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16일 金壽煥(金壽煥) 추기경 선종(善終) 이후 한국은 추모 열풍에 휩싸여 있다. 미디어 보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金추기경 선종 기사는 지면과 화면을 도배해 버렸다. 말 그대로 「홍수 상태」이다.

金추기경 추모 열기는, 존경할만한 어른이 실종(?)된 한국사회에서 자연스러운 분위기일 수 있다. 그만큼 金추기경은 종교를 초월해 많은 국민이 따를만한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였다. 사후(死後) 장기기증은 감동이 사라진 시대, 도덕적 귀감이 되기에 충분한 사건이다.

金추기경 추앙의 또 다른 이유는 유신(維新)정권에 항거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극좌매체에서 보수매체에 이르기까지 가장 큰 포커스를 둔 것이 이 부분이다. 실제 金추기경은 중남미 일부 주교들처럼 권위주의 정권의 인권침해에 정면으로 맞서 싸웠다. 70년대 주교회의가 소위 순응주의파와 反유신으로 양분돼 있었을 때, 그는 反유신 그룹을 중심으로 명동성당 시국미사를 이끌었다. 그리고 이를 주도적 정치흐름으로 대세화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金추기경이 다양한 시각을 가진 국민들로부터 공통된 추모의 대상이 된 진정한 이유는 그의 「유연함」이었다.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않는」 영적(靈的) 균형감각이었다. 그는 民主化를 지향하면서도 극좌(極左) 흐름을 경계하는 「2중의 시대적 고민」을 품고 있었다.

「민주화는 좋다, 그러나 극좌는 안 된다.」 金壽煥 추기경의 고민은 1980년대 후반 이후 그대로 적중했다. 사회주의-공산주의 세력이 민주화 세력의 외피를 걸친 채 온 나라를 깽판치기 시작했다.

한국의 민주화 세력이 金正日 정권의 주장(主張)에 동조하는 친북세력으로 변질되면서, 金壽煥 추기경은 용도폐기 대상이 되었다. 이들은 金추기경의 日本軍 복무 경력과 국가보안법 유지 발언을 계기로 정치적 매장에 나섰다. 극렬혁명분자들에게 추기경은 단지 혁명의 소도구에 불과했던 것이다.

金추기경과 70년대 민주화 투쟁의 행보를 같이 했던 언론인 柳根一은 金추기경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다.

『그는 세속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자, 신학적으로는 온정적(기독교적) 약자 사랑, 김정일 세상도 유신 헌법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성적, 윤리적 규범론자, 성직자이면서도 관료신학적 도그마에 사로잡히기를 거부한 「복음성경」의 신봉자, 그리고 청년 예수의 정신을 견지한 만년 수련자이셨다. 그리고 그 예수적 정신은 스탈린과 그 아류들, 히틀러와 그 아류들, 중남미 독재자들과 마오쩌뚱, 및 그 아류들 대한 거부로 집약될 수 있다.』

한국의 극좌매체들은 金추기경에 대한 폄하로 일관하다, 국민적 추모 열기 속에서 어색한 칭송에 나서고 있다.

金추기경의 보수적 언동에 집중해 온 보수매체들은 이에 질세라 며칠 동안 지면을 털어 「金壽煥 특집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그러나 극좌세력에서 보수세력에 이르기까지 金추기경이 견지해 온 특유의 「영적 균형감각」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고 있다. 모두들 자신들 입맛에 맞게 고인(故人)의 행적을 조합하고 있는 모양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