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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상의 대한민국 부정이 사태의 근본 원인
한겨레신문 미게재 인터뷰 전문(1월 16일)

한겨레신문 미게재 인터뷰 전문(1 16)

<편집자주> 한겨레신문은 1월27일 통영의 딸 신숙자-오혜원-오규원 구출운동 관련, 아래와 같은 기사를 실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16324.html)

 

이 기사는 통영의 딸 入北에 음악가 윤이상이 개입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윤씨의 아내 이수자씨 인터뷰이다. 신씨는 최근 윤이상의 친북행각 등을 비판해 온 오길남 박사와 통영현대교회 방수열 목사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바 있다. 아래는 한겨레가 특집호를 내놓기 12일 전인 1월 16일 세이지코리아 사무실에서 김미영 대표와 최우성 최우리 기자가 진행한 인터뷰 녹취록이다.

 

검찰 기소 여부를 앞둔 상황에서 매우 민감한 취재가 될 것을 예상하고 편파적 보도에 대비하여 녹음을 합의했다. 다음은 이 인터뷰에서 법적인 쟁점뿐 아니라 사실적 쟁점까지 구체적으로 해명했다. 원 인터뷰 내용에서 다소 첨삭하여 뜻을 분명히 하여 정리했다. 음원은 www.webhard.co.kr 아이디: sagekorea1 비밀번호:sage 에서 들을 수 있다.

 

[] 오길남 씨와는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 (재출간된 오길남 저 [잃어버린 딸 오! 혜원 규원]) 책 서문에서 썼듯이 당시 나는 신문기자였고 (취재차) 갔더니 박사님이 사진을 전부 내게 맡겼다. “나는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죽어도 얘기 좀 해달라”고 했다. 특히 머리맡에 있던 액자 속에 고개 숙인 혜원규원 사진이 인상적이었다. 그 액자 속 사진까지 꺼내어 내게 맡겼다. 그 사진은 송두율 씨 가족과 입북 전에 함께 소풍 갔을 때 찍은 사진이라고 했다.

북한 정치범수용소 해체운동에서 시작해 ‘통영의 딸’ 송환운동으로 불붙어

[] 그게 언제였나?

[] 2001년인 것 같다. 벌써 10년이 지났다. 그 후 서울을 떠났다가 2009년에 돌아왔다. 정치범수용소 해체운동과 이 운동 (혜원규원구출운동)을 결합시키는 게 기본 전략이었다. 윤이상 씨가 북한에서 가져온 사진이 요덕 정치범수용소 내에서 찍혔다는 사실이 복수의 탈북자 증언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혜원규원이라는 이름이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에서 죄없이 죽어가는 이름없는 사람들을 환기시키는데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이 사건이 확대된 것은 작년 초에 본격적으로 정치범수용소 전시회가 시작되고 5월 이후 ‘통영의 딸’이라는 이름으로 변하면서부터였다.

애초에 북한인권운동가로서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을 이름없는 이들을 불러내고, 한국 공동체가 북한으로도 공감대를 확장시키도록 운동을 전개하기를 원했다. 말하자면 인화학교, 도가니 사건으로 전국의 여론이 들끓지만 북한의 인권 상황은 아무리 충격적이라도 무관심한 한국의 상황을 혜원, 규원 자매를 통해 바꿔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국 공동체에 포함돼 있는) 통영 출신의 어떤 사람이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에 갇혀있고, 20년 이상 소식이 끊어진 채 돌아오지 못했다는 점 때문에 남한 대중들의 마음이 움직이더라. 다시 한국 문제로 변했다.

‘통영의 딸’과 ‘윤이상’ 분리 원했지만 함께 갈 수밖에 없는 객관적 현실 있어

[]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윤이상 재평가로 옮겨 붙었다. 이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 작년 5월 서울에서 정치범수용소 전시회를 마치고 전시물품을 통영 현대교회에 제공해 주었다. 직접 교회에 찾아가서 앞으로 윤이상 때문에 논란이 일어날 텐데 가능한 한 그 논란이 생기지 않는 것이 좋겠다. 언젠가는 재평가가 되겠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혜원규원과 그 어머니를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윤이상은 너무 유명한 사람이지만 신숙자는 무명이다. 이 무명의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래도 교회 다니는 여러분들 아니겠는가? 그러니 이 마음만 갖고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하지만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통영의 딸’ 문제가 윤이상 책임 문제와 함께 가더라. 그 때부터 이미 고소 사건이 있을 것으로 어느 정도 예상했고 준비를 시작했다.

이 사건이 전개되는 양상을 보면서 결국 우리 사회가 세계적인 작곡가이면서 친북인사인 윤이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를 갖고 있고 이를 풀어야 한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겨레신문은 우리의 1년 가까운 일련의 활동(정치범수용소 전시회 및 통영의 딸 송환운동)에 대해서는 한 줄도 기사를 쓰지 않았는데 윤이상 가족이 오길남 박사와 방수열 목사(통영현대교회)를 고소할 때부터 비로소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한겨레는 확실히 윤이상 편이구나 생각했다.

한겨레가 우리 사회에서 귀중한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남한 내에 있는 약자의 입장을 어느 정도 대변해 왔다고 본다. 그런데 ‘통영의 딸’ 문제에서 약자는 누구인가! 바로 신숙자, 오혜원, 오규원이다. 그런데 왜 강자인 윤이상 가족 편을 드는가? 그 사람들은 독일, 평양, 통영, 미국에 거처가 있고 김일성, 김정일 조문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한민족 최고의 특권을 누리는 강자가 아닌가!

오길남 월북 권유한 윤이상 편지, 허위라면 주장하는 사람이 입증해야

[] 염두에 두겠다.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이어갔으면 한다.

[] 윤이상 가족의 고소 사건에 대해 설명을 좀 하고 싶다. 이 사건은 법적인 견지에서는 쟁점이 하나밖에 없다. 오길남 박사가 북한에 들어가기 전, 윤이상 선생이 북한으로 가라는 편지를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에 관한 것이다. [잃어버린 딸들 오 혜원 규원] 86~87쪽에 나오는 윤이상 편지는 '간난신고 끝에 학위를 취득한 것을 축하합니다. 이제는 민족통일운동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라고 생각하오. 그러니 북한으로 가서 그 동안 배운 지식을 동포를 위해 썼으면 하오.' 등의 내용이다. 윤이상 가족이 지금 오길남 박사가 이 편지를 손에 들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소송을 건다면 그들은 완전히 양심이 마비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오 박사는 북한에 들어갈 때 가족과 함께 살림을 다 가지고 들어갔다. 편지가 없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이 편지는 실제로 이 사건에서는 이미 쟁점이 될 수조차 없다. 이 사건은 사자(死者)의 명예훼손에 관한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법적인 요소는 ‘공연히’ ‘허위사실’을 퍼뜨려야 한다는 것이다. ‘공연히’라는 말과 ‘허위사실’이라는 말이 다 중요한데, 그렇다면 오 박사가 윤 선생에게 편지를 받았다는 내용과 구체적인 문구를 공연히 지어냈단 말인가! 이런 주장이야 말로 증거 제출이 필요하다. 누가 읽어도 이것이 꾸며지지 않은 내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더 중요한 점은 이 편지가 윤이상으로서는 충분히 부칠 만한 편지였다는 것이다. 오 박사가 민건회 4대 부회장을 했고 윤 선생이 2대 회장을 했다.

더 중요한 것은 윤이상 선생이 오길남 사건을 해명하기 위해 쓴 친필 메모에 이 편지에 대해서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잃어버린 딸들 오 혜원 규원] 1993 [김일성 주석 내 딸과 아내를 돌려주오!]라는 제목으로 처음 나왔고, 윤이상은 1995년에 작고했으니 친필 메모를 쓸 때는 물론이고 이후에도 얼마든지 반박할 수 있었다. 아마 이 편지를 보내지 않았다면 가장 먼저 그 사실부터 반박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부인 이수자 씨는 그 편지를 부인하고 오길남 박사를 거짓말쟁이로 무고하고 있다. 과연 이수자 씨가 남편 윤이상이 그런 편지를 보낸 사실이 없다는 것을 입증할 방법이 있나. 원천적으로 방법이 없는데 이 문제를 법정에 가져가겠다는 것 자체가 몰상식한 일이 아닌가.

인간 심연의 고통 모르는 예술가가 위대한 예술가?

[] 친필 메모라는 것은 ‘오길남 사건과 나’라는 글 말인가?

[] 그렇다. 독일 교민 회보에도 실린 그 친필 메모에서 이 편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만약 윤 선생이 오 박사를 정말 몰랐고 입북에 관여한 바가 없다는 얘기를 하려면 ‘쓰지도 않은 편지를 왜 썼다고 하느냐’라는 얘기부터 해야 한다. 오 박사는 그 편지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얘기했기 때문에 윤 선생은 편지를 통해 입북을 권유한 셈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 전혀 언급이 없었고, 충분히 기회가 있었는데도 편지를 쓴 것에 대해 방어하지 않았기 때문에 묵인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입북 권유가 자명한 것이 아닌가!

‘오길남 사건과 나’라는 친필 메모에 대해 윤 선생에게 실망감을 느낀다. 윤 선생이 오길남 가족의 육성 음성과 사진을 가져왔을 때 오 박사가 아이들을 보면서 못생겼다고 얘기한 것을 두고 윤 선생은 그 메모에 시시덕거렸다고 썼다. 위대한 예술가가 어떤 인간의 심연의 고통에 대해 저렇게밖에 보지 못하는가에 대한 분노를 느꼈다. 윤이상이 위대한 작곡가라고 얘기하는 것에는 분명 허위가 있다. 윤 선생이 이들을 구명하기 위해 애를 썼다고 얘기한 것에 대해 인정되는 부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윤이상 부부가 오길남 가족의 육성까지 들려준 것은 명백히 오길남을 재입북시키려는 의도였고, 오길남이 그들 앞에서 가족 송환을 포기하겠다는 말한 것은 그들의 가증한 유인에 대한 거부였던 것이다.

독일 박사를 간첩 만든 것이 차관급 대우?

윤 선생은 오 박사에 대해 ‘차관급 대우를 받고 있고, 칠보산 연락소의 비밀을 알고 있기 때문에 북측에서 가족을 보낼 수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차관급으로 그렇게 좋은 대우를 받고 있는데 왜 북한을 탈출했냐는 뜻이다. 차관급이 무엇인가? 독일 차관급? 한국 차관급? 20년 고진감래 끝에 경제학 박사를 획득한 사람에게 대남방송을 하게 하고, 유학생을 유인하는 간첩으로 만드는 것이 북한 차관급인가? 북한 차관급의 월급을 달러화로 계산하면 지금도 10달러 미만의 가치라고 한다. 독일이나 남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차관급이라니 대우를 잘 받았네’ 라고 생각할 것이 아닌가? 이런 허위가 어디 있나?

국가안전기획부 언론보도자료에서 윤이상 문화공작원으로 규정

윤이상 선생이 오길남 가족 북송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문화 공작원’이라고 규정한 [입북 자수간첩 오길남 사건내용 (入北 自首間諜 吳吉男 事件內容)](국가안전기획부, 1992, 국회도서관 소장)에 이미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오길남만이 아니라 수많은 엘리트 유학생들이 북한에 대해 오판하고 월북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검찰에서 오길남 박사를 기소하려면 먼저 이 자료부터 반박해야 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법적인 차원을 넘어서는 무엇이다. 이 사건은 역사적, 정치적으로 중요하고 포괄적인 쟁점을 가지고 있다. 윤이상 가족이 고소한 이유는 승소가 목적이라기보다 몇 가지를 겨냥한 것 같다. ‘왜 오길남 북송의 책임이 마치 윤이상에게 있는 것처럼 다 뒤집어 씌우느냐’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닐까. 다른 한 가지는 ‘우리가 구명을 위해서 노력하지 않았느냐’는 점을 말하고 싶어하지 않았나 싶다.

오길남 가족 북송이 윤이상에게만 책임이 있다고 다 뒤집어 씌우는 것이 억울하다는 입장은 인정할 수 있다. 야채상 김종한에게 책임이 있고, 격려한 송두율에게도 있으며, 무엇보다 압도적으로 오길남 박사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

윤이상 가족은 신숙자 일가 고통 앞에 침묵할 때

그러나 지금은 윤이상 가족은 분명 침묵을 해야 할 시점이다. 우리 나라는 지금 역사 앞에서 남과 북이 총체적으로 어디로 갈 것인지 물어야 할 시간에 처해 있다. 윤이상은 그야말로 북한이 공들여 구축한 독일 친북 교두보였다. 세계적인 명망가였기 때문에 그가 북한 쪽에 확실히 선 순간 너무나 많은 유학생들이 친북적인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 자체가 총체적으로 너무 큰 죄악이다. 오길남은 돌아왔지만 돌아오지 못한 월북 유학생들은 훨씬 더 많다. 오길남이 독일로 나왔던 것도 두 사람의 유학생을 유인해 가기 위해서였다. 과연 그들을 유인해 갔어야 옳았나? 오길남의 탈출로 그나마 그 흐름이 끊어진 것이 아닌가!

오길남 북송사건뿐 아니라 윤이상이 수많은 친북 지식인을 양산한 것에 훨씬 더 큰 죄악이 있다고 본다. 윤이상 가족은 지금 억울하다고 소리칠 때가 아니다. 아직 북한에서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얘기를 들을 때까지 당신들은 침묵해야 한다.

[] (우리는) 법률적인 다툼을 떠나서 언론으로서 어느 정도 최대한 실체적인 진실에 가까이 가고자 노력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오길남 박사가 처음에 입북할 때 윤이상 씨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고 하지만 어디까지가 윤이상 책임인지 따져봐야 한다고 보는데.

[] 절대적이라고 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오길남 박사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압도적으로 크다. 오 박사는 “내가 왜 그때 1985년에 북한으로 가게 됐을까.” 고 말하고 스스로 “그 때 한국에 들어가 대학교수가 되기 위해 전두환 정권에 가서 반성문을 쓰기는 싫다.”고 생각했던 것이 어리석은 선택을 하도록 만들었다고 했다. 당시 한국에서 이미 대학교수로 몇 군데서 청빙한 상황이었는데 반정부 성향의 민건회 간부였으므로 당시 안기부에 가서 반성문을 써야 했다.

지식인 오길남의 선택에 대한 역사적인간적 검토 필요

1985년은 우리 현대사를 민주화의 관점에서 볼 때 가장 어둠이 깊은 해였고, 또한 그 해에 동이 텄다. 1980년 광주에서 총성이 나고 나서 모두가 일제히 지하에 조용히 들어간 상황이었는데, 1985년 그해 이민우 총재의 신민당과 함께 야당선거돌풍이 시작됐다. 그 어둠 끝자락에서 암흑으로 초대받았던 오길남 박사 자신이야말로 가장 불운한 희생자다.

나는 오 박사를 지식인으로서 이해하고 연민을 갖고 있다. 한국 지식인 중에서 가장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람이 빨려 들어갈 수 있는 블랙홀이었다. 조금만 지혜롭거나 약은 사람이었다면 솔가해서 북으로 가지 않는다. 누가 가겠는가? 다들 반성문을 쓰고 교수가 됐다. 그들은 여기서 잘 살고 있다. 아니면 독일에 남아 자유를 누렸다. 오 박사는 왜 그렇게 하지 못하고 가족들을 사지로 몰아갔는지 물어보고 싶다.

오 박사는 북한에 가서조차 너무 약지 못했다. 이수자 씨가 말한 대로 북에서도 웬만큼 살 수 있는데 왜 나왔냐고 묻는다면, 이때야말로 역지사지가 필요하다. 이수자 씨는 김일성이 선물했다는 그 넓은 평양교외의 저택 대신 지금 왜 이곳에 와 있는 것인가? 오길남이라는 한 지식인에 대해 실존적으로 공감한다. 많은 지식인들이 지금 이 시점에서 1980년에 해외에서 광주 문제를 인식했던 한 지식인의 선택에 대해 역사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윤이상 선생의 책임이라고 할 때, 입북을 권유한 편지 한 장으로 끝나지 않는 책임이 있다고 본다. 이 문제는 복잡하다. 윤이상 선생이 독일 지식인 사회를 상당히 친북으로 이끌어갔던 이유 중 하나는 개인적인 상처 때문이다. 세계적인 작곡가로서 한국에 들어와 남산에서 고문당하고 1년 이상 감금돼 있었던 개인적인 상처가 의미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으로부터 받은 개인적인 상처로 인해 김일성과 북한을 택한 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윤이상 부부는 구미 유학생 사회가 북한을 오판하고 경도되게 한 데 큰 역할을 했다. 이 부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신비화된 윤이상, 많은 구미 지식인 친북화에 지대한 영향 끼쳐

[] 권유했다는 표현은 윤이상 선생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던 부분에 대한 영향만이 아니라 오래 전 민건회 활동을 같이 했을 때부터 영향이 컸다고 말하는 것인가?

[] 오길남 박사는 그 때 이미 굉장히 영향이 컸다고 말했다. 윤이상 선생은 어떻게 보면 독일 친북세력의 우두머리 아닌가? 게다가 세계적인 음악가다. 어떻게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겠나? 그리고 스승 아닌가? 윤이상은 부산고에서 교편을 잡은 바 있고, 오길남은 부산고 출신이다. 윤이상 선생은 오길남을 ‘먼발치에서 봤다.’ 며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나에게도 제자들이 많이 있는데, 내 입장에서는 ‘잘 모른다. 이름만 아는 정도.’라고 말하기가 쉽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친구가 내게 받는 영향은 다를지도 모른다. 윤이상이라는 존재의 신비화된 부분까지 포함하면 기본적인 영향이 지대하다고 생각한다.

[] 오길남 박사에게 묻고 싶었던 것이 있다. 책에는 고민을 하다 베를린에 가서 친구를 만나고 거기서부터 본격적인 고민이 시작된 것으로 나온다. 그동안 취재하는 과정에서 오 박사가 당시 유럽에 있는 북한 대사관 등을 통해 자신이 공부한 것을 그쪽에 가서 펼쳐볼 기회가 있는지에 대한 의사를 비쳤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 오길남 박사: 전혀!

[] 오길남이라는 사람을 너무 모르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 같다. 북한에서 김일성종합대학 교수라도 할 수 있을까 하고 알아보는 종류의 사람이라면 ‘부인과 딸들은 여기 두고 한 번 다녀와 봐야겠다’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이 사건과 관련된 중요한 감도는 북한도 살만한 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어떻게 가족과 함께 그런 곳에서 살 수 있나 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차이다. 사람이 살고 있다? 나의 관심은 어떻게 사는가에 더 있다.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오길남 박사가 가족을 두고 왔다고 무턱대고 화를 낼 것이다. 송두율 씨 가족도 그런 입장이었던 것 같다. 한 번 전화했을 때 송 교수 부인이 “가족 버린 사람 말을 누가 믿어요!”라고 소리쳤다. 여러 사람들이 오길남이라는 사람을 인간 말종으로 만드는 것에 집착하고 있었다. 심지어 한국의 많은 지식인들도 그렇게 말한다. 그런 사람들은 탈북자들도 미워한다. 황장엽 선생님도 그런 얘기를 듣고 지냈다.

사람이 살고 있다? 어떻게 사는가도 중요한 문제

많은 탈북자 인터뷰를 통해서 내가 갖게 된 생각은, 앞으로 한국 사회가 저 북한 주민들이 가진 상처의 깊이를 어디까지 쓰다듬을 수 있는지가 문제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다른 말로 하면,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흘러가는 북한의 체제는 중국이나 소비에트가 아니라는 것이다. 히틀러보다 더 악한 체제이다. 그런 체제에 대해 왜 남한의 지식인들이 이렇게까지 소화를 못해 내는 것일까? 지금 한반도에서 스스로를 신으로 표방한 3부자가 북한을 60년 이상을 통치하고 있다는 사실보다 더 심각한 사실이 있는가?

한 때 한겨레의 북한 접근법이 상당히 건강하다고 생각했다. 북한의 인권 문제도 많이 다루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북한인권 문제 등에 대해서 목소리가 없다. 어떻게 하면 북한인권 문제를 다루지 않을 수 있을까 연구한다고 느껴질 정도다. 지금까지 거의 1년 가까이 통영의 딸 사건이 전개되는 동안 단 한 번도 오길남 가족의 입장에서 서 보려고 하지 않았다. 끝까지 기다리다가 왜 윤정, 이수자 씨를 옹호하는 입장에 서서 취재를 시작했나. 이른바 “수령님 만수무강”을 노골적으로 빌고, 딸까지 대동하고 김정일 조문을 다녀오는 이수자 씨에 대해 한겨레는 정말 아무 문제를 느끼지 못하는 것인가!

윤이상의 대한민국 부정이 사태의 근본 원인

앞으로 한국 지식인들이 갖고 있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체제를 지적으로 소화해내지 못하는 이 교착상태를 푸는 데 있어 한겨레신문의 역할을 기대한다. 미국 역사를 보면 알겠지만 민주당과 공화당이 서로 싸우면서도 서로 완전히 합의를 이루는 부분이 있다. 건국과 헌법에 관해서다. 오바마도 취임연설에서 건국의 아버지들에 대한 치하를 잊지 않았다. 영국 식민지였던 미국이 헌법을 만들고 건국을 했던 것에 대해 공동체가 함께 감동으로 끌어안는 부분이 있다. 대한민국 건국과 헌법에 대해서도 인정하고 가야 한다. 이 모든 문제는 윤이상 선생이 대한민국을 부정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윤이상 선생의 개인적인 상처 때문에. 과연 대한민국이 부정이 되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윤이상 문제를 끝까지 갖고 가면 이런 근본적인 문제가 나오기 때문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 1992년에 오 박사가 한국으로 돌아왔고 2001년에 처음 만났다고 했다. 그 사이 10년 정도는 크게 이슈가 되지 않았는데?

[] 기본적으로는 남한 공동체가 그 기간 동안 민주화를 위해서 시간을 더 보내고 있었다고 본다. 1990년부터 2000년 사이는 산업화 세력에서 민주화 세력으로, 일종의 다리를 건너가는 것과 같은 시대였다. 그 때는 오히려 과도하게 이념 등으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사실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사형당한 김질락 같은 사람들에게 깊은 연민을 느낀다. 인혁당 사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윤이상 선생보다 이 분들에게 더 관심이 많다. 북한을 열심히 방어하는 게 당연히 맞지만 과도했던 부분이 있었다. 아무튼 대한민국으로 인해 상처받았던 사람들을 위해 더 일했어야 하는 시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한다.

[] 이 문제를 보편적 인권의 문제로 보기까지는 성숙하지 못했다?

[] 그렇다. 시간이 되지 않았다. 그 때는 말하자면 오혜원, 오규원, 신숙자와 같은 사람들을 위한 시간이 아니었다고 본다. 한국 역사에서는 작년 정도가 시작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도 이제 보통의 작은 사람들 인권에도 눈을 뜨는 시대

[] 특별히 작년으로 꼽는 이유라도?

[] 주관적인 판단이다. 윤이상, 오길남, 송두율이 역사의 주연급 배우로 등장하고 있을 때, 말하자면 ‘송두율이 간첩인가 아닌가’ 이런 논쟁으로 들끓을 때 통영의 딸 신숙자라는 이름은 옆에 낄 수도 없었다. 그런데 작년에 서울 인사동에서 정치범수용소 전시회를 해보니 북한에 사람들이 정말 불쌍하게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해 한국에 있는 보통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더라. 많은 사람들이 전시회장에서 울었다. 외국인도 많이 울었고. 오길남 박사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지만 신숙자라는 이 평범한 아주머니에 대해서는 깊이 공감했다. 그래서 나는 한국 사람들이 명망가가 아닌 보통의 작은 사람들에 대해 마음이 움직이는 시대가 왔고 한국이 정말 괜찮은 나라가 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 현실적으로 통영의 딸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또는 어떻게 전망하는지?

[] 올해 돌아오기를 바란다.

[] 어떻게 할 수 있는가?

[] 좋은 뉴스가 있지 않나. 김정일이 죽었다. 북한이 아주 의미 있게 변화될 것이라고 믿는다. 기도와 같은 것이다. 도둑처럼 해방을 맞은 것처럼 북한에서 획기적인 변화가 오면 혜원규원도 돌아올 것이다.

북한에 획기적 변화 있을 때만 통영의 딸 송환 가능

[] 저쪽에 만약 결정적인 변화가 없다고 했을 때 국제법적 차원으로 우리 쪽에서 요구해서 인도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 북한에 획기적인 변화가 없다면 불가능하다. 예전에 로버트 박 송환을 위해 애를 썼는데 로버트 박이 미국사람이라는 사실만 강조했다. 그러면 살릴 수가 있으니까. 그런데 혜원규원 문제는 다르다. 북한이라는 나라가 인권 유린을 할 때 레벨이 있다. 북한주민, 탈북자, 남한사람 순이다. 외국인은 괜찮다. 심지어 정전협정 때도 6.25 전쟁 납북자 중에서 외국인은 북한에서 먼저 제안해 다 풀어줬다. 대한민국 출신은 8만 여명 중 한 명도 못 왔다.

이미 혜원규원 문제와 정치범수용소 문제를 세이지 웹 전시관으로 만들어 10개국어 이상으로 번역을 끝냈다. 낭만적인 얘기지만,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보고 싶다. 그 물결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데 도움이 된다면 북한이 혜원규원부터 보내 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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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2월02일 15시00분  

전체 독자의견: 1 건
우명희
북한정권이 돌이키려하는 부분에서 얼마나 많은 희생과 노력이 필요할까?
자신들의 잘못을 자꾸만 모르는채 하려고 하니,
아는 우리들이 알려주는 수밖에는 없구나
북한정치법수용소전시회처럼.. (2012년 02월03일 09시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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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홍보관이 돼 버린 교회들



 1. 외식(外飾)하는 권력은 시대를 분간할 ..
 2. 윤석열 대망론에 대한 성경적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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