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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깨문 목사님
불의하고 불법하고 부조리한 세상입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당혹스런 일 중 한 가지는 이른바 진보·좌파 성향 목회자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문재인 정권의 폭주가 심해져도, 이런 분들은 나라와 민족을 위한 구체적 기도 대신 그저 “대통령을 위해 기도합시다.” 라고 일축하곤 합니다. 성경에도 임금과 높은 지위에 있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하면서 말입니다.


일반 성도 분들은 잘 파악이 안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 같은 사람 입장에선 병아리 감별사처럼 이런 분들 정치성향이 쉽게 짐작이 갑니다. ‘자본주의는 악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부익부, 빈익빈의 불의하고 불평등한 세상을 정의롭게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 문 대통령도 부조리한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려는 것이다. 다소 거친 방법을 쓰고는 있지만 목적은 공정과 평등과 평화다. 차별금지법 같은 것도 음란한 이 세태의 문제일 뿐 문재인과 민주당 탓으로 돌리긴 어렵다’


아마 문재인 지지자 중 그리스도인이나 목회자들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이런 성향은 세대가 젊을수록, 소위 지식인 기질이 강할수록 더 심합니다. 사실 선교단체나 신학교는 더하죠. 별 생각 없어 보이긴 하는데, 대화를 해보면 실은 진보·좌파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렇습니다. ‘주의 종’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이들 중 60세 이전 세대라면 소위 진보·좌파 성향이 다수를 차지할 것 같습니다.


본인들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그저 정치에 관심 없는 ‘복음적’ 입장일 뿐이라 여길 수 있지만 마찬가지입니다. 선거 때면 미디어 선동에 넘어가 미혹돼 버리는, 그렇게 정치적 유행을 따르는 이들이 열에 아홉은 될지 싶습니다. 어쩌면 한국의 모습은 한국 교회의 모습, 한국 목회자의 모습입니다. 


한국 목회자가 좌경화되고, 한국 교회가 좌경화되면서 한국도 그렇게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들은 정의를 언급한 성경의 단편적 구절을 인용합니다. 이 세상을 ‘정의롭게 바꿔야 한다.’는 확신을 다른 이들에게도 주입시키려 애를 씁니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암 5:24)”라는 말씀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이 정의와 공의를 입에 달고 사는 목사들 앞에서 성도들은 뭔가 이상한데 토는 달지 못한 채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이런 좌익적 시각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공중 권세 잡은 자가 지배하는 곳입니다. 선한 자가 핍박 받고 의인이 고난 받기 마련입니다. 


불의하고 불법하고 부조리한 세상이죠. 그렇다고 정의와 공의를 이루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표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표는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나아가 모든 민족을 예수의 제자 삼는 것입니다. 예수의 제자는 어떤 것입니까?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자입니다. 사회혁명이 아닌 예수혁명입니다. 사회선교가 아닌 세계선교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예수혁명이요, 십자가를 지는 세계선교입니다.


시작은 ‘거룩함’입니다. 우리 안의 죗성, 타락한 자아를 죽여 주님이 완전하신 것처럼 우리도 완전해지는 것입니다. 순도 99%가 100%로 거룩해질 때 우리는 십자가를 질 수 있습니다. 주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에 합당한 사명을 이루게 됩니다. 빛이 되고 소금이 됩니다. 그때야 비로소 불의하고 불법하고 부조리한 세상은 정의의 짠 맛과 공의의 빛이 비취게 됩니다.


겉 사람과 옛 사람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 휘두르는 정의의 칼날과 공의의 창은 타인을 죽이고 결국 자신도 죽이고 맙니다. 그렇게 의협심 넘치는 사회주의자들은 이 땅의 살육극을 만들어 왔습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은 기독교인이었죠. 마르크스도 기독교인이었고, 김일성도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소위 사회주의자들은 다들 이 사악한 세상에 분개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정의라는 단어들도 인용하죠. 그러나 그 의로움은 하나님의 ‘공의’가 아닙니다. 인간의 ‘자기 의’입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아닌 <자기 의>에 빠진 이들, 예수혁명 없이 사회혁명 한다는 이들, 거룩하지 않은 자들의 열매는 어떻습니까? 성령은 소멸돼 버리고 이내, 의와 평강과 희락은 찾을 수 없습니다. 분노와 미움과 적의가 넘칩니다. 죽음의 영이 꼬이고 지옥의 영을 끌어당깁니다. 반대편은 적폐와 악이니 마음껏 때려도, 가둬도, 죽여도 된다고 봅니다. 이런 식으로 박근혜, 이명박 두 사람에게 20년 징역살이를 시켰습니다. 많은 목사, 전도사, 주의 종들도 부추겼습니다. 정의와 공정과 공평의 이름으로 말입니다.


자 이제 질문들 드려봅니다. 왜 이럴까요? 스스로 복음적이며 세상 문제엔 정의를 말하는 기독교인들, 실제론 부익부 빈익빈을 없앤 소위 사회주의 이상향을 꿈꾸는 이유가 뭘까요? 천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인간의 죗성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죗성은 우상숭배의 결과입니다. 우상숭배라고요? 소위 좌익 성향 기독교인은 황금소라도 숭배한다는 것인가요? 아닙니다. 그들의 우상숭배는 탐심입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골 3:5)”


탐심은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말입니다. 탐심은요. 우리의 일용할 양식 이상의 것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탐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나 하루 치 만나, 하루 치 메추라기가 아닌 이틀 치, 일주일치, 일 년치를 쌓아두려면 탐심입니다. 사실 2020년을 사는 우리들은 조선시대 왕들보다 더 잘 먹고 잘 살고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아버지시라는 믿음을 확증케 합니다.


헌데 우리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더 많은 것을 쌓으려 합니다. 세 끼 밥을 먹고 한 벌 옷이 있어 어려움이 없는데도 말입니다. 또 어느 정도 생활도 되는데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비교를 합니다. 자신보다 더 많이 가진 자, 더 많이 있는 자, 더 많은 것을 누리는 자를 보며 비애감을 갖습니다. 이 비교의식은 지식인과 종교인이 심합니다. 자신의 가진 지식에 대한 교만, 도덕적 우월감을 가진 이들일수록 자신보다 무능하고, 무식하고, 천박한 자들이 돈과 권력의 갑질을 해 대는 걸 못 참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정죄하고 심판합니다.


뭔가 그럴싸한 명분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너무 좋은 도구가 됩니다. 정의와 공의를 기록한 구절을 하나 따서 정의와 공의의 작두를 후려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사명이라고, 내가 이 땅에 남은 이유라고 강변합니다. 이명박과 박근혜와 이재용과 기타 등등. 욕을 하고 저주를 하다가 이제는 소위 독재후예와 기득권 세력을 쓸어버릴 해결사를 환호합니다. 그렇게 대깨문의 길을 걷게 됩니다. 자신의 죗성을 보지 못하는 것이죠. 탐심을 죽이지 못하니,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지 못하니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이 함께 갑니다.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골 3:7-10)”


한 글자 한 글자가 아름다운 말씀입니다. 불의하고 불법하고 부조리한 세상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십자가는 이 엉망진창의 세계를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민족을 제자 삼기 위해 한국 교회가 회복돼 북한구원을 이루고 중국구원을 이루고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를 위해 이 땅의 신앙의 자유를 지키려 하는 것입니다. 그를 이룰 지도자를 보내 달라 하나님께 호소하는 것입니다.


제가 부자여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가난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재벌에 관심 없습니다. 돈 많은 사람도 출세한 사람도 권력 많은 사람도 관심 없습니다. 우리 모두 그렇습니다. 옛 사람을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탐심을 죽여야 합니다. 땅에 있는 지체를 죽여야 합니다.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입의 부끄러운 말과 거짓말을 죽여야 합니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고 받은 것에 감사하며 먼저 우리 안에 죗성을 죽여야 합니다. 주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 이뤄질 수 있도록 회개해야 합니다. 사회혁명이 아니라 우리 안의 예수혁명을 이뤄야 합니다. 그때 주님께서 사회선교가 아닌 세계선교의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 땅에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진 이들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세상의 초등학문과 헛된 속임수를 따르는 이들이 아니라 살아도 예수요 죽어도 예수요, 주님 가신 길을 걷고자 결단하고 헌신하는 청년들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자유가 무너질 위기에 처한 이 땅에 반전과 역전을 허락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김성욱의 전체기사  
2020년 12월16일 08시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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