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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史와 軍事를 알면 좌익이 될 수 없다
[고성혁의 역사추적1] 삼국의 운명을 가른 관산성 전투, 신라와 백제의 국운을 건 격전지에 가다

금번 천안함 침몰에 대해서  필자가  인터넷을 통해 올린 글이 화제라는 소식을 잘 아는 군사전문기자를 통해서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기뻤지만 달리 생각하면 군사적 상식수준에서 쓴 글이 화제가 되다니 씁쓸하기도 하다. 숨겨질 수 없는 사실을 왜 숨기고 왜곡하려고 하였는지 꼭 따져봐야 할 과제가 남았다. 

 

이번에 청와대에서 하는 말중에 제일 낯간지러운 소리는 이 말이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조사하겠다", "국방부에 숨김없이 국민에게 밝히라고 지시하였다"  철면피도 이런 철면피가 없다.  아니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에 집중해서 조사해도 시원찮을 마당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어서  암초설, 피로파괴설, 국군기뢰설, 내부폭발설등 허무맹랑한 각종 說이 난무하게 만들었는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말은 진실을 희석시키는 물타기도 최대한 허용한다는 말과 다를바가 뭐가 있는가 말이다.

 

또 청와대에선 "국방부에 숨김없이 국민에게 밝히라고 지시하였다"니 웃을 일이다.  청와대만 밝히면 다 밝혀지는데 누굴 보고 다 밝히라고 하는건가? 

 

항간에는 이런 말도 나왔다. 국가안보를 다루기 위해서 청와대 지하벙커에 들어간 사람들 중 군대를 다녀온 사람은 국방부장관 한사람밖에 없었다는 말이다. 필자는 지하벙커에 누가 들어갔는지는 모른다. 우스갯소리로 한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러나 이번 천안함침몰을 다루는 청와대의 태도는 상식 밖의, 몰상식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와 더불어서 좌익언론의 왜곡은 속이 뻔히 보일정도로 심했다.

 

어쩌다가 우리나라가 이지경까지 왔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필자는 이번일로 인해서 모월간지 기자와 인터뷰를 하였다. 인터뷰에서 기자는 이런 질문을 내게 하였다.  "어떻게 해서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군사부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까?"하는 질문이었다.  난 이렇게 답했다.

 

"사실 난 군사부분보다 역사부분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역사와 군사를 제대로 알면 절대로 좌익에 빠져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역사와 군사를 잘 믹싱해서 글을 쓰니까  젊은 학생들이 이해도 빠르고 재미도 느끼는 것을 알고 그런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학생들이 좌익성향에 빠지는 것은  잘못된 역사관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 그 중에서도 우리 역사, 특히 삼국시대에 대한 그릇된 역사관이 그 핵심이다.  신라가 외세를 끌어들여서 고구려를 팔아먹었다는  매우 선동적이고  잘못된 역사관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점을 바로 잡아주는 글은 시중에 그리 많지 않다.  딱 한곳만 빼고 말이다. 바로 조갑제 기자님의 글에서만이 제대로 된 역사관을 심어주고 있다. 

 

 필자는 삼국시대의 역사중에서 전쟁부분을 군사적 지식을 바탕으로 재구성하기로 마음 먹고 몇년 전부터 글을 작성하고 있다. 또 이 글은 모 군사잡지에 연재되었던 글이다. 앞으로 리버티헤럴드에 올리고자 한다. 군사적 시각에서 본 삼국사라고 보면 쉬울 것이다. 아무쪼록 재미있게  보아주시길 바라며  연재의 변을 마치고자 한다.

 

고성혁의 역사추적 1탄  **  삼국의 운명을 가른 관산성 전투

신라와 백제의 국운을 건 격전지현장에 직접 가보다

 

관산성의 모습은 어떨까?

 

관산성이 어디인지부터 알아봐야 한다. 찿아보니 충북 옥천이다. 날 좋은 날 옥천으로 달려갔다. 역사적으로 그렇게 유명한 곳이니 어련히 옥천군으로 가면 팻말이 있을 줄 알았으나 그것은 완전히 오판이었다. 옥천군청 내 옥천 관광안내지도엔 관산성의 표시조차 없었다.



그림설명 : 관선성터의 위치를 구글지도로 표시해 보았다. 궂은벼루라고 한 곳에서 백제 성왕은 신라 복병에 참수된 것으로 역사기록은 전하고 있다.(탄현고개는 당연히 백제군 관할이다)

시인 정지용 생가터나 육영수 여사의 생가터등 다른 유적지는 잘 표시되어 있었는데 우리 역사의 방향을 바꾸었던 관산성에 대한 표시는 옥천군 관광안내지도엔 없었다. 내심 충격을 받고 옥천군청내 문화재 담당직원에게 문의를 하고서야 위치를 알게 되었다.

 

어렵사리 찿은 관산성으로 올라가는 초입에서 마을 사람들에게 확인해보니 올가가는 길이 맞다고 하는데 역시나 안내표지판은 그 어디도 보이지 않았다. 관산성으로 올라가는 초입은 지금의 옥천군 옥천읍 현대금빛 아파트 뒤쪽 야산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높이로는 불과 300여 미터의 야산이지만 등정로는 여간 가파르지 않았다.


중간중간 밧줄을 잡고 올라가야 하는데 금방 땀으로 젖을 정도로 가파르게 올라가야 했다. 이런 길을 그 옛날 신라와 백제병사는 수시로 드나들면서 피를 뿌렸으리라 생각하면 오히려 숙연해 지는 마음을 들기도 했다.

 

▲ 관산성터로 추정되는 삼성산 정상에 설치된 안내표시판

 

조금 올라가자 옥천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왜 이곳이 백제와 신라가 서로 국운을 걸고 싸워야 했던 곳인지 금방 짐작이 들고도 남음이 있었다. 한 40여분정도 힘겹게 올라가자 관산성 정상이다. 그곳엔 삼성산의 안내팻말이 있었다.


사진설명 관산성터 정상에 본 옥천시가지 모습. 경북 김천으로 뻗어나가는 경부고속도로와 경부고속전철의 철도가 옥천읍을 관통하고 있다. 멀리 보이는 산은 옥천군 청산면으로서 관산성 전투 초기 신라군이 주둔하였던 곳으로 추정된다. 저 곳을 지나야만 신라의 전략기지엿던 보은의 삼년산성과 경북 상주로 갈 수가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늦겨울 파란 하늘밑으로 펼쳐전 옥천분지는 지금도 경부고속도로와 경부선 그리고 경부고속전철이 통과하는 말그대로 교통의 요충지임을 몸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1500여년전 백제를 중심으로 한 가야-왜 3만 연합군과 신라의 3만 등 6만여명의 장졸이 혼전을 벌였다고 보기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관산성은 너무 좁다. 흔히 공성전 하면 수나라와 고구려가 싸운 안시성 전투같은 공성무기가 난무하거나 아니면 임진왜란때 행주산성이나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 전투를 연상하기 쉬운데 관산성은 그런 성과는 한창 거리가 멀어 보였다.


관산성은 오히려 서울 아차산성같은 보루 성격이 강한 소규모 산성이었다. 아차산성은 역사적으로 장수왕이 백제 개로왕의 목을 베었다고 전해져 내려오는 산성이기도 한데 그 아차산성은 용마산과 이어지는 능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관산성고 능선을 따라 가면 옥천분지를 감싸 안으면서 용봉, 마성산으로 능선과 능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각 산 정상마다 머리에 테를 두르듯이 산성이 축성되어 있는데 이는 전시에 적진을 관찰하는 관측초소와 같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관산성에서 6만여명이 공방전을 벌인다는 것은 군사과학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맞지 않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지금은 말라버린 관산성 정상부근의 우물터 : 비가 오면 현재도 빗물은 고인다.


또한 관산성에는 약 50여명정도가 식수로 해결할 만한 작은 우물을 하나 가지고 있을 뿐이다. 보통 성에 대해서 살펴볼 때는 성안에 식수가 어느만큼 있느냐가 중요한데 보통은 성안에 우물이나 계곡을 막아서 저수지를 확보하게 된다.

그런 유형에서 산성이 구분되기도 하는데 보통 남한산성이나 삼년산성 등 중 대형의 산성은 계곡을 감싸 안고 있는 포곡식 산성이다. 그러나 관산성은 그런 중 대형 산성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창 멀다. 그래서 더더욱 나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여기서 잠깐 우리나라의 산성에 대해서 알아보고 가는 것이 우리 역사, 특히 전쟁의 전개과정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래서 간단하게 산성에 대한 요약을 기술하고자 한다.

 

[산성의 종류]

-산성 축조방식에 따른 분류 : 석성과 토성

-모양에 따른 분류 포곡식 산성, 테뫼식 산성, 일자형 산성, 보루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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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좁은 관산성터

올라가본 관산성은 너무도 좁았다. 불과 100여 명도 주둔하기 힘든 그런 곳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1500여 년동안 신라와 백제의 운명을 갈랐던 그 역사적인 전투를 관산성 전투라고 하였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왜 백제성왕은 신라군이 빤히 내려다 보이는 저 구천에서 신라의 복병에 목숨을 잃어야 했을까 하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관산성터에 최근 들어선 정자를 통해 본 옥천읍내 전경


관산성에서 오히려 쌓여가는 의문속에서 운이 좋게도 교직에 몸담았던 60대의 노년신사분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혹시나 싶어서 관산성에 대해서 아시는지 여쭈어 보았더니 그 분은 이곳 지형뿐만 아니라 고장에서 내려오는 전설을 하나의 소설같이 이야기 해 주셨다.

이곳 관산성을 지나 능선을 따라가면 용봉과 마성산으로 이어지는데 그 곳 모두 옛 산성흔적을 가지고 있다고 전해 주시면서 지금은 도시로 변한 옥천 구릉지마다 그리고 멀리 청성면일대까지 옛 신라의 토성과 산성이 수십여개가 존재했었슴을 마치 그 옛날에 살았던 것처럼 생생하게 펼쳐 주었다.

또한 관산성 아래 금강의 지류인 서화천을 건너서 있는 산봉우리마다는 백제의 산성이 있다는 것을 일러주는데 그 순간 캄캄한 동굴속에서 출구를 보여주는 한줄기 빛을 찿은 느낌이랄까 내 머릿속에선 잃어버린 연결고리를 찿는 순간이었다.


바로 이것이다. 책이 전하지 못하는 살아 있는 역사가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슴을 나는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 때부터 관산성을 다시 보게 되었다. 관산성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주변을 모두 보면서 이해하게 되는 시작이 된 것이다.

 

관산성 주변의 지형지세


노신사분과의 대화를 마치고 관산성 주변을 조망하면서 백제와 신라가 이근처에서 어떻게 싸웠을까 하는 그림을 그려본다. 산성은 허물어져 흔적만이 희미하게 남아있지만 1500년의 시간을 거슬러 난 바로 그 현장에 서있다. 가만히 눈을 감아보니 그 옛날 창과 활 그리고 칼로 무장한 백제 신라 양국의 수많은 장병의 거친 숨결이 느껴지는 듯하다. 이 산 저산으로 행군하면서 때로는 적진으로 돌격하면서 얼마나 많은 거친 숨을 토해 냈을까?

 

사진 : 백제의 탄현 언저리에서 본 관산성 (고속철도와 경부고속도로는 오늘날도 관산성지역을 통과해야만 경상도지역으로 갈 수 있다)

1500년전 이곳은 지금으로 말하면 최전방 철책선의 어느 GOP에 해당된다. 적진을 살피고 정보를 간추려서 사령부에 보고하면 사령부에선 또 다른 지시를 하달하는데 아마도 1500년전 바로 이곳에서도 그렇게 했으리라.


난 잠시 1500년전 신라의 장수가 되어서 전장을 지휘해 본다. 바로 코앞 백제의 산성엔 백제와 왜 그리고 가야군이 포진해 있다. 이곳이 적에게 뚤리면 신라는 치명적 상처를 입게 된다. 기필코 이곳을 지켜야 하는데 어떻게 할까? 후방 구릉의 산성과 토성에 주둔해 있는 신라군을 어느쪽으로 진격시켜야 할런지 아무리 봐도 뾰족한 답이 안보인다. 눈앞에 있는 굽이치는 금강건너 백제의 산성은 너무도 위압적으로 다가왔다. 아마도 그 옛날 그 자리에서 지휘하던 신라 장수의 혼령이 순간 나에게 들어온 듯 하다. 그 순간 병사가 급히 다가와 보고하는 소리가 들린다.


“백제 성왕이 이쪽으로 오고 있다는 전갈입니다.”

“방금 무엇이라고 말했는냐? 백제 성왕이 이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 정말이냐? 어느길로 온다는 것도 아느냐?”

“아닙니다. 아직 그것까지는 알지 못하옵니다. 그저 이곳 관산성쪽으로 온다는 첩보만 얻었사옵니다”

“그래? 그렇다면 신속히 이동해서 길목을 틀어 막아야 하지 않겠느냐? 예상 이동로에서 매복하고 있다가 백제왕을 사로 잡을 좋은 기회가 온게다. 빨리 이동하도록 하라”


그 생각이 드는 순간 나도 발길을 서둘러 구천으로 옮겨간다. 관산성 아래 백제의 성왕이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던 구천(궂은벼루)까지 가려면 빨리 관산성에서 내려가야 하는데, 마치 신라장수가 성왕이 온다는 첩보를 받고 급히 내려갔던 것처럼 나의 몸을 신라장수가 조종하는 듯 나의 발걸음은 급히 구천으로 옮기고 있었다.

 

*** 계속 ***

  
고성혁의 전체기사  
2010년 04월14일 18시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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