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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공은 이데올로기 아닌 생명을 지키는 무기였습니다.
[서평] 위험한 책 [통일코리아를 세우는 100일기도]를 바로잡습니다. (2)

 요즘 지성계 뿐 아니라 기독교계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65년 역사를 관통하는 ‘반공’노선에 대해 가차없이 비판하는 것이 큰 유행입니다. 반공은 태어나서 안 되는 후레자식 같은 사상이며, 없애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악(惡)입니다. 낡은 이념이고, 쓸모도 없으며 ‘평화’와 ‘통일’, ‘인권’,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나쁜 사상이라는 것입니다.
 
 [100일기도(사진)](오테레사)의 대한민국 정치사 기술에도 반공에 대한 이런 인식이 충분히 배어 있군요. 이 책은 6.25전쟁과 이승만 정부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1950년에 일어난 6.25전쟁은 영토나 국가 이익 때문이 아니라 이데올로기 대립의 전쟁이었다. 내전의 성격에서 시작된 전쟁이 전면적 국제적 전쟁으로 확대되었다. 그 결과 동족 간의 참살과 함께 민족 분단은 영구화되었고 교회가 입은 상처는 심각했다. 이로 인해 한국교회는 반공 이데올로기에 깊이 사로잡히게 되었고, 그것을 뛰어 넘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었다.> (<<남한 종교영역의 뿌리>>, 73면)
 
 <이에 좌익과 우익 간의 갈등을 극복하고 사회 질서를 확립한다는 명분으로 국가보안법 제정, 반공주의 정책을 내세웠고, 이승만 정권은 1960년 3월 15일 부정선거를 통해 장기 집권을 도모하지만 이에 반발하여 학생을 중심으로 시작한 시위는 수많은 국민들까지 가세하여 4.19혁명을 일으켰고, 이승만 정부는 무너지게 되었다.> (<<제1공화국>>, 42면)

 
 (1)반공은 이데올로기이며, (2) 한국교회는 이 이데올로기에 깊이 사로잡혀 있고, (3) 역대 지도자들은 통치를 위해 반공을 이용했다는 것입니다.
 
  최근 국민일보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선교훈련원이 개최한 ‘에큐메니컬 전국목회자 인문학 심포지엄’에서의 이만열 교수 발언을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한국교회가 해방 이후 시대적 사명을 잃게 된 것은 반공 사상을 추종하며 재물과 안락, 세습이 보장되는 권력에 함몰돼 기독교적 영성을 잃었기 때문”이라며 “종북 세력이라는 가상의 적을 만들어 타인을 정죄하기보다 희생과 사랑, 화해로 인권과 민주화, 통일, 북한 돕기에서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놓아야 한다."고 조언했다.>(국민일보 2월 13일자)
 
 (4) 종북은 실체가 없는 가상의 적이며, (5) 반공은 참된 기독교적 가치에 배치되는 잘못된 사상이라는 것으로 정리됩니다.
 
 마르크스주의가 20세기를 풍미했던 세계사를 반추해 볼 때, 이런 주장은 일정한 지성사적 맥락에서 비롯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비공산권 국가에서도 마르크스주의는 근대 학문과 사상으로서 허용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공산권 블록이 붕괴된 지금도 학문 방법론으로, 또는 지적 상상력으로 살아남아 있습니다.
 
 [100일기도]는 북한의 정치이념의 하나로 ‘사회주의’를 지목하고 그 의미를 이렇게 풀이합니다.
 
 <협동적으로 자유 평등한 사회를 형성해 사리사욕, 타인이 지배하는 불공정 빈곤으로부터 사람들을 해방하려는 사상, 사회운동, 사회체제를 총칭하여 이르는 말이다. 그 원류는 사유재산 없는 협동 생활을 찬미한 스토아철학이나 그리스도교 등의 교의(敎義)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중세 말기 농민투쟁의 이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북한 정치이념>>(48면))
 
 이렇게 본다면 공산주의와 기독교는 만날 길이 있겠습니다.
 
 그러나 조건이 필요합니다. 기독교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포기할 때 가능합니다.
 
 공산주의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마키아벨리즘에 입각해 있습니다. 거짓말도 폭력도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 정당화됩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십자가는 기본적으로 방법 또는 수단입니다. 스스로를 부인하고, 못박아 피흘리는 희생의 종교입니다. 그리하여 그 십자가 사랑이 동시에 목적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것은 양보할 수 없고, 타협할 수 없는 기독교의 근본입니다.
 
 기독교가 십자가를 들고 공산주의를 따라가고자 한들, 공산주의는 기독교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계열이 다릅니다. 김일성이야말로 자신의 동상이 기독교 십자가와 공존할 수 없는 이치를 꿰뚫었습니다. 그리하여 김일성은 정부 수립 전 북한 땅에서 기독교 십자가를 모두 꺾었습니다. 성경도 찬송가도 예배도 없앴습니다.
 
 지금도 북한은 세계 최악의 기독교 박해국입니다. 1974년 [유일사상10대원칙]을 통해 김일성은 확실하고도 분명한 방법으로 신적인 지위를 공표했습니다. 김일성에 대한 신격화, 절대화, 신조화, 무조건화의 원칙을 북한 사람들 일상의 모든 영역에 실천토록 한 것입니다. 한 치의 위반자도 정치범수용소 행을 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원칙은 그의 아들과, 손자에게로 이어졌습니다.
 
 이 김일성 숭배사상은 마르크스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기타 아류 사상의 수로(水路)를 타고 곧잘 우리 사회로 흘러 들어왔습니다. 그것은 명백하고 객관적인 사실입니다.
 
 (1) “반공은 이데올로기이다?” 이데올로기는 정의되기 어려운 말이지만 굳이 정의한다면 ‘특정 그룹이나 개인을 이롭게 하는 사상, 곧 보편 사상과는 다른 사상’을 말합니다. 스스로 특정 계급의 이익에 봉사한다고 천명한 공산주의는 이데올로기이겠으나 이 나라에서 반공은 이데올로기가 아니었습니다. 자유와 생명을 지키는 필요불가결한 무기였습니다.
 
 (2) 한국 교회가 반공 이데올로기를 극복하지 못했다? 한 때 북한에서 기독교 박해를 체험한 한국 교회는 반공의 보루와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 교회에는 다양한 수로를 타고 공산주의가 흘러 들어갔고, 수월하게 자리를 틀고 있습니다. ‘사랑의 이름으로’ 공산주의도 주체사상도 다 허용합니다. 아닌데 아닌데 하다가 허용합니다. 신학대학은 정도가 더 심각합니다. 도리어 한국 교회의 ‘사랑’이 진실과 거짓에 대한 분별을 포기한 채 이데올로기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사랑 이데올로기’ 앞에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없습니다.
 
 [100일 기도] 147면의 기도제목을 적어봅니다. “하나님. 사랑이신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못하고 서로 헐뜯고, 비방하기에 정신이 없는 대남 방송, 대북 방송의 죄악을 회개합니다. 분열의 영, 사탄이 조장하는 이데올로기의 감정에만 의존하여 방송하였던 것을 회개합니다.” 이 갸륵한 상대주의! 이 한량없는 사랑! 이것이 한국 교회의 현실입니다.
 
 (3) “역대 지도자들이 반공을 통치를 위해 악용했다?” 그런 사례들이 있었지요.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그런 사례들을 찾아내고, 고발했습니다. 그렇게 성장해 왔습니다. 피로 민주주의를 얻어냈습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것이 반공을 부인할 까닭이 되지 않습니다. 반공이 악용된 사례보다, 비할 바 없이 많은 사례들을 통해서 이 나라가 실질적인 북한 공산주의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나라 지도자들에게 공산주의와의 싸움은 처절한 숙명이었습니다.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대통령 시해를 시도하고, 영부인과 최고의 관료들을 암살 테러했으며, 해외파견 노동자들을 대량학살하고, 군인들도 죽입니다. 과거가 아닌 현재입니다. 햇볕정책 이전에도 그랬고, 당시에도 그랬으며,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만열 교수의 권고에 대해서도 몇 마디를 덧붙입니다.
 
 (4) “종북이 실체 없는 가상의 적?” 종북은 엄밀한 용어는 아닙니다. 그러나 김일성 3대 세습체제를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그들의 체제를 보장하며, 그들과 대등하게 손잡고 민족통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세력을 ‘종북’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가상이 아니라 실체입니다. 악한 수단도 거짓말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세력입니다. 대중들의 비정한 이기주의와 전쟁에 대한 공포심을 활용하여 거대 정치세력으로 탄생할 준비를 갖춘 극 현실의 실체입니다.
 
 김일성 김정일 시체에 절해도 신성을 모독하는 일이 아니라고 믿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 세력에 가세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3대세습이 무너져도 또 새롭게 변신하며 온존해 나갈 이 신념 집단, 신앙 집단을 ‘가상의 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순진성의 다른 표현이겠지요? 이 세력이 형체를 더 드러낼 때까지 기다려 보시겠습니까?
 
 (5) “반공은 참된 기독교적 가치를 위협하는 극복 대상의 낡은 사상?” 제게 공산주의 사상은 익숙합니다. 그러나 공산주의에 동조하거나 빠진 적은 없습니다. 바로 그 공산주의가 기독교를 부인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와 구원을 거절하기 때문입니다. 과연 사람을 신적 우상으로 만든 그 사상이 인권과 평화, 자유와 민주주의를 가져다 주었던가요?
 
 지적 실험은 어느 정도 가능합니다. 평화 시 평화 지대에서 말입니다. 사상 전장에서 실험조차 위험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그런 곳이었습니다. 이제 그 치열했던 사상전이 끝났다는 것이지요? 토사구팽하듯 반공을 삶아 먹어도 좋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면 달라야 합니다. 끝까지 순결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십자가에 매달려 평화, 인권, 민주주의, 사랑의 수단되셨고, 또한 살아남은 우리에게 그 십자가 사랑으로 목적되셨기 때문입니다.
 
 피끓는 20대의 두 젊은이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1848년 이미 말해 주었습니다.
 
 "하나의 유령이-공산주의라는 이름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공산당선언 서문]) 그리고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공산주의 혁명으로 프롤레타리아가 잃을 것은 쇠사슬밖에 없으며, 그들이 얻을 것은 전 세계이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창시자들이 밝힌 대로 공산주의는 유령입니다. 그 유령은 아직도 한반도에서 배회 중인가 봅니다. 깨어 기도하는 자, 성령 안에서 무시로 기도하는 자라면 능히 이 유령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해야 옳지 않을지요. 때가 악합니다. 우리 승리합시다!
 
 (계속- 3. 북한에 사회주의화된 기독교가 있다는 것은 허황된 믿음입니다.)
 
 김미영 세이지코리아대표(전 한동대교수)

전체 독자의견: 4 건
베트남전정보장교
한미에프디에이,제주해군기지등이용하여총선대선기선잡고 이대통령을탄핵시키고한미에프티에등반미폭동질을 한미단교수준으로 이끌어 한미관계를단교시키고기습적으로 미북괴간 수교하며미북괴간 에프티협정하여 고립시키려는 남북좌익 공동치졸한연합공작이다!

방북한 전대통령의한분은 정일에게 대한민국의 지 부귀영화를위해 한국의gdp삼분의일을주겟다고 망언을한 좌&대통령도 있었다!

작금의상황은 폭풍전야의고요함이다 그리스와같이자유월남같이 험한꼴당하기전에 정신바짝차려야하며 대통령은 나라와민족을위해 위수령을 발포할 시점을인식하고 심각히 검토해야만한다!

난꼼수난꼽살배후에대해 철저히 배후를 철저히조사해야만한다 국가지도자를빈정모독하는것과비키니인증샵음담패설욕설도저질도문제려니와 특급정보들이 어떻게입수하는지 의심갈때가맗다! 철저히조사해야만한다!

새누리당청와대전교조 이명박정부내에침투한 각계각층에침투한종북세력고정간첩을 분쇄척결해야만한다!

이러기위해서는국정원은즉각해체하고 이스라엘모사드수준의정보기관을 속히 설립해야만한다! ( (2012년 02월19일 12시53분)
우명희
글을 읽으면서 저도 상대주의에 빠져, 기도한적은 없는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악한 영이 그럴듯한 사랑, 인권, 용서, 배려, 포용이라는 단어로 아직 단단하지 않은 기독교인들에게 다가오면서 침투되어 분별력을 잃고, 선악을 구별하지 못한채 중언부언기도해온것같습니다. 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육신의 몸으로 하나님께 순종하신 우리 예수님을 마음에 새기고, 그러한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더욱 내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나를 구원하신 그 예수님만을 바라길 오늘도 기도하렵니다. 그렇게 기도하면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거하고, 내가 가지가 되어 포도나무인 주님께 단단히 붙어있을 줄 믿습니다.
김미영대표님 글 잘 읽었습니다.^^ (2012년 02월20일 10시06분)
남한 청년
한동대학교 졸업생입니다. 북한 및 근현대사에 대한 영적 통찰력 있는 강의를 들었던 그때가 그립습니다. 김미영 교수님의 이렇게 귀한 글을 접할 수 있음이 영광입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선구자이십니다. (2012년 02월21일 17시19분)
N
북한의 주민들을 해방시켜야 하는 이유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구원 그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

단순히 구원을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은혜로 받은 구원 행 티켓 한 장이면 ‘다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천국과 이 땅에서의 삶을 분리시키는 것, 믿음과 신앙생활을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이 시대에 가장 유효한 사단의 전략이다.

북한 주민들을 해방시켜야 하는 문제는 대한민국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구원 그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해답을 주는 중요한 문제이다.

은혜=믿음
사실 은혜와 믿음이 동의어라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일 것이다. 우리는 은혜로 구원받고 동시에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은혜는 하나님의 관점이고 믿음은 인간의 관점인 것이다.
은혜로 구원받은 인간은 이 땅에서 또한 믿음으로 그 구원을 이뤄가야 한다.

하나님 사랑=이웃사랑
하나님은 구원받은 각 사람에게 사명을 주셨고 이는 ‘나’아닌 누군가가 대신 할 수 없는 고유한 것이다. 이 사명은 각 사람의 1차적 부르심인 민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민족적 사명으로 긴밀하게 연결되고 민족적 사명은 다시 하나님의 세계 경영으로 긴밀하게 열결되어진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는 두 가지 계명을 지키는 것이 우리 사명의 핵심이다. 이 두 가지 계명은 분리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사랑해야 할 이웃은 이 땅에 있지 천국에 있지 않다. 하나님 사랑은 이웃 사랑을 통해 증명된다. 이것을 이 땅에서 증명해나가는 것이 구원 그 이후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각 개인의 삶에 사랑해야 할 이웃을 배치하신다. 물론 이들은 사랑하기 어려운 이들, 사랑하고 싶지 않은 이들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쉽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이웃 사랑을 확증하려 하실 때에는 우리가 사랑할 수 없는 이들을 우리에게 허락하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안에서 발견하시는 방법을 택하신다. 이들을 사랑으로 품어낼 때에 비로소 이웃사랑이 확증된다. 이웃사랑은 하나님의 계명이고 우리에게는 생으로 감당해야 할 사명이다.

민족적 사명
하나님의 세계 경영이라는 거대한 영적 통치와 질서 속에서 각 민족이 하나님의 파트너로, 하나님의 장자로, 동역자로, 기업을 이을 자로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다. 이웃사랑이라는 하나님의 계명은 민족적으로 감당해야 할 사명으로 주어졌다.
하나님이 대한민국에 허락하신 사랑의 대상은 ‘북한’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북한이라는 거대한 감옥에 억류되어 있는 ‘북한 주민’들이다. 오랫동안 상관없이 살아왔기에 이웃으로 여기고 싶지 않고, 이들을 이웃으로 두면 우리의 삶이 힘들어질 것만 같은 불편한 이웃 ‘북한 주민’. 이들을 북한이라는 강포와 억압과 압제에서 풀어주는 것이 이 민족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이 민족이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로 일어서는 핵심이 여기에 있다.

이 민족이 ‘하나님 사랑’을 확증할 바로미터가 바로 ‘북한’이다. 하나님은 이 민족의 사명을 아프리카의 어떤 종족이나, 인도나 미국이라는 나라가 대신 감당하도록 하지 않으신다. 이는 대한민국을 통해 이루시기 원하는 고유한 사명, 특별한 부르심이기 때문이다.

로버트 박이라는 미국인 선교사, 김정일리아라는 영화를 만들어 북한의 현실을 고발한 헤이킨 감독 등, 대한민국 밖에서 북한을 품는 이들이 있음을 보게 하시는 것은 우리를 일깨우려하심이다. 이 민족이 북한 주민들을 북한의 체제 가운데서 구해내는 일의 동역자들로 세우신 것이지 우리가 감당해야 할 사명이 이들에게 전가된 것은 아니다. 이들은 우리로 하여금 이 민족에게 주신 사명으로 들어오라고 부르시는 살아있는 초대장이다. 그래서도 안 되고 그럴 수도 없다. 이 민족의 ‘북한 주민 해방’이라는 사명을 감당할 주체는 우리 자신이며, 이 사명은 이 민족을 통해서만 완수된다.  

이 사명은 저절로 완수되지 않는다.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치열한 싸움이 필요하다. 외면하고 싶은 ‘북한 주민들’을 사랑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내면의 변화가 필요하다.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이 부어져야 한다.
믿음의 선한 싸움은 휴전될 수 없다. 그러나 북한의 주민들을 사랑하고 싶지 않은 마음과 싸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북한의 주민들을 해방하는 것이 우리의 소원이 되도록 하는 싸움은 지난 60년간 휴전되었다. 우리의 심령 가운데, 이 민족 가운데 구원의 기쁨을 회복하는 이 믿음의 선한 싸움은 우리의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싸움이다. 이 싸움에서 우리가 해야 할 몫은 오직 우리의 소원을 교정하는 것이다. 이 잃어버린 소원을 교정할 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부어지게 된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2:13)
다시 우리의 소원이 한반도의 복음 통일이 되어야 한다. 통일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갖고, 북한 체제에 대해 눈을 떠야 한다. 그래야 우리 안에 두신 하나님의 소원이 발견되고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이 민족이 쓰임받을 수 있는 것이다.

싸움과 기쁨은 양립한다.
이 민족이 감당해야 할 믿음의 선한 싸움은 ‘북한’으로 귀결된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고의 풍요를 경험하며, 최대치의 자유를 누리고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지속적인 불만족으로 살아가는 이유는 이 민족에게 주신 민족적 사명을 위해 싸우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의 주민들을 구하는 사명은 대한민국의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의 기쁨을 위한 싸움이다. 결국 누군가를 위해 나를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기쁨을 쟁취하기 위한 싸움인 것이다.  

우리는 풍요 속에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울 의지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하나님의 관심이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노력을 게을리 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중심을 향한 치열한 싸움을 멈췄다. 구원의 기쁨은 오직 믿음의 선한 싸움을 통해서만 누릴 수 있다. 이는 하나님의 방법이시다.

아이러니하지만 성경은 믿는 자들의 싸움과 구원의 기쁨이 양립한다고 말한다. 싸움 없이는 기쁨도, 영혼의 진정한 만족도 없다. 우리는 싸워야만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믿음의 싸움을 우리의 힘만으로 싸우도록 방치하지 않으신다. 이 싸움은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이루시는’ 싸움이다. “의롭다 하신 이들을 또한 영화롭게”(롬8:30)하기 원하시기 때문이다.

사명이 생명보다 귀하다
이 민족에게 주어진 ‘북한 해방’이라는 믿음의 선한 싸움은 대한민국에서 구원 그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원의 참 기쁨을 회복시켜 줄 것이다.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 구원을 이 땅에서 성취해 나가는 필수 과제이며, 이 민족이 직면해야 할 사명이다.

사명은 생명보다 귀하다. 믿는 자의 사명은 결코 생명과 분리될 수 없다. 사명은 생명으로 감당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사명을 생명으로 감당하는 것은 생명의 소멸을 의미하지 않음을 알 것이다. 이 민족이 북한 주민 해방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 그들을 사랑으로 자유케 하는 것은 우리의 생명과 분리 될 수 없다.
북한 주민들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 우리의 사명이면 우리의 생명은 북한 주민들의 생명과 분리될 수 없고, 이 민족의 구원의 기쁨이 결코 북한 주민 해방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과녁을 벗어나고 있다
죄를 뜻하는 단어 ‘하마르티아’는 과녁을 벗어난다는 의미이다. 하나님 중심에서 벗어나는 것이 ‘죄’라는 것이다. 최근 유물주의, 사회주의, 혼합주의가 교회 속으로 들어와 이 민족이 감당해야 할 사명의 핵심에서 벗어나도록 유도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는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의 자부심과 기쁨을 빼앗아가고 있다. 교회와 성도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구원 그 이후의 삶이 형편없이 망가지고 있는 것이다. 생명으로 감당해야 할 사명인데 우리의 생명이 헛되이 쓰일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이 민족이 사명을 감당하며 이 땅에서 구원의 기쁨을 회복하는 일이 방해되고 있다. 북한 주민을 해방하는 일의 시급성이 퇴색되고 있다. 북한 주민 사랑을 통해 하나님 사랑을 확증할 기회들을 잃어버리게 만들고 있다. (2012년 02월21일 20시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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