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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강 같이
하나님 백성의 윤리적인 삶과 한 국가의 운명을 가장 극명하게 연결시킨 아모스

  한국교회는 세계에서 기도를 많이 하는 교회로 알려져 있다. 해외에서 “Korean Style Prayer”라고 하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하는 통성기도를 의미할 정도로 한국교회의 기도는 유명하다. 해외를 돌아다녀 보면 한국교회만큼 예배가 많은 나라도 없다. 작은 예배당이라도 한국교회는 7번의 새벽예배와 수요예배, 금요예배, 주일예배 2번으로 최소한 11번의 예배를 드린다. 헌금의 종류도 정말 많아서 인쇄하여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헌금봉투로 주일헌금, 십일조헌금, 감사헌금, 선교헌금, 절기헌금(부활절, 신년, 맥추, 추수, 성탄), 장학헌금, 구역예배헌금, 일천번제헌금, 건축헌금, 생일감사헌금, 전도회비, 구제헌금 등이 있다. 하나님은 이렇게 예배와 기도 그리고 헌금을 많이 한다고 해서 기뻐하실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는 어떤 것일까? 아모스서를 통해 그 답을 찾아보도록 하겠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수많은 절기와 성회가 있었다.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상번제가 행해졌다. 안식일이면 여기에 번제가 한 번 더 더해졌고, 유대력으로 매월 초하루가 되면 또 한 번 더 더해졌다. 그리고 매년 율법에서 제시한 7번의 특별한 절기를 지켜야 했다. 이스라엘은 좀 더 좋은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해외에서 살찐 명품 소들을 수입해왔다. 제사를 지내면서 레위 사람들이 장엄하고 능숙하게 악기를 연주하였고 시편으로 찬양을 올려 드렸다. 이렇게 매 제사 때마다 최고의 예식으로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열성을 내는 이스라엘을 보시고는 하나님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셨을까? 암 5:21-23을 보자.


암 5:21-23 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우리가 읽었던 본문에 사용된 동사들을 보면 ‘밉다... 멸시하다... 기쁘지 않다... 받지 않겠다... 돌아보지 않겠다... 듣지 않겠다’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의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담고 있다. 하나님은 수많은 절기와 성회를 통해서 형식적으로 변해버린 예배를 받기 싫다고 하신 것이다. 번제나 소제를 드려도 받지 않겠고 살진 제물의 화목제도 돌아보지 않겠다고 하셨다. 더 충격적인 것은 제발 찬양을 그치라고 하시면서 악기 소리도 듣지 않겠다고 하셨다. 예배의 이 모든 것이 가증스럽다고 하신 것이다. 예배의 주체이신 하나님께서 예배를 기쁘게 받으셔야 하는데 그러지 않겠다고 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란 어떤 것인가? 때에 맞춰서 기도하고, 때에 맞춰서 헌금하고, 때에 맞춰서 찬양하는, 세팅이 아주 잘된 예배를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기도를 많이 하고, 헌금을 많이 하고, 찬양을 많이 하는 양으로 승부하는 예배를 말하는 것일까? 아모스서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암 5:24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란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하는 것’이며, 이것이 정말 우리가 추구해야할 예배라고 하셨다.


  이스라엘은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언약의 조항인 율법을 받았다. 그 율법에는 예배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 방법이 기록되어 있었다. 예배의 진정한 목적은 정의와 공의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그를 영원히 즐거워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의와 공의의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에는 우리의 삶에서 그분이 가르쳐 주시는 정의와 공의의 기준대로 살아가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에는 예배 형식에 관한 조항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소위 사회법과 도덕법과 같은 다른 종류의 조항들도 포함되어 있다. ‘서로를 대할 때는 이렇게 하라’, ‘남에게 피해를 줬을 때는 이렇게 보상하라’, ‘노예를 대할 때는 이렇게 해야 한다’와 같은 내용으로 우리 삶의 모든 범위를 주관하고 정의하는 율법들이 나오는 것이다. 만약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단지 우리가 한 곳에 모여서 예배하고 찬양하고 헌금하고 기도하는 것만 의미했었다면, 이런 종류의 사회법을 율법에 포함하여 주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사회 속에서 이웃을 대하는 삶의 방식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율법은 예배의 형식을 규정하는 목적으로만 기록된 것이 아니다. 율법은 처음부터 하나님 백성은 예배를 포함하여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목적으로 기록이 되었다.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어떻게 달라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거룩하다는 것은 다르다는 것, 구별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은 어떻게 구별되어야 하는가? 율법에는 여러 가지 음식에 대한 법이 나온다. 하나님의 백성은 먹는 것부터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또 여러 가지 의복에 대한 율법이 나온다. 하나님의 백성은 입는 것부터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러 가지 사회법과 도덕법이 나온다. 하나님의 백성은 사는 방식과 추구하는 가치관에 있어서도, 그리고 도덕적 개념에 있어서도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배’란 이렇게 세상과 달라야 하는 가치관과 구별되는 삶을 사는 연장선에서 드려져야 하는 것이지,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구별된 삶을 전부 무시하면서 찬양하고 기도하고 헌금하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주 가증스러운 행동인 것이다.


  진정한 예배를 아모스는 암 5:24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라고 표현을 하였다. 백과사전이나 인터넷에서 가뭄의 파괴력으로 인해 말라 갈라진 땅과, 그 땅위에 마른 동물 뼈들이 뒹굴고 있는 사진을 본 적 있을 것이다. 아모스는 이와 같이 죄악의 파괴력으로 인해 생명의 소망이 보이지 않는 버려진 땅을 보았다. 그런데 이 땅 위에 물과 물이 모여 강이 되어 흐르는 모습을 보았다. 이 강은 버려진 땅을 완전히 덮어서 치유할 뿐만 아니라 마르지 않아서 그 땅에 생명력이 깃들도록 변화시켰다. 마른 땅에 생명을 주는 이 강물이 바로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라고 아모스는 선포하고 있다. 정의와 공의는 생명을 살리는 강이자 우리가 드려야 하는 진정한 예배의 기초이다.


  이사야서는 아모스서에서 더 나아가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겠다고 말한다(사 1:15). 하나님은 백성들의 삶이 예배의 기초가 되지 않고 있는 것에 화가 나셨기 때문에 백성들의 기도를 듣지 않겠다고 하신 것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신앙과 삶을 따로 구분해서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과 삶은 따로 나눌 수 없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달라야 하고, 우리의 삶이 다르다는 것으로 인해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절대 따로 분리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 신앙이다.


  한국교회는 나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신앙을 지나치게 강조해 왔다. 나와 이웃의 관계는 부차적인 것이지만, 이웃에 대해서 고민을 조금 하는 사람은 전도와 구제 정도까지 손을 뻗고, 그보다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면 바로 선교로 점프하게 된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지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과 교회 밖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그다지 신앙적인 관심을 두지 않는다. 아모스서에서 말하는 ‘공의’는 무엇인가? 억울하게 당한 자들에게 배상하고, 불우한 자들에게 공평케 하고, 가난한 자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공의’를 행하고자 하면 이웃을 돌아보고 사회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 시대의 정치의 영역, 경제의 영역, 역사의 영역, 문화의 영역, 종교의 영역 등이 나와 이웃 그리고 교회에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사회적인 관심을 가지고 이웃을 돌아볼 때에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정의’인데, 정의라는 것은 공의를 가능하게 하는 마음 자세 곧 자비, 너그러움, 진실함 등을 포함한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는 것을 말한다. 이 정의가 하나님의 성품으로 인해서 바로 세워지지 않으면, 하나님의 공의와는 전혀 방향이 맞지 않은 자기 소견에 옳은 공의를 좇아가면서 하나님의 공의에 역행하게 된다. 예를 들어 악한 의도를 가졌지만 선하게 하는 말에 마음이 흔들리게 된다. 또한 선한 의도를 가졌지만 딱딱하게 표현되는 말에 마음을 닫게 된다.


  결국 하나님의 ‘공의’를 행하기 위해서는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성품’을 잘 알고, 세상과 사회를 하나님의 성품으로 잘 분석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을 통해 계시되어 있는 하나님의 성품을 풍성하게 이해하여 ‘정의’에 대한 통찰력이 생길 때, 하나님의 ‘공의’를 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 반만년 역사에서 하나님의 정의로운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일을 행한 선조들이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그들은 교육이 망해가는 나라를 구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자비를 털어 학교를 세우고 운영하였다. 그들은 일제 강점기 때에 자유에 대한 열망으로 출애굽의 꿈을 꾸며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외쳤다. 그들은 아시아 최초의 기독교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꿈꾸고 독립운동과 대한민국 건국활동을 하였다. 이들은 정의로운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공의에 생명을 걸고 행했던 자들이었다. 이들이 2012년 한국에 있었다면 교회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 안 된다고 하면서 신앙이 치우셨다는 비판의 말을 들었을 것이다.


  이 정치적인 문제를 비롯한 사회적인 문제는 교회사와 선지서에서 많이 다루고 있다. 교회사를 연구하다보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우리 시대의 교회의 문제들이 역사 가운데 반복되어 왔던 것을 알 수 있다. 선지서에서는 이스라엘 사회에 어떤 문제가 발생했으며, 하나님의 말씀이 이 사회 문제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교회사가 주는 교훈과 선지서의 말씀이 이 시대에 적용될 때 주의해야할 점이 있다. 과거 그 시대 배경과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이 시대에 대해서 사실에 기초한 바른 통찰력을 가지지 않으면, 교훈과 말씀이 역사적으로 후퇴되는 방향으로 적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성경에서 기독교는 공산주의를 말하고 있다면서 이 시대 기독교 공산주의를 지향해야한다고 한다. 예수님이 오병이어를 오천 명을 먹이셨으니 우리도 무료급식을 해야 한다고도 한다. 예수님을 믿지도 않는 폴리테이너들을 하나님의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설교도 한다. 원수를 사랑해야 한다고 합리화하면서 북한의 김일성 우상숭배 정권에게 쌀과 비료와 달러를 지원해야한다고 말한다. 북한정권은 그 돈으로 군비를 늘렸고 핵무기 개발에 온 힘을 쓰고 있다.


  성경 시대의 사회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에 대한 분별력이 생기면, 이 땅의 권세 잡은 자인 사탄이 어떻게 이 땅의 사람들을 끌고 가는가를 볼 수 있다. 사회를 노동과 계급으로 나눠서 보게 하고, 거짓으로 사람을 선동하여 미움과 증오와 분노를 일으켜서 사회를 망가지게 하고 사람들이 악을 향해 가도록 이끈다. 세상 가운데 세워진 하나님의 교회도 이 영향을 당연히 받는데, 이 영향을 인식할 수 없는 목회자와 성도로 인해 세상과 교회는 몰락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2천 년 전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도 동일하게 있었다.


  기득권을 잡고 있었던 사두개인들과 종교권력에서 2인자였던 바리새인들, 분노와 이기심으로 가득 찬 그들은 하나님과 세상에 무관심했던 백성들을 거짓으로 선동했다. 그리고 민란 발생을 막고 자신의 정치권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진실을 저버린 빌라도에 의해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예수님은 공생애 동안 아모스를 비롯한 모든 선지자들이 전했던 말씀과 예언대로 사셨다. 오늘 아모스서 말씀에 비춰보면, 예수님은 정의로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온전히 다 행하셨던 것이다. 진리와 진실 앞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고 하나님의 공의를 온전히 다 행하셨던 이 길이 바로 ‘십자가의 길’이었다.


  마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아모스서에 비춰서 위의 말씀을 보자면, 예수님의 기도는 단지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 지실 것이 힘들어서 하신 기도로만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가야할 길, 즉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길을 예수님이 친히 먼저 가셨다는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바꾸면, “아버지의 정의로운 성품으로 아버지의 공의를 이루는 길로 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신 것이다.


  이 마태복음 말씀은 진리와 진실을 따르다 보면 정의와 공의 때문에 우리가 생명을 걸어야 하고 생명을 내어놓아야 할 때가 온다는 뜻이다. 사단은 예수님 때와 같이 지금도 진리와 진실을 좇는 자들에게 희생과 피를 요구한다. 사단은 지금까지도 진리와 진실을 좇는 자들에게 진실과 거짓 사이에 편하게 있으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계속 진리와 진실 쪽에 서셨다. 그리고 사형 선고를 받으셨다. 예수님은 이러한 길을 먼저 가셨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도 이 길을 가게 하셨다. 이 길을 우리는 ‘십자가의 길’이라고 부른다.


  진리와 진실의 길은 우리를 자유케 하지만 동시에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주변 가족과 친구들에게서 비난을 받거나 왕따가 될 수도 있다. 세상에서 잘 나가는 인생을 접어야 할 수도 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던 모든 생각과 삶을 부인해야할 수도 있다. 진리와 진실을 인정하기 위해서 수년을 아파하고 방황해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진리와 진실을 마주해야 한다. 그래야지 우리가 이 땅에서 정의로운 마음을 가지고 공의를 행하는 ‘십자가의 길’을 갈 수 있다.


  우리는 예수님을 비롯한 신앙의 선배들의 뒤를 이어서 자유 대한민국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꿈꾸며, 하나님의 가치가 이 땅에 확산되는 삶을 우리 예배의 기초로 놓고자 한다. 우리가 예배하는 곳에서부터 시작하여 하나님의 정의로운 성품이 한반도에 흘러서 이 땅에서 포학과 부르짖음이 사라지도록 하는 것에 마음이 끌려서 여기까지 왔다. 우리마저도 삶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곧 망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가증스럽게 여기시는 예배는 반드시 폐하시기 때문이다.


  아모스는 아모스서 전체를 통해서 우리에게 파격적이고 충격적인 메시지들을 던지고 있다. ‘너희들이 회개하지 않고, 너희들이 의롭게 살지 않으면 망한다’고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모스를 통해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윤리적인 삶과 한 국가의 운명을 가장 극명하게 연결시켜 예언하셨다. 그래서 정의와 공의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에게 한국과 한국교회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믿는다.


  북한이 무너질 것을 자명한 일이다. 우상의 정권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겔 22:3b-4 자기 가운데에 피를 흘려 벌 받을 때가 이르게 하며 우상을 만들어 스스로 더럽히는 성아 / 네가 흘린 피로 말미암아 죄가 있고 네가 만든 우상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혔으니 네 날이 가까웠고 네 연한이 찼도다 그러므로 내가 너로 이방의 능욕을 받으며 만국의 조롱 거리가 되게 하였노라

  이 심판은 하나님 손에서 이미 재가가 나 있는데 문제는 평양이 아니라 서울이다. 이 우상의 체제 아래 고통 받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미래가 바로 우리 손에 달려 있고 그에 따라 우리에게도 전혀 다른 미래가 펼쳐질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예배란 정치 · 경제 · 역사 · 문화 · 종교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가져야 하는 구별된 생각으로 변화를 받고 그 삶을 사는 것이다. 그 삶은 예수님의 삶의 방식을 따라가는 것이고, 우리는 그 길을 ‘십자가의 길’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런 길을 가려는 우리와 함께 예배를 드릴 자들을 일으키는 것도 예배라고 더하고 싶다.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모든 삶을 통해 드리는 예배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그리하여서 우리가 대한민국으로부터 시작하여 북한과 열방까지 정의가 물같이 공의가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흘러 죽어 있는 땅들을 하나님의 생명으로 덮어버리는 기적이 일어나길 기도한다. 이 십자가의 길을 놓는 예배자들이 이 거룩한 대한민국에 일어나길 기도한다.

 

 

  
김성동(편집위원)의 전체기사  
2012년 04월07일 15시01분  

전체 독자의견: 2 건
우명희
본문 글을 읽으며 저는 이제껏 헌금드린다 하는것이, 예배드린다하는것이 그저 습관적으로 그저 따로 정해놓았기때문에 그만큼만이라고 제한한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았습니다. 또한 그러는 사이 제가 하나님의 능력을 예수님의 도우심을 제한한것도 아닌가 생각하며 회개할 것을 생각했습니다.
공의만 있다던지, 정의만 있다던지.. 아니요, 정의와 공의가 모두 없고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미혹한다던지.. 우리의 현 모습을 제대로 볼 필요가 있고, 외면치 말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기도실에서 분명히 회개할 것이 생겼고 지체말고 기도해야겠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2012년 04월09일 11시40분)
이찬미
맞습니다~ 아멘!!!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12년 05월05일 20시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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