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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출신 무하마드 깐수의 최근 근황

정수일 前 단국대 교수.
 단국대 교수 출신으로 지난 97년 북한 대남 공작원으로 밝혀져 실형을 선고받았던 ‘무하마드 깐수’(본명: 정수일)가 최근 자신이 소장으로 재직 중인 단체를 문광부 산하 사단법인 등록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 매체 통일뉴스 보도에 따르면 29일 서울 모처에서 가진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창립총회를 통해 연구소 이사장에 김정남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 소장에 정수일 전 단국대 교수가 만장일치로 선출됐다고 밝혔다.
 
 중국 연길 출신의 정씨는 국내 잠입 전 북한의 평양국제관계대학 동방학부 및 평양외국어대학 동방학부 교수 생활을 하다 1974년 북한 대남공작기관에 의해 대남공작원으로 발탁됐다. 이유는 외국어(7개 국어 가능)에 능통했고 외모가 중동인과 흡사했기 때문이다.
 
 대남공작원 발탁 후 정씨은 북한에서 출국, 튀니지 대학의 사회경제연구소 연구원, 말레이대학 이슬람 아카데미 교수 등을 거치면서 10년에 걸쳐 국적을 세탁, 필리핀에 거주하는 ‘무하마드 깐수’라는 이름의 아랍인 2세 신분으로 위장해 남한에 입국했다.
 
 이어 1988년 단국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박사과정에 입학, 1990년 ‘신라와 아랍·이슬람제국관계사연구’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위 취득 후 그는 단국대 초빙교수로 임용되어 강의를 했으며, 다수의 저술활동 및 대외활동을 통해 일약 유명인사가 됐다.
 
 그러다가 1996년 7월3일, 국보법 위반으로 국가안전기획부(국정원 전신)에 검거되었으며, 1996년 7월21일, 그의 자백으로 본명과 신원이 밝혀졌다. 이 후 사형을 구형받고, 5년간 수감생활을 하다가 김대중 정권 시절인 2000년 8월15일, 형 집행정지로 출감, 2003년 4월30일 특별사면 및 복권되어 5월14일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
 
 이후 그는 백낙청(한국문명교류연구소 발기인) 서울대 명예교수, 변형윤 서울사회경제연구소 이사장, 송건호 전 한겨례신문 사장, 리영희 한양대 교수, 임형택 성균관대 교수, 박석무 한국고전번역원 초대원장 등의 인사들과 함께 ‘거시기 산악회’ 회원으로 활동했다.
 
 한편, 통일뉴스는 ‘한국문명교류연구소’가 정씨가 교장으로 있는 ‘실크로드학교’의 2년 여 활동이 축적된 기반 위에서 탄생했으며, 발기인으로는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임종인 전 의원, 박중기 민족민주희생자열사 추모연대회의 의장, 장석 이우학교 이사장, 이근성 프레시안 고문 등 3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고 전했다.
 
 연구소 발기인 가운데 백낙청(6.15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위원회 공동위원장) 교수의 경우 학계에서 대표적인 연방제 통일론자로 알려져 있다.
 
 백 교수는 2006년 4월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가 주최한 강연에서 반(反)헌법적인 6.15공동선언과 관련, “(6.15 공동선언에서) 평화통일을 강조한 것은 베트남식 무력통일을 하지 않겠다는 대전제를 합의한 것이었다”면서 “연방제와 연합제의 공통성의 방향으로 통일을 추진하겠다는 2항은 ‘독일식 통일도 안 하겠다’는 원칙을 천명한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는 또 “6.15공동선언을 지지할 수 있는 세력은 잠재적으로 대다수의 국민”이라며 “이 잠재적 지지 세력을 공개적인 지지 세력으로 만들고 그 공개적 지지 세력이 전 국민의 압도적 다수가 되게 만드는 것이 향후 통일 과정에서 마주할 최대 과제”라고 말했다.
 
 백 교수가 공동위원장을 맡아 활동한 ‘6.15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위원회’에는 안경호 범민련 북측 의장, 강신학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과 같은 북한 노동당 당원들을 비롯, 남한의 권오헌 양심수 후원회장, 문경식 전 전농 의장 등 좌파인사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와 함께 량수정 일본 조총련 중앙위원회 부의장, 곽동의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 상임고문, 박용 범민련 공동사무국 부사무총장 등 해외 친북 단체와 인사들도 단체에 포함되어 있다.
 
 백 교수와 함께 연구소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있는 임종인 전 열린우리당 의원은 극좌(極左)단체인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이하 전국연합) 대변인(1992~1995) 출신으로 의원 시절 내내 국보법 철폐·주한미군철수 등을 일관되게 주장해온 대표적 좌파인사다.
 
 임 전 의원은 2004년 말 열린우리당이 4대입법을 강행할 당시 “국보법을 철폐시키지 않을 경우 천정배 원내대표와 열린우리당이 죽을 테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 민족이 죽는다는 것”이라며 전국연합 등이 주도한 국회 앞 운동권 농성장을 수시로 방문하며 격려했다.
 
 그는 또 2005년 7월 ‘북한인권문제를 내세운 강대국의 대(對)북한강권적 외교압력에 반대하는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당시 결의안은 “미국이 인권문제를 내세워 경제봉쇄를 하는 것은 북한주민의 식량권을 담보로 한 비(非)인도적 조치”라는 등의 문구가 담겨 있었다.
 
 이와 함께 그는 2004년 6월 김선일씨(이라크 테러조직에 의해 살해) 1주기를 맞아 당시 열린우리당 김원웅·유승희·이인영, 한나라당 고진화·배일도, 민노당 권영길·이영순, 민주당 손봉숙 의원 등과 함께 ‘자이툰 부대 철군 촉구결의안’을 제출하겠다며 기자회견을 가졌다.
 
 한편, 박중기 민족민주희생자열사 추모연대회(이하 추모연대) 의장은 2006년 9월 서울 종로2가 종로 타워 앞에서 소위 ‘민족 민주열사 희생자 추모행사’를 개최, 당시 라이트코리아(대표 봉태홍) 등 자유진영 시민단체들에 의해 고발 당한 대표적 좌파인사다.
 
 추모연대가 당시 공개한 ‘민족민주열사 희생자’ 명단 중에는 민주화운동 희생자와 함께 대한민국 체제 전복, 파괴활동을 하다가 구속되어 사형을 당했거나, 북한으로부터 남파되어 간첩활동을 하다가 구속되어 전향하지 않고 사망한 자, 빨치산으로 활동하면서 국군을 적대시하고 싸웠던 자들을 다수 포함시켜 논란이 됐다. (보수단체 고발장 인용)
 
 당시 논란이 된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79년 검거된 공산혁명조직인 ‘남조선민족해방애국전선(남민전)’의 주범인 이재문·신향식 ▲1968년 ‘통일혁명당’ 간부로 활동 중 월북해 조선로동당에 입당한 김종태·김질락·이문규·최영도·정태묵 등 간첩전력자들 ▲남파간첩 출신 최석기·박융서·김용성·신창길·진태윤 ▲빨치산 출신 윤기남·정대철·김광길·박판수·박현채 ▲남로당 활동 중 검거돼 ‘비전향장기수’로 복역한 변형만·한태갑·김규호·최한석·이용운·황필구·최재필·양재영·최주백·권양섭·장광명 등이 당시 추모대상으로 전시물 및 분향소에서 관람자들에게 무료 배포하는 홍보인쇄물에 기재되어 있었다.
 
 한편, 통일뉴스는 이 같은 연구소 관계자들의 이념적 성향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연구소가 향후 “정관을 확정해 문명교류의 학문적 정립, 문명교류에 관한 학술조사 및 연구, 문명교류에 관한 대중교양강좌 프로그램 운영 등을 주요사업으로 삼았다”고 보도했다. 
 
 김필재 프리존뉴스 기자 (spooner1@freezon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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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01일 10시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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