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북한의 갑작스러운 개성공단 폐쇄에 대비해 ‘컨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비상 계획)’을 최근 정비한 것으로 17일 알려졌다. 핵심 당국자는 이날 “작년 말 북한이 개성공단 통행을 통제했을 때부터 공단 폐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응책 마련에 착수했다”며 “지난 15일 북한이 개성공단 법규와 계약을 무효화하겠다고 선언한 이후 다양한 폐쇄 시나리오에 따른 구체적인 대응책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 당국자는 “과거 정부의 개성공단 폐쇄 비상 계획을 봤더니 ‘북한과 대화를 통해 잘 해결한다’ 정도만 있을 뿐 구체적인 내용은 하나도 없더라”고 전했다. 그는 “비상 계획의 핵심은 개성에 체류 중인 우리 국민의 신변 안전”이라며 “기업들의 손실 보전은 그 후에 논의할 문제 아니냐”고 했다.

정부가 ‘공단 폐쇄 이후’ 대책을 세우기 위해 우선 주목하고 있는 것은 북한의 다음 카드이다. 정부는 이를 확인하기 위해 2차 개성 접촉을 반드시 성사시킨다는 방침이다. 당국자는 “15일 북측에 제안한 ‘18일 2차 접촉’이 여전히 유효하다”며 “북한이 새로운 회담 날짜를 제의한다고 해도 이를 거부할 이유는 없다”고 했다.

정부 관계자는 “현재 74달러 수준인 개성 임금을 중국 수준인 200달러로 갑자기 올리거나 무리한 토지사용료를 당장 내년부터 내라고 강요한다면 사실상 북한과는 협상할 여지가 없는 것으로 본다”고 했다.

조봉현 기업은행경제연구소 박사는 “개성 임금이 월 200달러를 넘는다면 입주기업 100여곳 중 3~4곳, 150달러를 넘는다면 섬유업체 중심으로 30여곳 정도만 살아남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정부 대책에 앞서) 기업이 먼저 개성을 떠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현재 정부는 북측의 무리한 요구로 철수하는 기업이 나올 경우 경협·교역 보험에서 손실을 보조하는 방안을 최우선 검토 중이다. 청와대 당국자는 “작년 말 북한이 개성공단 출입을 통제했을 때부터 폐쇄 가능성을 고려해 입주기업들에 보험 가입을 당부했으며, 경협 보험 보장액도 현재 50억원에서 70억원으로 한도를 증액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입주업체들은 북한 당국의 일방적 합의서 파기 등으로 사업을 못하게 되면 건물·기계 같은 설비 투자에 대한 손실의 90%까지 보전받을 수 있다. 보험금은 정부가 조성한 남북협력기금(연간 1조5000억원)에서 지급한다. 통일부 관계자는 “입주 예정 기업을 포함해 모두 121곳이 보험에 가입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입주 기업들은 “100억원 이상을 투자한 기업에 보험금은 턱없이 부족한 액수”라며 “순수 투자액 외에 다른 곳에 투자했을 때의 기회비용까지 감안하면 남북협력기금에서 기업 손실을 충분히 보전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공단 폐쇄가 가시화하더라도 정부가 기업들에 일괄 철수를 명령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적지 않다. 정부 소식통은 “북한의 새 조건을 알 수 없지만 계속 사업하겠다는 기업이 있다면 강제로 철수시킬 방법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남길 원하는 기업이 있다 해도 개성공단에 체류 중인 우리 국민의 신변에 중대한 문제가 발생한다면 정부로선 가만있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49일째 억류 중인 현대아산 직원 신변에 문제가 생기거나 추가로 인질이 생긴다면 정부로서도 모든 걸 기업 자율에 맡기기는 어렵다”(안보 부처 관계자)는 것이다.

출처: 조선일보 안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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