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멕시코에서 여름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당시만해도 멕시코를 찾는 동양인이 그다지 많지 않았던 덕분에, 어딜가나 뜨거운(?) 환영을 받으며 여행을 했었지요. 매케한 멕시코시티의 공기, 거리에서 사먹던 따꼬 냄새, 고도가 높아 몸이 무겁게 느껴졌던 아침, 한 번 인사를 나누고는 십년지기처럼 대해주던 멕시칸들...제 기억 속에 멕시코는 이런 이미지들로 남아있었습니다.
그런데, 근래 들어 매스컴을 통해 전해지는 멕시코의 모습은 '저기가 내가 갔던 곳이 맞나?'하는 의문이 들게 합니다. 21세기 문명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최근 몇 달 동안 멕시코발로 들어온 뉴스들은 대부분 아래와 같습니다. -----------------------------------------
 체포된 멕시코 마약조직 소속 갱들
-살해된 경찰의 시신, 머리만 아이스박스에 넣어 경찰서로 보내
멕시코와 미 텍사스 국경 근처 마을에서 사람 머리 3개가 아이스박스에 넣어져 전달되는 엽기적인 범죄가 발생했다. 갱들은 마약 관련 폭력 소탕 작전에 나선 현지 경찰들을 납치 살해한 다음, 이들의 머리를 절단해 아이스박스에 넣은 후 경찰서 앞에 놓아두었다. 현재 멕시코 경찰과 군인들은 나라 전역에 걸쳐 마약 관련 폭력을 소탕하기 위한 작전을 벌이고 있으나, 갱들은 경찰과 민간인을 살해하는 등 극렬저항하고 있다.
-시신 300여구를 염산으로 녹인 남자 체포
멕시코 경찰은 마약 밀매 조직의 의뢰를 받고 시신 300여구를 염산 등 부식성 화학 물질로 녹여 처분한 혐의로 40대 남자를 체포했다. 경찰 당국은 산티아고 메사라는 이 남성이 지난 10년 동안 주급 600달러를 받고 300여 구를 처분했다는 자백을 했다고 발표했다. 메사는 마약 갱들이 살해한 시체의 신원이 밝혀지는 것을 막기 위해 염산을 뿌린 뒤 땅에 묻은 것으로 밝혀졌다.
 멕시코 띠후아나의 거리에서 마약 카르텔 사이의 총격전이 벌어졌다. 총격으로 사망한 세 구의 시신이 따꼬 포장마차 주위에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는 모습(Photograph: Sergio Ortiz)
-2008년 한 해 동안 멕시코에서 살해된 사람의 수는 5,600여명
치우아우아(Chihuahua)주에서 16~26세 청년 6명의 시체가 발견됐다. 멕시코에서 가장 폭력성이 강한 지역으로 꼽히는 이곳에서는 지난 한해 동안 1,600명이 폭력 조직의 분쟁에 휘말려 살해됐다. 멕시코 전체에서 2008년 한 해 동안 살해된 사람의 수는 5,600명으로, 2007넌 2,700명, 2006년 1,500명에서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한달 동안 한 도시에서 200여명 살해돼
국경도시 띠후아나(Tijuana)에서 2008년 12월 한달 동안 마약 조직의 범죄로 사망한 사람의 수는 200여명이 넘는다. 12월 초 머리없는 시신 9구가 비닐봉지에 싸인 채 발견됐다. 사망자에는 어린이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으며, 절단된 경찰관의 시신이 발견되기도 했다.
 마약 조직간의 충돌이 발생했단 후아레스의 한 거리에 신원미상 여성의 시신이 결박된 채 버려져있다.
-마약 범죄 보도하는 언론인 살해
지난해 11월, 마약 조직의 폭력성을 고발하는 보도를 해 온 한 범죄 전문기자가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멕시코 마약 조직은 자신들의 활동을 보도하는 기자들을 공격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선포한 바 있다.
올해 1월6일에는 북부 도시 몬떼레이의 TV방송국에 갱들이 총격을 가하고 수류탄을 투척하는 테러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들은 마약범죄를 심층 추적,분석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하지 말라고 방송국 관계자들을 협박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멕시코에서는 언론이 마약 범죄를 취재하면 갱들로부터 협박을 받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 때문에 언론사들이 정부의 발표 이외에는 아예 마약 범죄 보도를 하지 않으려 해 문제가 되고 있다. '언론인 보도 위원회(CPJ)'에 따르면, 2000년 이후 멕시코에서 마약 카르텔의 범죄를 취재하던 언론인 28명이 살해되고 8명이 실종됐다.
-85분마다 한 명 꼴로 살해
지난 12월 9일 남부 게레로주에서 하루 동안 적어도 10명이 살해됐다. 이 지역 주지사 사무실 부근에 시체의 머리 두 개가 발견돼으며, 마약조직에 납치되어 고문을 당한 뒤 살해된 시신이 발견됐다. 현지 언론은 현재 멕시코에서는 85분마다 한 명이 살해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멕시코 바하 캘리포니아에서 마약 범죄 조직과 경찰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지는 동안, 한 경찰관이 급히 민간인 어린이를 피신시키고 있다.
-"갱을 한 명 죽일 때마다, 너희 군인들을 10명 죽이겠다"
지난 12월, 남부 칠판씬고(Chilpancingo)지역에서는 마약 조직 소탕 작전에 나섰던 군인 8명이 살해된 채 발견됐다. 시신은 머리가 잘린채 검은 비닐봉지에 넣어 버려져 있었으며, 그 옆에는 페인트로 쓴 "너희가 우리를 한 명 죽일 때 마다, 너희 군인들을 10명 죽이겠다"는 협박 메모가 남겨져 있었다. 군인들과의 총격전에서 갱단 멤버 3명이 사망하자, 마약 조직이 보복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총살당한 시체 7구, 어린이들 다니는 학교 운동장에 버려
지난해 11월 한 국경도시의 학교 축구장에서 나란히 줄지어 버려져 있는 시체 7구가 발견됐다. 사망자들은 마약 관련 조직과 거래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으며, 현장에는 갱단을 배신한 본보기라는 협박 문구가 남아있었다. 갱들은 주민들이 자주 오가는 공개된 장소에 시신을 버림으로써 자신들에 대한 공포를 유발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마약조직 도운 미스 멕시코

지난 12월 미스 멕시코 3위 입상자인 모델 라우라 수니가(24세)가 불법 무기 소지 혐의로 구속됐다. 그녀는 22일 마약 조직 갱들과 함께 소총과 권총 등이 가득찬 차량을 타고 가던 중 경찰의 검문을 받고 체포됐다. 수니가는 마약 조직 중 하나인 후아레스 카르텔의 멤버와 연인 관계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교사 출신인 수니가는 지난해 9월 미스 멕시코 선발대회에서 3위로 입상했으며, 멕시코 대표로 미스 인터내셔널 대회에 출전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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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언론들은 멕시코 소식을 잘 다루지 않는데다 국가적으로도 긴밀한 교류는 없어서인지, 위의 뉴스들은 그저 '어떻게 이럴 수가' 정도로만 느껴질 따름입니다. 하지만, 이웃하고 있는 미국에게 마약으로 몰락해가는 멕시코는 시한폭탄이나 다름없이 느껴지겠지요.
미 국방부는 지난 14일, 멕시코를 파키스탄과 함께 '급작스럽고 신속하게 붕괴할 위험이 가장 높은 국가'로 꼽았습니다. 보고서를 통해 "멕시코 정부, 정치인, 경찰, 사법구조체제 등은 범죄 갱들과 마약 카르텔 세력으로부터 지속적인 공격을 받고 있다"며 "어떤 형태로든 멕시코가 혼란에 빠질 경우를 대비해 미국은 국토안보 차원의 대응을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는군요.

멕시코 경찰들이 마약 조직으로부터 압수한 코카인 패키지를 한 곳에 모으고 있다. (Photograph: Jorge Gutierrez/EPA)
이전부터 마약 문제가 멕시코를 포함한 중남미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왔지만, 상황이 이렇게까지 심각해진 것은 지난 2006년 12월 펠리페 깔데론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부터입니다.
깔데론 대통령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 군병력과 경찰력 4만여명을 투입해 마약조직 척결에 나섰습니다. 그 결과, 2년간 수천명의 마약 갱단을 체포하고, 코카인 70톤과 마리화나 3천700톤을 압수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지요.
문제는 정부의 강력한 탄압 정책에 마약 카르텔들이 맞불 작전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갱단 멤버가 체포되면 그 보복으로 경찰이나 민간인을 학살하는 식이지요.
갱단과 경찰 사이의 총격전, 갱단들 간의 끊임없는 이권다툼 속에서 멕시코 주민들은 전시나 다름없는 상황을 견뎌야 합니다. <BBC mundo>가 지난해 멕시코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주민 5명 중 2명은 "마약 카르텔의 폭력이 지긋지긋해 할 수만 있다면 나라를 떠나고 싶다" 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산 이그나시오 지역에서 발견된 총살된 시신들을 경찰이 조사하고 있다.
그러나, 주민들은 괴로운 생활 속에서도 마약 조직과 전면전을 벌이는 정부의 강경 대응에 반대하지는 않았습니다. 응답자의 68%가 정부의 대응에 찬성했으며 53%는 깔데론 정부가 잘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히스패닉다운 낙천성 덕분일까요, 전체의 58%는 "언젠가는 이 마약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습니다.
깔데론 정부는 갈수록 마약 카르텔의 폭력이 극렬해지는 것은 "이들이 수세에 몰려있다는 증거"라고 해석합니다. '독안에 든 쥐'의 발악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마약 조직을 없애는 것 외에도 멕시코 정부가 해결해야 할 과제들은 첩첩산중입니다.
멕시코 시민들은 마약 카르텔이 기승을 부리게 된 근본적 원인으로 높은 실업률과 국가적 경제 위기 등 사회 문제를 들고 있습니다. 아무리 갱단을 무력으로 몰아내도, 이런 근본적인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으면 다시 마약 조직이 생겨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앞으로 멕시코 정부가 어떤 방향으로 '전쟁'을 이끌어 가건, 낙후된 경제를 부흥시키지 못한다면 '승리'는 요원할 것으로 보입니다.
 BBC 조사에서 시민들이 지적한 마약 문제의 원인들. 실업, 불경기, 만연한 부패, 낮은 교육 수준 등 다양한 사회문제들이 모여 지금과 같은 비극을 낳았다는 것이다.
출처: 개인블로그 http://kr.blog.yahoo.com/eg_blog/3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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