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티헤럴드 -libertyherald.co.kr-
   issue 예수께서 이 나라를 살리실 것이다. Up 최종편집: 8월6일(화) 06:33    

리버티헤럴드 > > 문화·예술
 한글파일로 저장  메모장으로 저장  워드패드로 저장   프린트 하기
역사 속에 면면히 흘러오는 日本人(일본인)의 革新性(혁신성)
일본의 UFO논쟁, 유럽식 갑옷을 즐겨입은 오다 노부나가 이야기

서양식 갑옷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노부나가의 갑옷. wikipedia

 유럽인들이나 미국인들은 아시아 문명 가운데서 자신들의 문명과 견줄만한 문명으로 일본을 꼽는다. 일본 역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들의 혁신적인 사고방식에 놀라곤 한다.
 
 일례로 일본 국회에서는 2007년 12월18일 아소 다로(麻生太郞) 당시 일본 외상(外相)을 비롯한 다수의 내각요인들이 ‘미확인비행물체’(UFO-Unidentified Flying Objects) 문제를 놓고 격론을 벌였던 적이 있다.
 
 이 자리에서 야마네 타카지(山根隆治) 민주당 의원는 “인간의 머리로는 상상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많은 별이 있는 중에 지적 생명체가 오직 지구상의 인간 하나뿐이라는 것은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생각이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서 UFO의 존재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이어 “UFO문제는 역시 정치가로서 국민의 생명, 재산을 어떻게 지켜야 할지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고, 방위상의 문제”라며 “UFO를 부정하는 보도가 많은 게 사실이지만, 실제로 미국 공군이 UFO 조사를 해 왔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에 아소다로 외상(外相)은 이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굳이 SF의 세계로 한정짓지 말고 여러모로 생각해봐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쪽”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현재까지는 총무성에서 특별히 UFO에 관한 조사를 하고 있거나 하지는 않고 있다. 이것을 국방 문제로 다루게 된다면 아마도 방위청 소관의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방위청에서 UFO에 관한 문제 같은 높은 상상력을 요하는 건을 다루고 있다는 이야기는 현재까지는 들은 바가 없다. 아무튼 이런 건에 대해서는 항상 여러 가지 의미에서, 어느 날엔가 갑자기 닥쳐올 가능성을 항상 생각해 두어야 할 문제라고는 생각한다.”
 
 한국 국회에서도 UFO문제와 같은 기상천외한 사안이 논의될 날이 올까? 이런 이야기를 내놓는 국회의원이 있다면 그는 아마 여야를 막론하고 '정신병자' 취급을 받을 것이다.
 
 일본인들의 혁신성은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니다.

 

일본 역사 속에 면면히 흐른다. 전국시대 맹장(猛將)인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경우 기존의 가치에 구속받지 않는 혁신성에 있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인물이다. 그는 일본 역사상 처음으로 기독교의 포교(1568년)를 허용한 인물이다. 포교를 허용한 뒤에는 아즈치(安土)에 수도원과 신학교를 세웠다.
 
 오늘날 시가현(滋賀縣) 가모군 아즈치초(安土城-오다노부가 거주했던 성)에는 ‘다이우스’, ‘시우노미자’라는 특이한 지명이 남아있다. 다이우스는 제우스(Zeus)를 뜻하는 말로 노부나가가 신뢰한 이탈리아 선교사 오르간티노가 설립한 신학교가 있던 곳이며, 시우노미자는 주님의 자리라는 뜻인데 신학교의 교장을 역임했던 오르간티노의 저택이 있던 자리였다.
 
 아즈치는 당시로선 보기 드문 국제도시였던 셈이다. 노부나가는 평소 서양에서 들어온 문물의 기이함에 큰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포르투갈 선교사와 스페인의 상인들이 선사한 외래품을 일상 생활에 즐겨 사용하곤 했다. 오타 큐이치(太田牛一)가 쓴 '신장공기'(信長公記)] 에는 1581년 정월 대보름 달맞이 행사를 나간 노부나가의 모습에 관한 기록이 있다.
 
 남만 삿갓이라 불리던 검은 벨벳 모자를 쓰고 눈썹을 밀고 붉은 얼굴 가리개에 중국산 비단으로 만든 진바오리를 걸치고 호랑이 가죽을 가공한 승마용 앞가리개를 허리 아래에 늘어뜨린 차림이었다. 요란하게 폭죽이 터지는 승마장에서 갈색 준마를 타고 가신들과 돌아다녔다고 한다. 코르도바 산 피혁 제품과 벨벳으로 만든 외투를 애호하여 에치고의 우에스기 겐신에게 외투를 선물로 선사했고 부하들에게 남만식 모자를 포상으로 하사하기도 했다.
 
 소파(sofa)가 마음에 들어 열병식을 치를 때마다 말에서 내려 소파에 앉곤 했으며 스페인에서 제작된 유럽식 갑옷을 일본풍으로 개량해 즐겨 착용했다고 한다. 음악과 무용에 예민한 감각을 가졌던 노부나가는 교회에서 연주하는 오르간 음악의 음률에 흠뻑 젖어있기도 했으며 교토에서 오페라 공연을 주최하여 감상하기도 했다.
 
 정치 지도자의 기호는 시대의 문화에 반영되기 마련이다. 1575년의 나가시노 전투를 묘사한 병풍을 자세히 살펴보면 남만(南蠻-포르투갈) 복식을 갖춘 병사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그의 가신 중에는 흑인(黑人)도 있었다는 점이다.
 
 기독교 포교를 허락해준데 대한 감사의 답례로 예수회 일본 관구 순찰사인 선교사 알렉산드로 발리리아노에게서 헌상 받은 흑인 노예였다. 사람의 피부가 검다는 사실을 믿지 못한 노부나가는 하인을 시켜 노예의 몸을 문질러 씻게 했는데 더 검정색으로 빛나는 피부를 신기해하면서 '야스케'(彌介)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그를 자신의 가신으로 삼았다.
 
 노부나가로부터 야스케라는 이름과 무사의 신분을 받고, 또 가신이 되어 의식주에 불편함이 없도록 배려받은 야스케는 크게 감사하며 노부나가를 충실히 섬겼다. 혼노지의 변 때는 노부나가로부터 탈출을 명령받아 살아남았으나 아케치 미쓰히데(明智光秀)에 의해 인도로 추방됐다고 한다.
 
 한편, 타고난 전략가인 노부나가는 내정에도 힘써 백성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적 다이묘와 잇키, 부하들에게는 가멸찬 노부나가였지만, 소소한 내정과 민심장악에 수완을 발휘해 노부나가의 영지인 오와리, 미노 등에 선정을 배풀었다. 오케하자마 전투에 있어서도 노부나가가 승리할 수 있는 원동력은 영민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연이어 발생한 전란으로 황폐해진 교토의 상공업자들도 엄정한 노부나가의 통치를 반겼다고 한다. 오다 군의 아시카루가 길을 가고 있는 여성을 희롱하는 것을 본 노부나가는 교토의 치안을 손하는 행위로 보아 스스로의 손으로 벤 삽화도 있다. 또, 혼노지의 변(本能寺の変) 후, 아케치 미쓰히데를 따르는 호족 층이 적었던 점도 이를 반영한다.
 
 공공사업에서도 손을 뻗쳐, 길을 정비해 1리 마다 나무를 심어 표석으로 삼았다. 이는 군대의 행군속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었고, 주변의 관문도 폐지하여 주변과의 왕래를 쉽게 해 상업을 활성화 했다. 타 지역에서는 적군의 진군속도도 우려해 그 같은 일은 하지 않았다.
 
 노부나가는 도량형의 통일에도 힘써 되에 각각의 소인과 화압이 찍어 단위를 통일했다. 또, 질 나쁜 화폐는 사용치 못하게 하고, 질 좋은 화폐를 사용하도록 선전령(選銭令)을 반포해 사회, 경제 기반을 안정시켰다. 일본의 역사학자들은 실력위주의 인재등용, 상업 장려를 통한 민생 및 경제기반의 안정, 직업 군인제의 적극 활용, 경제기반의 안정, 천주교의 권장과 불교 억제(개혁에 반대하는 승려 3000명 처형) 등을 노부나가의 성공이유로 꼽고 있다.
 
 김필재 기자 spooner1@hanmail.net

  
김필재의 전체기사  
2010년 11월12일 20시03분  


 
Search

반일(反日)의 광풍은 총선을 향한다
경찰과 군대에 노조가 생기면...
사회적 경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목사들이 척결 대상이 되는 날
2020년 4월, 지옥의 변곡점
미국은 한국을 버리기 싫지만...
한국민은 인질로, 북한인은 노예로
사탄은 심장을 지배할 수 없다





단체소개개인정보취급방침 ㅣ 개인정보관리책임자: 김성욱 ㅣ 이메일 무단수집 거부

Copyright ⓒ Libertyherald.co.kr  All rights reserved    koreainjesu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