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3:17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기를 마칠 때까지 모든 이스라엘은 그 마른 땅으로 건너갔더라
위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수백 년 전에 아브라함을 통해서 약속받았던 가나안 땅을 요단강을 건너서 밟게 되는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 요단강을 건너는 순간의 감격이 얼마나 크고 중요한지 30년의 기록을 24개의 장에 기록하고 있는 여호수아서 중에서 두 개의 장에 이 사건의 기록을 할애하고 있다.
수 3:17에는 구약성경의 기록 언어인 히브리어로 봐야지 알 수 있는 사실이 있다. 3:17절 마지막 부분 “... 모든 이스라엘은 그 마른 땅으로 건너갔더라”를 히브리어 성경으로 보면 ‘이스라엘’이 아니라 ‘백성’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수 3:17절 이전에 ‘백성’이라고 표기한 히브리어 단어와 수 3:17절 이후에 ‘백성’이라고 표기한 히브리어 단어는 다르다. 요단강 건너기 전에 사용된 백성은 ‘암’이라는 단어인데 뚜렷이 구분되지 않는 백성을 칭하는 일반적인 단어라면, 요단강 건넌 후에 사용된 백성은 ‘고이’라는 단어인데 동일한 배경, 독립적인 정치체제, 공통적인 종교구조, 특정한 지역에 연관된 영토 등을 통해 뚜렷이 구분되는 민족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요단강을 건너면서,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를 배회했던 별 볼일 없던 ‘무리’에서 특정한 지역에 거하는 ‘민족’과 ‘국가’로 태어난 것이다. 그들은 요단강을 건너는 순간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대한민국은 1948년 5월 31일 제헌 국회에서 ‘아시아 최초의 기독교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꿈을 안고 죄악과 고통의 과거와 단절하고 거룩하게 시작되었다. 마치 이스라엘이 노예로 고통 속에 있었던 이집트를 탈출하면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 것과 비슷하다. 1948년 이후 한 민족은 남북으로 나눠져서 전혀 다른 체제 아래에서 60년 넘게 달려왔다. 그 결과 남한은 많은 부분에서 세계 10위권에 랭크되는 반면 북한은 각종 오명의 1위를 거머쥐게 되었다. 이게 체제만의 문제였을까? 우리는 체제 차이 이상의 이유가 있다는 걸을 알고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된 기독교회 때문이다.
북한은 기독교와 교회를 박해하면서 김일성을 신으로 섬기는 신정정권이 되었고, 한국은 신앙과 예배의 자유가 있고 인구의 20%가 기독교이며 세계 선교 2위 국가가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대한민국의 2012년 현재 모습은 1945년 해방직후 국가체제 선택으로 혼란스러웠던 해방공간의 상황과 비슷해졌다. 대한민국을 적(敵)으로 여기고 사회주의로 체제로 혁명하고자 하는 반(反)대한민국 세력들이 정치영역을 비롯하여 각 영역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
요단강을 건너면서 떠돌이 ‘무리’에서 하나의 ‘민족’와 하나의 ‘국가’로 건설(nation building)를 완성하기 직전에 이스라엘에게는 큰 위기가 있었다. 그 사건이 민수기 25장의 바알브올 사건이다. 이 사건이 일어난 배경에는 모압왕 발락과 술사 발람이 있었다. 이스라엘이 40년 광야생활을 마칠 무렵 가나안 땅을 마주보고 모압 평지에 진을 치고 있었을 때, 모압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가 많은 것을 보고 겁을 먹었다. 발락은 ‘전쟁’을 하는 대신 ‘평화롭게’ 이스라엘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발람이라는 이방인 술사를 불러 이스라엘을 세 번 저주하도록 시켰다. 그런데 발람은 하나님의 개입으로 저주는커녕 이스라엘을 세 번이나 축복했다.
발람은 이스라엘이 강한 이유가 그들의 많은 수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음을 간파하고,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를 끊는 것이 바로 이스라엘 멸망의 지름길인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발람은 발락에게 귀띔해 주기를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고 행음하게 하도록 방향을 주었다(계 2:14). 그래서 민수기 25장의 바알브올 사건이 일어났다.
약속의 땅인 가나안 직전에 일어난 이스라엘이 소멸될 수도 있는 최대 위기의 순간이었다. 발람의 모략으로 이스라엘은 모압 여자들과 음행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신들에게 절을 하면서 영적 음행도 함께 하였다(민 25:2-3). 이로 인해 당연히 하나님은 진노하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령들을 잡아 여호와 앞에 매어 달고 바알 브올에게 가담한 자들을 죽일 것을 명령하셨으며, 염병으로 백성들을 치셨다(민 25:4-9). 이러는 중에 또 하나의 사건이 나오는데, 민 25:6-8절에 기록되어 있다.
민 25:6-8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회막 문에서 울 때에 이스라엘 자손 한 사람이 모세와 온 회중의 눈앞에 미디안의 한 여인을 데리고 그의 형제에게로 온지라 /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보고 회중 가운데에서 일어나 손에 창을 들고 / 그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그의 막사에 들어가 이스라엘 남자와 그 여인의 배를 꿰뚫어서 두 사람을 죽이니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그쳤더라
염병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죽어나가기 시작하는데,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비느하스의 질투심으로 인해 하나님은 분노를 돌이켰다고 말씀하셨다(민 25:11). 비느하스가 없었다면 이스라엘은 전멸할 수도 있었던 위기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 결과로 비느하스는 약속을 받게 되었다.
민 25:12-13 그러므로 말하라 내가 그에게 내 평화의 언약을 주리니 / 그와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라 그가 그의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음이니라
이 말씀에서 재미있는 것은 비느하스는 창을 휘둘렀는데, 하나님은 그에게 ‘평화의 언약’을 선포하셨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참된 평화’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죄악을 용납하지 않고 죄악에 대항하여 싸우는 것이 ‘평화’를 선포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평화’는 이웃에게 죄악을 행하는 사람을 그냥 봐주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다. ‘평화’는 죄악과 타협하지 않고 죄악을 행하는 사람을 강력하게 저지하고 퇴출시키면서 이룰 수 있다. 물론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하면서 영혼이 최대한 다치지 않게 해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죄악을 강력하게 거절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이웃에게 죄악을 저지르는 사람을 절대 무조건적으로 용납해서도 안 된다.
특히 비느하스가 죄악을 용납할 수 없는 정의로운 마음으로 악을 행하는 자를 죽였을 때, 하나님은 그 행동이 이스라엘을 ‘속죄’했다고 인정하셨다. 속죄하는 제사의 규례로 예배를 드리는 것뿐만 아니라 죄악에 대항하는 싸움과 죄를 행하는 자를 용납하지 않는 결단도 속죄의 제사 즉 예배가 된다고 하신 것이다. 비느하스 덕분에 이스라엘은 소멸되지 않는 은혜를 받게 되었다.
김일성을 태양신으로 숭배하는 주체사상이 한국의 모든 영역으로 침투하고 있다. 정치영역부터 시작하여 사법영역, 경제영역, 교육영역, 언론문화영역, 종교영역 등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2007년 대선에서 친북 대통령이 당선되지 않자, 김정일은 2008년 2월에 남한의 친북단체들을 총괄하는 통일전선부 부장에게 책임을 물어 총살했다. 그리고 ‘북한과 베트남은 적화가 되는데, 왜 남한은 안 되는가? 남한은 교회 때문이다. 교세를 1/10으로 줄이면 (적화)통일이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김정일은 한국이 적화되지 않은 이유가 하나님께 있음을 간파하고, 한국교회와 하나님의 관계를 끊는 것이 바로 한국 적화의 지름길인 것을 발견한 것이다.
주체사상의 한국교회를 향한 침투는 누구든 알아보기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뱀이 첫 인류에게 죄를 짓도록 접근할 때 선악과가 먹음직하게 보암직하게 만들었다. 바알브올 사건도 40년 동안 처음으로 문명이라는 것을 보게 된 이스라엘 앞에 펼쳐진 보암직한 이교도 축제와 성적 판타지가 있었다. 지금 주체사상은 한국교회로 보암직하도록 아름답게 다가와서 북한 문제와 통일 문제에 대해서 선악의 분별력을 잃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교회를 무너뜨리는 세력들은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서 탈북자 기독교인들을 내세우기도 한다. 이들은 북한 정권의 악을 비판하지 않고 한국과 한국교회를 맘몬을 따라갔다고 비판한다. 원수를 사랑하라, 주린 자를 먹이라, 평화, 사랑, 연합 등의 기독교적 단어와 그럴듯한 표현을 내세워서 일반 기독교 대중들 사이로 스며들고 있다. 김일성도 주민들을 먹여 살리려고 했던 선한 사람이라고도 설교하고, 김일성을 찬양할 수 있는 자유를 주자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간접적인 표현으로 둘러서 설교하기도 한다.
우리와 김일성 김정일은 다를 바 없는 똑같은 죄인이니까 우리가 그들을 정죄할 수 없다고도 한다. 그러면서 북한 정권의 악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북한 주민들의 살육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는다. 북한 정권은 방북한 교포교회 목사들의 호텔방으로 반라의 여자들을 넣어줘서 육적으로 영적으로 음란하게 만들어 흠을 잡아서 그 교회 성도가 간접적으로 북한 우상정권을 섬기도록 만든다. 이러한 세력들은 한국의 기독교회 안으로도 침투하여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막시스트 신자들을 생산해 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보수적인 교회로 들어와서 북한 문제에 대해서 영적인 분별력을 상실하게 하여 김일성 우상을 간접적으로 숭배하도록 만들고 있다.
2012년, 한국은 국가 건설(nation building)의 최종 지점에 와 있다.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는 순간 별 볼 일 없는 무리에서 하나의 민족과 국가가 되는 것과 같다. 요단강을 건너는 순간 이스라엘은 과거에서 미래로 간다. 대한민국은 ‘자유 통일’이라는 요단강을 건너는 순간, 악의 북한 정권은 끝나게 되고 더 이상 체제 갈등으로 소모전을 할 필요가 없는 안정된 국가가 완성되며, 북한 주민에게 이동과 여행의 자유뿐만 아니라 신앙과 예배의 자유가 주어지게 된다.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자 눈앞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 펼쳐진 것과 같이, 월남특수와 중동특수에 이은 북한특수라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통일한국 앞에 펼쳐진다. 그리고 통일한국은 선교대국이 되어서 대륙으로 해양으로 복음을 수출하는 제사장 나라가 된다.
약속의 땅을 밟기 바로 전 바알브올 사건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최대 위기였던 것처럼 한국의 최대 위기의 순간은 지금이다. 북한 문제와 통일 문제에 대해 한국교회는 이기심으로 무관심하거나 아니면 김일성 우상과 결합하는 영적 음행에 빠른 속도로 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다시 말하면 한국은 ‘자유통일’이라는 요단강을 건너기 직전에 와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 시대에는 비느하스와 같이 하나님의 질투심으로 우리 민족을 심판에서 구해낼 새로운 세대들이 일어나야 한다. 그들은 평화를 너무 사랑하는 자들이어서 죄와 싸우고 죄를 행하는 자와 싸우는 자들이다. 이런 자들이 과거에 여호수아의 리더십 아래에서 요단강의 마른 땅을 밟으며 드디어 떠돌이에서 이스라엘 국가로 거듭나게 한 주역들이었다.
이 시대는 하나님과 언약 아래 놓인 대한민국이 더 이상 혼란에서 방황하지 않고 확고한 기독교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진입하는 초입에 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비롯한 이 시대 비느하스와 같은 새로운 세대들을 부르고 계시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죄악과 타협하지 않고 죄악을 행하는 사람을 강력하게 저지하면서 평화를 이루는 사람을 찾으신다. 이런 자들로 인해 대한민국과 한국교회는 속죄되고 소멸되지 않고 영원한 하나님의 언약으로 들어갈 것이다. 우리가 먼저 이러한 새로운 세대들로 세워지고, 또 이러한 새로운 세대들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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