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패왕(楚覇王) 념(念)한 후에 책(冊) 속에서 구했더니

근원만물(根源萬物) 상서(祥瑞)로워 조물주(造物主)에 읍(揖)하도다

은자(隱者)도 낚싯대에 빈 잔만을 기울이니

두어라 사해만방(四海萬方)에 제세현(濟世賢)이 없으랴

* 초패왕을 념하다 : 초패왕은 오랜 놀이인 장기의 배경이 된 초나라와 한나라의 대결에서 초나라의 왕이었던 항우(項羽)를 의미한다. 항우는 흔히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라 하여 산을 뽑아들 힘과 기개를 가졌다고 전해진다.

한때 중국의 패권을 쥐기도 하였으나 사람을 믿지 못한 이유로 비극적 죽음을 맞이하였다. 바람직한 행동만 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 일생은 가히 영웅의 것이라고 할 만 하다. 그를 생각한다는 것은 자신의 이상을 위해 싸웠던 영웅의 기개와 담대함을 기린다는 의미이다.

* 책 속에서 구했더니 근원과 만물이 상서롭다. 이로 인하여 조물주를 향해 예를 행하다 :　책은 오랜 시간동안 지식의 보고로 상징되어 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권위 있는 책은 성경이다. 이 시구에서의 책 또한 성경을 의미한다. Bible이라는 단어 자체가 책이라는 의미를 지니며 The book이라고 표현하여도 성경이라는 뜻이 된다는 점에서 착안한 표현이다.

성경은 태초의 일을 다룸으로써 세상의 근원과 만물의 형성, 그리고 세상이 어떠한 섭리에 의하여 주관되어지는지를 기록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마침내 다가올 마지막 심판과 그 이후에 세워질 하나님 나라로 향하는 이 세상의 것들은 상서로울 수밖에 없다. 또한 성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면 놀라우리만큼 정교한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경외심을 가지고 경배드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은자도 낚싯대에 빈 잔만을 기울이다 : 강호한정에 대하여 노래하던 우리의 옛 시조와 가사 등에서는 은자는 숨은 현인을 의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성경을 통해 자신의 부족함과 작음을 알고 하나님께 경배하는 사람은 더욱 자신을 낮추게 되는데, 이러한 의미에서 진정으로 자신보다 높은 사람들이 가벼이 뽐내거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주어진 일에 충실하며 묵묵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한 것이다.

낚싯대란 그러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솔직한 삶의 수단이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그들의 잔이 비어있다는 것이다. 이는 일부러 잔에 술을 채우지 않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즉, 현 상황에서 술에 취하지 않고 깨어있는 채로 때를 기다리는 사람들인 것이다.

* 두어라 사해만방에 제세현이 없으랴 : 보통은 속세에 대한 미련을 버리겠다는 의미로 해석되지만 문맥상 여기서는 자신 또한 위에서의 은자들과 같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하겠다는 뜻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 넓은 세상에서 제세현이 자신이 아닐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그 일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개인은 자기의 맡은 몫을 해내면 충분하다는 깨달음이 암시되어 있는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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