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 조직과 인력 축소 문제를 놓고 인권위와 행정안전부가 5개월째 벌이고 있는 공방이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최근에는 일부 시민단체들이 인권위의 전위(前衛)로 나서 행안부를 공격하는 모습마저 보이고 있다.

지난 25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후문에서는 시민단체 회원 수십명이 “이달곤(李達坤) 행안부 장관을 만나야겠다”며 진입을 시도하다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다. 전날 밤 그 자리에서 시민단체 회원 2명이 정부의 ‘인권위 축소’ 방침에 항의하는 밤샘농성을 벌이려다 경찰에 연행된 데 대해 항의하겠다는 것이다.

시민단체들의 반발이 격화된 것은 행안부가 지난 23일 인권위 정원을 208명에서 164명으로 44명(21.2%) 줄이는 직제 개정안을 최종 확정하고 오는 31일 국무회의에 상정하기로 한 데 따른 것이다.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면 인권위도 이를 따라야 하므로, 인권위를 ‘지키려는’ 시민단체들 활동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인권위 조직개편 논란은 작년 10월 감사원이 “인권위 조직을 감축해 효율성을 높이라”는 감사 결과를 내놓으면서 본격화됐다. 이후 인권위가 “정원을 한명도 줄일 수 없다”고 맞서자 행안부가 정원 49% 감축안, 30% 감축안을 차례로 내놓다가 이번에 최종안을 내놓고 국무회의 상정 일정까지 잡은 것이다.

이 논란의 가장 큰 핵심은 인권위 조직 개편 권한이 행안부에 있냐는 것이다. 인권위는 국가인권위원회법 3조 2항 ‘위원회는 권한에 속하는 업무를 독립하여 수행한다’는 점을 근거로 “우리는 입법·사법·행정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기관이므로 행안부가 조직 감축을 요구하는 것은 독립성 침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위 법 조항대로 보더라도 ‘업무’를 독립적으로 수행하라는 것이지, ‘예산·인사·조직 관리 기능’까지 독립적으로 하라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이 법 18조는 ‘위원회의 조직에 관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하고, 운영에 관한 사항은 위원회 규칙으로 정한다’고 돼 있다.

조직 관련 사항을 대통령령으로 정한다는 것은 행정부 조직을 관리하는 행안부에 조직개편 권한이 있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 중앙선관위, 감사원 등은 조직 관련 사항까지 자체 규칙으로 정하게 돼 있는 ‘진짜 독립적 헌법기관’이지만, 인권위의 지위는 그렇지 않다.

하지만 행안부에 이런 법리적 권한이 있다 하더라도, ‘5명 중 1명을 잘라내라’고 하는 요구는 다소 과격하다. 이명박 정부 출범 원년이던 작년, 행안부는 정부 구조조정을 한다며 15만명의 중앙 정부부처 공무원 중 3427명, 30여만명의 지방공무원 중 1만여명의 정원을 줄이도록 했다. 기관별로 평균 2~3%씩 정원을 줄인 것이다. 이런 타 부처 사례와 비교하면 인권위로서는 ‘큰 차별’로 느낄 만하다.

행안부는 “인권위가 일반 공무원과 시민단체 출신 인사를 반반씩 채용해 조직을 방만하게 구성했다”는 지적도 한다. 그렇다면 행안부가 이런 문제를 인권위 출범 이후 작년 초까지 6년간 한번도 지적하지 않은 점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행안부의 직무유기라 볼 수 있다. 이러니 “인권위가 ‘광우병 촛불집회’ 등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현 정부와 ‘다른 소리’를 내온 데 대해 정부가 손보려는 것”이란 비판과 반발이 나오는 것이다.

마치 해방구나 시민단체인 양 정부의 정당한 조직개편 요구를 묵살하는 인권위 태도도 옳지 않지만, 정권 교체 전후 태도가 이처럼 180도 다른 행안부의 행동에도 무리는 있다. 정부 기관들답게 모든 문제를 순리대로 풀어주길 바란다.

출처: 조선일보 박중현 사회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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