회담을 마지못해 받아들이도록 조정이 이뤄졌음에 틀림없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원래 종전선언(終戰宣言), 평화협정(平和協定)이 다뤄질 4자회담을 끌어내기 위한 정상회담(頂上會談)은 8월 말에 하기로 했다. 8월 말에 정상회담을 열어 남북한 사이에 평화선언(平和宣言)을 한 뒤 이걸 가지고 여러 가지 장난을 하려고 했다. 국내를 상대로, 또 미국을 상대로 말이다.


미국이 4자회담을 수락하면 한반도 주변은 평화의 먼지 속으로 휩쓸려갔을 것이다. 어쩌면 12월 대선도 날아갈 정도로 평화의 광상곡(狂想曲)이 울려 퍼졌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더 많았다. 미국은 7월, 8월 계속해서 시그널을 보냈다.「종전선언, 평화협정은 해야 할 문제이지만, 核해결 마지막 단계에 할 일이지, 도입단계에 할 일이 아니다.」 이런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상회담을 대선정국에 적용하기 위해선 평화협정이 필요했다. 그래서 노무현氏와 김정일은 종전선언(終戰宣言), 평화협정(平和協定)을 하기 위한 4자회담 제안을 미국에게 들이미려 했을 것이다. 미국이 받아들이면 이것을 이용하고, 미국이 안 받아들이면 「아! 이것은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와 핵문제를 없앨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미국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남한 젊은이를 상대로 반미정서를 유발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 사고가 생겼다. 북한에 큰 물난리가 나고 이로 인해 평양회담이 연기된 것이다. 시간관리 상 큰 차질이 빚어졌다. 결국 노무현氏가 땜질외교를 시작했다.


<김정일에게 혼이 난 노무현>


노무현氏는 9월 초 시드니 한미정상회담에 가서 부시 대통령을 붙들고 늘어졌다. 어떻게든 부시 대통령 입에서 전제조건이 없는 종전선언(終戰宣言), 전제조건이 없는 평화협정(平和協定) 얘기를 꺼내도록 시도했다. 이걸 가지고 김정일과 얘기해 4자회담, 즉 4개국 정상회담을 끌어내려 했다.


그런데 용케도 부시 대통령이 넘어가지 않았다. 이번에는 넘어가지 않고, 끝까지 버텼다. 세 번을 추궁하는데도,『아니 그게 아니고, 6·25 종전선언과 그를 위한 평화협정 하는 것은 문제가 없는데, 그 전에 북한의 모든 핵이 검증 가능한 조건으로 폐기돼야 한다』고 했다. 


그런 상태에서 노무현氏가 평양에 갔다. 이번 평양회담을 보면서, 제가 느꼈던 또 한 가지가 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느끼셨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노무현氏가 김정일에게 되게 혼이 났다. 첫날 오전 회담에서 노무현氏는 김정일에게 엄청난 질책을 받은 것 같았다. 선생에게 혼이 난 학생처럼 돼서는 『불신의 벽을 느꼈다』그러지 않았나?


<3자회담은 美·中·北, 南이 빠지는 것 >


여기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었다. 하나는 핵문제 논의

전체 독자의견: 2 건
Yungmo
자유민은 자유분망하여 행동 통일성이 결여되여 있는 것 처럼 보이나 확실한 위험이 눈 앞에 다가오면 무섭게 단결하여 배전의 위력을 발휘하는 면이 있다. 우리 남북 관계에서도 이 원칙이 발휘될 것인가! 대한민국은 물직적으로 공전의 성공을 걷우었지만 그 물질적 풍요 속에서 지나치게 자유 분망하여진 오늘의 우리 젊은세대들, 국가의 위란 시에 어느 방향으로 그 성향이 발산하게 될지 근심스럽다. 이들에게 조속히 확고한 안보관을 일깨워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11년 12월28일 10시05분)
go
주님 북한땅을 열어주시옵소서 주님 북한땅을 열어서 북한주민을 구하여 자유통일 복음통일로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김성욱기자님께 힘을 주시고 북한주민을 구하여 주소서 615 104 반역선언을 폐기하여 주소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14년 05월25일 13시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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