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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sue 예수께서 이 나라를 살리실 것이다. Up 최종편집: 2월17일(월)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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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롭지만 강퍅한 O목사님 바르지만 무정한 O집사님


저는 20년 간 같은 종류의 일을 하면서 정말 많은 애국자들을 만나봤습니다. 헌데 저를 포함해서요. 내가 아닌 타인,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일하고 또 기도하고 헌신하고 희생하는 이들에게 일종의 직업병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멀리 있는 이들은 사랑하지만 여간해선 가까이 있는 이들은 사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뭔가 거대 담론, 큰 명분을 가지고 일 하는 이들이 빠지기 쉬운 시험입니다. 나라를 살리고 민족을 구하고 교회를 지키다보니, 마치 독립 운동가들처럼 옆에 사람을 돌 볼 여력이 없는 것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 정신없이 일하다보면 가장 옆의 사람들, 가족들, 동료들을 돌아보지 못하는 때가 많습니다. 실제로 목사 사모님들 마음의 병이 많다고 하죠?


담론과 명분이 클수록 어떤 면에선 이런 현상이 더 두드러집니다. 삼국통일을 위해 자식 원술랑까지 내쳐버린 김유신 장군처럼 확고한 원칙, 부동의 기준에 어긋나면, 가까운 사람에게도 냉정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렇죠. 담론과 명분이 클수록 더합니다. 하나님께 온전하게 충성하기 위해 가까운 사람도 성경대로 살지 않는다면 혹독하게 정죄하고 가혹하게 심판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공의는 있으되 사랑은 없는 것 같지만...또 한편으로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멀리 있는 사람, 북한 동포, 중국 인민, 아랍 족속 심지어 이스라엘 백성마저 사랑하며 기도하니 사랑이 없는 것 같지도 않는 그런 이들. 어떠십니까? 여러 분들은 또 주변에 그런 이들은 없으십니까?


안타깝지만 멀리 있는 사람은 사랑해도 가까이 있는 이들은 사랑하지 못하는 이들은 대체로 보수 성향이 많습니다. 자생적 질서인 시장경제와 그 이론적 토대인 자유민주주의를 존중하고 또 하나님을 두려워해 성경적 율법과 계명에서 떠나지 않으려는 성향이죠.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 강하니 지키지 않는 사람을 보면 잘 참지 못하죠.


만일 이것이 직업이 된다면 어떨까요. 예컨대 목사, 전도사, 강도사, 선교사 또 북한인권운동가나 반(反)동성애·반(反)낙태운동가가 된다면 좀 무서워질 수 있습니다. 율법과 계명 나아가 원칙과 기준에 어긋난 사람은, 바로 가까이 있는 이부터 심판의 칼날과 정죄의 작두로 재단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의롭고 강직하고 또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좌익들처럼 철저한 사람끼리의 연대의식이나 동지의식은 없습니다. 훌륭하긴 한데... 서로 서로 잘 뭉치지 못하고 독야청청(獨也靑靑)하는 무서운 사람이 되는 것이죠. 군율을 어긴 측근 마속을 처단한 제갈공명처럼, 말씀대로 살지 않는 가족, 자녀, 친족, 동료들에게 언제나 튼튼한 회초리를 들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헌데요. 분명한 것은요. 우리가 따라야 할 예수님은요. 멀리 있는 사람도 사랑하셨지만 그래서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지만, 가까이 있는 사람도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옆에 있는 이들이 사랑받을만해서 아닙니다. 선해서 착해서 의인이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허물 많은 죄인이었고 못난 자들이었고 또 배신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자들을 끝까지 용서하고 용납하고 사랑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3장1절 말씀입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 13:1)”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자기 사람들, 자신의 제자들이 모두 자신을 버릴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저 겁 많고, 저 죄 많은 자기 사람들, 바로 가까이 있는 이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우리 같으면 어떻게 할까요? 미리 알고 내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한 없이 용서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또 우는 자와 함께 울고 아파하는 자와 함께 아파했던 분이십니다. 


“예수께서 그의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의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사 가라사대 그를 어디 두었느냐 가로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어떻게 사랑하였는가 하며(요11:32-36)”


예수님은 어디 소설 속의 라마승이나 뉴에이지에 흔히 등장하는 인도 요가승처럼 무아지경의 초월적 의식 속에 살다 가신 분이 아닙니다. 희로애락을 느끼셨고, 나사로가 죽었을 때 사람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맹인과 문둥병자, 주린 자들을 보며 불쌍히 여기고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이웃과 나라와 민족과 열방을 위해 일한다면서, 정작 아내의 고통에, 자식의 아픔에, 동료·후배·제자의 고민에 ‘이런 것쯤은 견뎌야 돼’라며 잔인한 덕담만 하는 꼰대가 결코 아니셨습니다. 유감스럽지만요. 강한 명분을 가지고 일하는 분들은 공감 능력이 떨어지기 쉽습니다. 멀리 보니 가까이 보지를 못하죠.


하나님의 일, 나라와 민족을 위한 일, 이 사명을 이루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이런 면에서 약점 많은 문제적 인간이었습니다. 지나 놓고 보면, 정말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오랜 기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세상에서 짓밟히게 해주시어, 이 공감 능력을 많이 계발하게 해 주셨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심령이 살아난 것이겠죠.


인간은 본래 강퍅한 존재입니다. 낮은 자리에 처해 봐야 낮은 자들의 아픔을 느낄 수 있고, 벌레처럼 밟혀봐야, 그래야 상한 갈대, 꺼져가는 불꽃의 심정을 알게 되곤 합니다. 황태자로 태어난 싯다르타, 부유한 상인인 무함마드와 다르게, 말구유에서 태어나 수치와 조롱과 모욕 속에 죽어 가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 또한 그러할 것입니다.


문자 속의 구호가 아닌 예수님의 이 살아 있는, 그 놀라운 사랑은 대적하는 자들까지 치료해줄 정도셨습니다. 누가복음 22장47절로 “그 중에 한 사람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그 오른편 귀를 떨어뜨리신지라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시더라(눅22:47-51)” 자신을 죽이러 온 자들을 제자인 베드로가 칼로 치자, 예수님은 오히려 그를 고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경건한 이들은 옳은 말, 바른 말, 또 그에 맞는 행동을 하기 위해 애를 쓰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멀리 있는 추상적 인류가 아니라 바로 옆에서 나를 찌르고, 기분 나쁘게 하고, 속 썩이게 만들고 또 때로는 배신하고 대적하는 가족, 자녀, 부모, 동료, 제자, 후배, 선배, 교회 식구들을 오래 참지 못하고, 용납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않는 일이 많습니다.


나라, 민족, 사명과 사역을 말하지만 정작 바로 옆의 가난한 자, 무능한 자, 모자란 자들의 실수를 용서하지 못한 채 정죄하곤 합니다. 하나님은 심판 날에 우리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했느냐고 말입니다. 또 “나는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실 지도 모릅니다.


또한 우리가 정의롭지만 강퍅하고, 귀한 일을 하지만 무정한 자로 살아간다면, 이 땅에서도요. 우리가 지키려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그리고 교회마저 지켜지기 어려울지 모릅니다. 성경에서 비롯한 가치인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라는 유형의 질서는 사랑이라는 무형의 토대 위에 세워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약한 자, 못난 자, 없는 자, 모자란 자, 무능한 자에 대한 사랑과 긍휼과 자비의 마음이 없다면, 공산주의자들의 공격 앞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무너진다면, 교회도 지켜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여. 주님의 뜻이 우리 안에 이 땅 위에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에게 붙여주신 사람들을 하나님이 사랑하듯 사랑하지 못했음을 자백합니다. 허물 많고, 죄 많고, 상처 많고, 뻔뻔하고, 욕심 많고, 성격 나쁜 자들이라 마음속에 판단하며 용서하지 못하고 용납하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저희로 주님을 사랑하듯 바로 가까이 있는 이들을 내 몸처럼 사랑하게 하시어 주님의 뜻이 하늘에서처럼 이 땅 위에도 이뤄지게 하옵소서.


저희로 율법과 계명, 원칙과 기준만 가지고 심판의 칼날과 정죄의 작두를 휘두르는 정의롭고 강퍅하며 무정한 자들이 되지 않게 하시고 형제의 잘못과 자매의 허물을 용서하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그렇게 자신을 부인해 주님의 뜻을 북한과 중국과 열방에 전하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김성욱의 전체기사  
2021년 03월30일 03시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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