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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우리의 산성이심을 믿습니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시련 앞에서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이해(理解), 바로 우리의 이성으로 납득한다는 것인데요. 이성적으로 납득이 안 되는 것이죠. 특히 기독교인, 무엇보다 신앙 좋은 이들이 겪는 어려움 또는 우리 자신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다가 맞닥뜨린 어려움 앞에선 고개가 갸우뚱해질 때도 많습니다.


적어도 남들 보다 많은 복을 바라진 않아도, 기독교적으로 착하게 살다 보면 저주가 피해갈 것이라 여겼는데, 황당한 곤욕 또는 감당키 어려운 고통을 겪어야 할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죄 없이 십자가에 달리셨고, 선지자는 물론 사도들도 인간적인 눈으로만 보면 고생만 하다 억울한 죽임을 당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다”고까지 고백했죠.


우리로선 괴로운 일입니다만, 주님은 그리스도인들도 이 같은 시련, 환란, 고난을 피해갈 수 없는 것임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즉 신앙이 좋다고 시련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말씀은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딤후 3:12)”고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히브리서 12장6절에는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고 돼 있습니다.


사랑하시기에 오히려 징계하시고, 받아들이시는 자녀들이기에 채찍질하십니다! 소름 돋는 이야기입니다. 행복하기 위해, 축복받기 위해, 형통하기 위해 교회를 찾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론 그렇지 않을 때도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렇습니까? 말씀은 단언합니다.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히 12:5-8)”


생각해 보십시오. 놀이터에서 우리 자녀가 말려도, 말려도 계속 위험한 장난을 친다면, 혼을 냅니다. 그러나 우리 아이가 아니면 혼을 낼 수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자신의 자녀로 보기에 때로는 혼을 내십시다. 이 시련, 환란, 고난은 아이가 혼나듯 뭔가 구체적으로 잘못한 것이 있어서 인과응보(因果應報)식으로 당한다는 것만은 아닙니다. 사도들도, 선지자도 잘못해서 고생했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좀 더 크고 확고한, 확실한 목적이 있어서 매를 드십니다. 사생자가 아닌 친아들이기에 징계를 당한다고 기록한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전합니다.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히 12:10-11)"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는 것!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의의 평강한 열매와 그의 거룩하심의 참여하는 것은 실은 같은 말입니다. 우리의 죄성이 죽어진 거룩한 상태, 의의 상태, 평강한 상태, 머릿속에 하릴 없이 스쳐가는 두려움, 불안감, 미움, 증오, 분노, 열 받음, 짜증, 음란 그리고 말씀에 대한 의심이 사라진 평화. 그때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믿을 수 있게 됩니다.


“사형선고를 당한 줄 알았다”고 고백한 사도 바울은 고난의 목적이 바로 여기 있다고 단정해서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1장9절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고후 1:9)”. 그렇습니다. 믿는 자가 특히 기도하는 사람들이 겪는 불시험, 이것은 주님이 주시는 것이며 확고한 목적이 있으며 분명한 목표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입니다.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 이것은 무엇입니까? 저는 고통을 겪을 때마다 또는 느낄 때마다 이 말씀을 묵상해 봅니다. 우리가 의지할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이 원초적 질문에 대한 명쾌한 대답이 여기 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십니다. 성경 속의 말씀이 곧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은 영혼과 육체로 돼 있는 존재입니다. 육체는 음식을 먹어야 살지만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면 살 수 없습니다. 말씀이 기갈된 영혼은 살고 싶어 수많은 인본주의 모조품을 만들어 왔습니다. 그러나 그 안의 영혼은 언제나 굶주리고 목말라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말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마 4:4)”


인간은 떡으로만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으로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만이 우리의 영혼을, 좀 더 정확히 말해 우리의 영을 살려냅니다. 다른 것으로는 부와 번영, 권세, 백사장이 깔린 화려한 리조트에서 감미로운 음악을 들으며 좋아하는 사람들과 시종들의 마사지를 받으면서 걱정 없이 릴렉스한다고 우리의 영이 살 수 없습니다.


그런 떼 부자들, 권력자들 마음속에도 걱정, 근심, 불안, 수치, 두려움이 있습니다. 행복해 보여도 예수가 없다면 진정한 행복은 없습니다. 우리의 영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으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헌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친자녀들도 이 말씀을, 율법을, 언약을, 약속을 완전하게 믿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의 친자녀들이 이 말씀만을 믿도록 사탄의 공격을 허락하십니다.


때로는 더럽고 추하고 악한 영들이, 추잡하고 비열하고 악랄하게 자신의 친자녀들을 짓밟도록 놔두신다는 것입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물어보십니다. ‘너는 나를 믿느냐?’ 주님을 믿으십니까?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시편 18:2)” 이 말씀을 믿으십니까?


주님은 또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마 21:22)” 하나님. 저희가 주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산성이시요 나의 하나님은 나의 피할 반석이심을 믿습니다. 의인을 핍박하는 악인들의 죄악을 그들에게 돌리시며 그들의 악으로 인하여 그들을 끊으실 것을 믿습니다.(시94:22-23) 의인의 구원은 오직 여호와께 있음을 믿습니다. 주님이 환난 때에 저희 산성이심을 믿습니다.(시편 37:39)


우리는 아직도 타락한 겉 사람, 부패한 자아, 이 가짜 내가 있습니다. 그래서 끝없이 주님의 말씀을 의심합니다. 그래서 베드로처럼 물속에 빠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끝임 없이 하나님 자체인 말씀을 읊조립니다. “주의 입의 모든 규례를 나의 입술로 선포(시편 119:13)”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또 다시 의심이 들어 물속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기도도 잘 안 됩니다. 헌데 기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 성경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헌데 사탄의 공격이 너무 거세지면 하나님이, 말씀들이 잘 안 믿어집니다. 걱정, 근심, 염려,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것이 타락하고 부패한 인간의 민낯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을 하루 종일 하가(중얼중얼거림)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오고 가장 강력한 들음은 우리의 입술로 말씀을 읊조릴 때이기 때문입니다.


짜증나도 말씀을 중얼거리고, 화나도 말씀을 중얼거리고, 두려워도 말씀을 중얼거리고, 겁이 나도 말씀을 중얼거리고, 억울해도 말씀을 중얼거리고, 기뻐도 말씀을 중얼거리고, 즐거워도 말씀을 중얼거립니다. 그렇게 살았던 사람이 다윗입니다. 그래서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합니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성경 66권 말씀들이 믿어집니다. 기도할 때도 여호와가 나의 산성이시라는 믿음이 쾅하고 들어옵니다. 그때 봄 눈 녹듯 어둠의 공격은 기적처럼 사라집니다.


하나님. 여호와는 나의 산성이시요 나의 하나님은 나의 피할 반석이심을 믿습니다. 의인을 핍박하는 악인들의 죄악을 그들에게 돌리시며 그들의 악으로 인하여 그들을 끊으실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 목적이 있는 시험 앞에 하나님을 믿음으로 승리하는 믿음의 세대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저희로 그렇게 승리하게 하옵소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마가 11:23).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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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3월15일 11시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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