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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미국 독립기념일에 즈음해 4일 스커드급(級) 탄도미사일 7발을 무더기로 발사했다.
정부 소식통은 5일 “북한이 이번에 발사한 미사일은 이미 알려진 스커드C(사정거리 500㎞) 미사일 2발, 노동(사정거리 1300㎞) 미사일 2발 외에 국내에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던 스커드-ER(Extended Range) 3발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사정거리 1000㎞의 신형 스커드-ER은 기존 스커드미사일의 사정거리를 늘리고 정확도도 높여 특히 일본에 위협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스커드-ER 및 노동 미사일 5발은 발사 지점인 강원도 안변군 깃대령 발사대에서 420여㎞ 떨어진 같은 수역에 낙하, 정확도가 과거에 비해 향상된 것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해 이번 미사일 발사는 예전의 도발 사례와 비교할 때 “맥락도 없고 메시지도 불분명해 보인다”(안보부서 당국자)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독립기념일을 D데이로 선택한 것이 미국의 관심을 끌기 위한 의도였다면, 미국을 사정거리에 두는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해야 하는데 정작 북한이 내놓은 ‘상품’은 중·단거리 미사일이었다. “백악관과 국무부가 24시간이 넘도록 공식 반응이 없는 것 자체가 작전 실패를 말해주는 것”(김희상 한국안보문제연구소 이사장)이란 관측이다.
과거 북한은 정치·외교적으로 적절한 시기에 핵과 미사일 도발을 감행해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곤 했다. 두드러진 예가 2006년 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4일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한 데 이어 10월에 1차 핵실험 단추를 눌러 미국을 핵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정부 핵심당국자는 “2006년에는 장거리·중거리·단거리미사일(총 7발) 등을 단일한 통신 지휘 체계에서 발사해 도발의 완성도가 높았지만 이번에는 중·단거리미사일의 성능 개량 수준”이라고 했다.
북한은 앞서 1차 핵 위기 때인 1993년 5월 중거리미사일 노동1호를, 2차 핵 위기가 고조되던 2003년 2월에는 지대함 미사일을 각각 쏴 위기의 ‘상승효과’를 가져왔다. 두 차례 모두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한 지 한두 달 만이었다. 또 2000년 3~4월에는 핵 시설 재가동, 2005년 5월에는 핵 연료봉 교체 시기와 맞물려 단거리미사일을 발사해 역시 주변국의 위기감을 배가시켰다.
남북 간 긴장을 고조시키고 체제를 통제하는데도 미사일은 유용한 수단이었다. 북한은 작년 3월 개성공단의 남한 당국자 11명을 추방한 직후 단거리미사일을 쏘았다.
1998년 8월에는 김정일 1기 체제 출범을, 올해 4월에는 김정일 3기 체제 출범을 앞두고 ‘축포(祝砲)’ 성격으로 장거리로켓(대포동)을 각각 쏘아 올렸다. 한두 발씩이라도 적절한 타이밍에 발사하면서 긴장을 끌어올리는데 기여하곤 했다. “북한은 군사적 도구를 외교적으로 적절하게 활용한다”(외교 당국자)는 평가는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그러나 올 들어 강행된 북의 도발은 “바깥세상이 돌아가는 것과는 무관하게 이뤄지는 듯한 느낌을 주고 메시지도 분명하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북한과 대화 의사를 밝힌 오바마(Obama) 대통령이 대북 정책의 방향을 결정하기도 전인 5월25일, 북한은 미국의 현충일인 ‘메모리얼 데이’(Memorial Day)에 맞춰 2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그 이후 미국의 대북 정책은 대화에서 제재의 트랙으로 확실히 돌아섰고 불법 무기를 실은 것으로 의심되는 북한 선박의 추적 대북 금융제재 식량지원 중단 선언 등이 최근까지 잇따르고 있다. 대미 관계에서 북한의 도발이 ‘적절한 촉매’가 아닌 ‘자충수’가 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5월 핵실험 직후 중·단거리 미사일 수 발을 발사하기도 했다. 모두 미국이 사정권이 아니어서 외교적으로 메시지가 뚜렷하지 않은 것들로 평가됐다. 이 같은 일련의 도발 남발은 한·미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분노와 짜증만 키우는 일종의 ‘도발 피로증’을 불러왔다는 관측이다. 그 결과는 국제사회가 어느 때보다 촘촘한 대북 제재와 압박의 그물망을 짜놓은 것이다.
이에 대해 남주홍 경기대 교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악화와 후계 작업이 맞물린 상황에서 예전처럼 외교적 목적이 분명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의사 결정과정에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재고 정리를 하는 것도 아니고 한 발에 100만달러 이상인 미사일을 큰 대외적 효과가 없는데도 무더기로 쏘는 것 자체가 북한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증거”(이조원 중앙대 교수)라는 것이다.
후계 작업 과정에서 군부(軍部)의 입김이 강해졌고, 대외 정책도 김 위원장과 외무성의 정무적·외교적 판단보다는 군부의 강경 목소리에 좌우되기 때문에 이런 ‘비정무적 결정’들이 내려지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한 북한 문제 소식통은 “김 위원장이 쓰러진 뒤 예전처럼 모든 판단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안다”며 “김영춘 인민무력부장과 오극렬 국방위 부위원장 등 군부 강경파의 역할이 커졌기 때문에 정치·외교적으로 별 효과가 없는 군사적 도발이 이어지고 있는 듯하다”고 했다.
백승주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은 “최근 미국은 핵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를 북한 인근 해역에 배치시켰는데 평양으로선 ‘서지컬 스트라이크’(Surgical Strike·정밀 폭격)에 대한 공포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라며 “이번 도발은 고슴도치처럼 ‘우리를 건드리지 말라’는 시위의 성격이 강하다”고 했다.
청와대 당국자는 “체제 통제와 군부 만족이라는 내부 목적 때문에 미사일을 무더기로 쐈다면 그 자체가 북한의 불안한 내부 사정을 방증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출처: 조선일보 안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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