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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김일성은 이순신, 세종대왕 같은 위인”
역사를 위한 기록 : 소위 진보인사 문제발언록 (69)

 “(이명박 대통령은) 최고경영자(CEO) 출신으로서 실용주의를 표방한다고 생각한다. 이 대통령은 ‘보수 세력이 오히려 화끈하게 남북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북한을 경제적으로 더 도와 줄 수 있다는 확신에 차 있다...(북한영토를 거친 러시아 가스 도입 관련) 李대통령은 북한이 이 제안을 받아들일 것으로 보고 있는 것 같더라”(2009년 5월13일 서울신문 인터뷰)
 
 ※ 소위 ‘북한영토를 거친 러시아 가스 도입’은 2008년 9월 한국가스공사가 러시아 기업 가즈프롬과의 양해각서 체결을 통해 합의한 내용이다. 이 사업은 2015년 이후 러시아로부터 연간 750만t의 천연가스를 도입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최대의 자원외교 성과’라는 평가도 있지만 문제는 북한이었다. 2009년 5월13일 서울신문은 북한이 이를 통해 얻어갈 돈이 1억 5000만 달러(약 1900억 원),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을 합친 것보다 더 많다고 보도했다. 황석영은 이명박 대통령이 이 엄청난 액수를 북한에 지원할 것이라 장담했었다.
 
 “(몽골과 남북한, 중앙아시아의 문화 공동체인 알타이 문화연합을 언급하며) 오는 6월과 8월 문화계 인사들과 함께 몽골을 방문한 뒤 8~9월쯤 알타이 문화연합을 발족시켜 제주도에서 첫 포럼을 개최할 계획이다”(2009년 5월13일 서울신문 인터뷰)
 
 ※ 당시 서울신문은 또 “(黃씨가) 그러면서 앞으로 동북중앙아시아 연대→공동체→연합→연방 형태로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전한 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프랑스의 르 클레지오와 오르한 파묵, 북한의 소설가 황석준이 공동 참여하는 유라시아 문화인 평화열차 프로젝트도 구상하고 있음을 내비쳤다”고 보도했다.
 
 “저는 정치가도 아니고 무슨 뚜렷한 이념을 따르고 있는 사람도 아닌, 분단된 우리 한반도의 작가입니다.(…) 지금부터 우리네 조국 강산은 봄입니다. 봄꽃은 우리나라 남쪽 끝의 한라산에서부터 피어나기 시작하여 아무런 장애도 없이 휴전선 철조망을 넘어서 북의 백두산 기슭에 피어납니다. 저와 저의 동료들과 민중들은 우리나라의 산야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여린 풀꽃들을 눈물이 나도록 사랑합니다. 바로 저들의 재생력이야말로 이 무렵이면 우리 국토를 뒤덮는 외국군의 탱크와 미사일을 이겨낼 위대한 힘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1989년 4월 밀입북 직전 성명 ‘북을 방문하는 나의 입장에 대하여’)
 
 ※ 황석영은 89년~91년간 다섯 차례 密入北(밀입북)하고, 일곱 차례 김일성을 親見(친견)한 뒤, 북한으로부터 25만 달러를 받았다. 密入北 이후 4년간 해외 망명생활을 하며 북한기행문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를 국내에서 출간했다. 黃씨는 1993년 4월27일 귀국 후 구속, 1998년 3월 대통령 특사로 풀려났다..
 
 “김일성은 을지문덕, 이순신, 세종대왕과 같은 위인.(…)그(김일성)는 어쨌든 사상의 차이는 도외시하더라도 두 번이나 세계 최강의 外勢(외세)와 맞서 싸웠습니다. 나는 그가 어떤 의미에서는 大國(대국)인 중국혁명의 지도자 모택동보다도 훌륭한 점이 있으며 베트남의 호지명에 절대로 뒤지는 인물이 아닌 제3세계적 革命家(혁명가)라고 생각합니다...이제 그는 올해로 만 80세를 넘겼습니다. 94년이 동학 백 년이 되는 셈인데 반외세 자주화 투쟁의 현대사 속에서 그는 어쨌든 역사와 더불어 살아온 셈입니다. 필자는 그가 우리 민족의 唯一無二(유일무이)한 위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우리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민중이 소박하게 떠올렸던 여러 위인들 을지문덕, 이순신, 세종대왕, 이율곡, 정약용, 전봉준, 김구 등등처럼 위인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요. 나는 링컨이나 워싱턴은 그렇다 치더라도 심지어는 록펠러 카네기까지 위인으로 취급하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1992년 ‘노둣돌’ 창간호 인터뷰, 이 글은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는 책에도 실려 있다.)
 
 ※ 김일성은 소련의 꼭두각시로서 북한의 지배자가 된 자이다. 북한의 憲法(헌법)과 國號(국호) 역시 스탈린이 지어준 것이고, 6·25 南侵(남침) 작전계획도 소련 군대가 작성해줬다. 스탈린의 힘을 빌려 동족을 치는 전쟁을 벌이고 한반도를 국제전쟁터로 만든 것이 바로 김일성이다. 철수했던 미군을 다시 불러들인 자도 김일성이다.
 
 중공군도 김일성이 불러들였다. 중국 만주 쪽인 단동에 抗美援朝(항미원조) 전쟁기념관이라는 곳이 있다. 거기는 1950년에 김일성과 박헌영이 모택동에게 보낸 자필 편지가 전시돼 있다. 김일성이 편지를 썼을 때는 인천상륙작전으로 북한군이 도망가던 시점이다. 편지 원문은 이렇다.
 
 “우리의 자체의 힘으로서는 이 위기를 극복할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신(당신은 모택동입니다)의 특별한 원조를 요구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됩니다. 즉 적군이 38도선 이북을 침공하게 될 때에는 약속(約束)한 바와 같이 중국인민군의 직접 출동이 절대로 필요하게 됩니다. 이상과 같은 우리의 의견을 당신에게 제의하게 되니 이에 대한 당신의 회답을 우리는 기다립니다.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김일성-박헌영. 1950년 10월1일 평양시.”
 
 편지는 유엔군이 쳐들어오니 중국 인민해방군을 보내달라는 뜻이다. 여기에 보면 『약속한 바와 같이』라고 돼 있다. 즉 모택동이 인민군을 보내서 김일성을 돕기로 약속을 미리 했다는 뜻이다.
 
 김일성은 6·25 직전 스탈린 지시를 따라서 모택동을 만났다. 여기서 모택동은 미군이 개입을 하면 중공군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한다. 이 약속에 따라서 김일성-박헌영은 모택동에게 “약속한 바와 같이 중공군을 보내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이 부탁을 받은 모택동은 10월19일 인민해방군을 抗美援朝軍(항미원조군), 지원군으로 위장을 하여 압록강을 건너게 한다.
 
 김일성은 6.25당시 두 번의 민족반역 행위를 저질렀다. 전쟁을 일으킬 때 스탈린-모택동의 도움을 받았고 북진 시 중공군을 끌어들여 통일을 저지했다. 이때 중공군이 들어오지 않았으면 대한민국은 1950년 10월 말 통일이 됐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300만 명의 인명이 살상됐다. 김일성은 300만 명을 전쟁으로 몰아 죽게 만든 한민족 역사상 최악의 反(반)민족 악당이었다.
 
 김일성은 6·25 이전에도 10월 대구폭동, 조선정판사 위폐사건, 여순반란사건, 제주4·3사태 등의 背後(배후)였다. 이는 소련 스티코프 대장 문서 등에 밝혀진 사실이다. 김일성은 미군 포로는 다 돌려주면서 수만 명에 달하는 국군포로는 돌려보내지 않았다. 이민족보다 동족을 더 핍박했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박정희,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목숨을 노린 테러를 여러 차례 했다. 서울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1968년 1.21 청와대 습격사건, 1974년 8.15 陸英修(육영수) 암살사건, 1983년 10.9 아웅산 테러, 그리고 1987년 11월29일 KAL기 폭파사건이 있다. 그 아들 김정일은 체제유지를 위해 300만 명에 달하는 주민들을 아사시켰다.
  
김성욱의 전체기사  
2010년 10월14일 08시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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