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중국 OO시에 소재한 북한 식당인 OO식당에 가 본 적이 있다. 이왕 중국에 나온 바에야 북한을 직접 접하고, 그 폐해를 직접 느껴보고 취재나 하자는 취지에서였다.

하지만 실은 미친(Crazy) 짓이나 다름없었다.

필자는 작년 말 즈음 한 탈북자 출신의 북한인권 운동가로부터 필자가 북한 당국이 선정한 요주의 인물 중 한 명으로 선정되어 있다는 말을 들은 바 있었으며, 뿐만 아니라 해외의 북한 식당의 복무원(종업원)들은 모두 미인계(美人計)를 앞세운 선별된 여성 간첩들이라는 소문을 듣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필자는 “북한 식당에 가보자!”는 당초의 호기로운 외침과는 달리 막상 기본요금 5원(중국 위안화 기준)의 택시에 올라타자 긴장됨을 느꼈다. 오로지 북한 식당에는 필자 이외에도 평범한 한국 손님들이 많으며, 북한 당국이 주시하는 요주의 인물 중 한 명도 자유롭게 그 곳을 오간다는 소문이 사실이기만을 바라는 마음에 의지한 채였다.

택시가 멈춰서고 요금을 지불한 필자가 내려선 곳은 수소문해서 찾은 OO시내에 위치한 OO호텔 인근의 OO식당이었다.

후에 새삼스레 확인한 것이지만 ‘오리지널’ 북한 지배인이 운영하고 오리지널 북한 종업원들이 근무하는 곳이라고 했다. 떨리는 마음을 뒤로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서 O층으로 올라갔다.

필자를 맞이한 것은 예의 사진에서만 보던 바로 그 ‘한복’ 차림의 여성 종업원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특유의 그 말투가 평양 출신의 북한 아가씨임이 틀림없었다. 필자는 떨리는 마음을 애써 억누른 채, 기자라는 신분을 숨긴 채 그 종업원이 지정해 준 자리에 앉았다.

그 여(女)종업원의 이름은 ‘이OO’.

혹시라도 독재 체제가 무너질까 ‘비(非)사회주의’의 유입을 걱정한 나머지 해외 근무 근로자들에게 철저한 입막음을 강요하고 있는 북한 당국이 지정해 준 가명(佳名)인지, 본명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녀의 나이는 지금 방년 22살이라고 했다. 꽃다운 나이였다.

북한 당국이 ‘외화벌이와 공작’을 위해 ‘출신성분’이 좋은 평양 출신의 아름다운 여성들만 골라 해외에서 근무시킨다는 말만 들었지만, (실로 매 때마다 살아 움직이는(?) 생동감있는 표정과 목소리 때문이었을까?) 아름다운 용모였다.

특히 은은한 푸른색의 한복이 더욱 돋보이는 듯했다. 후에 알았지만 이 한복은 영업 지역을 옮기며 특별히 새로 맞춘 것이라고 했다. 소위 김일성배지와 인공기는 필자가 확인한 바로는 착용하고 있지 않은 듯 했다.

필자는 그녀가 건네준 메뉴판을 펼쳐들고 페이지를 넘기며 메뉴를 고르기 시작했다. 보통 북한 식당을 다녀온 사람들에 의하면 메뉴판 첫 페이지에는 북한의 폐쇄정책을 상징하는 주체사상탑이 그려져 있다고 했지만, 이것도 역시 보이지 않는 듯 했다. 아마도 북한에 대한 외국인들의 부정적인 인식이 매출액에도 상당한 영향을 준 탓이었으리라.

페이지를 마지막까지 넘겼을 무렵 눈에 뜨인 것은 바로 ‘회’였다. 사실 필자는 회라면 그야말로 문자 그대로 ‘환장’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 중 가장 좋아하는 광어회 두 접시와 ‘물개’로 만들었다는 OO주를 골라 주문시켰다. 소문대로 가격은 중국 물가 기준으로 아주 비쌌다. 중국 위안화로 400원(우리 돈 약 8만원)이었다.

그 와중에도 필자의 바로 옆자리에서는 비록 가게 전반이 텅텅 빌 정도로 손님은 적었지만 종업원들의 노래 공연이 한창이었다. 오후 7시가 공연이 시작되는 시간이라는 소문을 듣고 특별히 그 시간에 맞춰서 찾아온 탓이었다.

시끄러운 탓에 대화는 다소 힘들었지만 노래는 다양하고 들을만했다. 필자도 익숙한 중국 노래가 대부분이었지만 가끔은 가야금 연주나 북한 가요도 들려왔다.

그런데 같은 시간대에 식당을 찾은 조선족 손님들과의 만남 도중 흘러나온 이른바 ‘김정일 찬양가’는 필자의 귀에 거슬리기에 충분했다. 흥겹던 표정이 확 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후에 합석한 한 조선족 남성은 “저들의 말을 믿지 말라”고 귀띔해주기도 했다.

회 요리가 나오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리는 사이 필자의 접대를 맡은 이OO양은 “기다리기 지루하시니 조개 요리를 먼저 서비스로 대접해드리겠습니다”라며 곧 큼지막한 조개 요리를 가져 왔다. 한 입 떠먹으니 맛은 좋았다.

하지만 이미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이 요리는 ‘서비스’가 아닌 정식 요리였다. 나중에 요금이 함께 청구된 것. “아니, 손님을 이렇게 속여먹나” 서비스라는 외래어를 아는 그녀에 대한 기특함도 잠시, 서울 같았으면 당장 벌떡 일어나 책임자를 호출했겠지만 외화벌이에 목숨을 건 그녀들의 처지를 알기에 알면서도 속는 수밖에 없었다.

개성공단과 마찬가지로, 그녀들은 월급의 대부분을 김정일에게 강탈당하면서도 일하는 수밖에 없었다. 왜냐고? 그게 북한이니까.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곳이니까. 그녀들로서는 그저 ‘기쁨조’라는 미명 하에 김정일의 성(性)노리개로 뽑히지 않은 것이 다행일 따름이었다.

아무튼 얼마간 시간이 지나 회 요리가 나왔다.

한국 기준으로는 소(小)자 규모로, 가격에 비해서는 양이 턱없이 적은 편이었지만, 요리사의 회 치는(膾) 기술 수준은 꽤 높아 보였다. 광어는 아직 숨이 붙은 채로 턱을 쉼 없이 움직이고 있었고, 회는 갓 잡은 만큼 쫄깃쫄깃 한 것이 맛이 좋았다.

소스로는 초장이 아닌 고추냉이(와사비. わさび)와 간장이 나왔다. 그녀는 역시 ‘와사비’라는 외래어를 알고 있었다. 해외 북한 식당의 종업원들은 이미 철저한 교육을 받고 나온 듯 했다. 그만큼 ‘비사회주의’에 물들 것을 걱정하는 당국의 감시도 철저하리라. 식당에서 보낸 시간 내내 필자의 머릿속을 채운 것은 바로 그러한 생각과 동족애에서 비롯된 비감(悲感)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이OO양을 직접 앞에 앉혀두고 근무 실태가 어떠한지, 평양에서의 삶이 어떠했는지, 김정일을 진심으로 존경하기는 하는지 툭 터놓고 인터뷰를 하고 싶었지만 그녀의 처지를 생각해서도 그럴 수 없었다.

실제로 그녀는 다른 종업원들과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 감시의 눈길’의 눈치를 많이 보는 듯 했다. 실례로 필자가 나지막하게 “남북 통일되면 뵈야겠죠?”라고 하자 그녀는 황급히 자리를 떴다. 때문에 이미 그녀들의 처지를 아는 필자로서는 더 이상 함부로 할 수가 없었다.

다만, 종업원들의 서비스는 매우 좋았다. 목숨을 걸고 외화벌이에 내몰린 그녀들의 처지 때문인지, 술잔이 비자마자 무섭게 달려와 술잔을 채워주는 것은 필자로서는 아직 접하지 못한 경험이었다. 때문에 남녀평등(男女平等)을 나름 존중하는(?) 필자로서는 처음에는 마음이 불편하기 그지없었지만, 이후로는 차츰 익숙해지기는 했다.

서비스용 립(lip)서비스인지, 이OO양은 필자에게 매우 사근사근했다.

평양에 있는 친오빠가 있는데 필자와 용모가 매우 닮았다든지, 손님들 중 가장 미남(美男)이라든지, 그야말로 손님의 기분을 한껏 추켜세우는 말재주가 보통이 아니었다. 장사꾼들 속셈이 다 같다지만, 그야말로 또 한 번 알고도 속는 수밖에 없었다.

특히 시끄러운 노랫소리 탓에 대화가 어려울 때 필자의 귓전에 입을 갖다 대고 소근 거릴 때는 필자도 어쩔 수 없이 이곳이 북한 식당이라는 것을 잠시 깜빡할 수밖에 없었다.

필자는 이전에 평양 소재 호텔에 묵는 남한 인사들 중 일부가 북한 당국의 미인계에 넘어가 어쩔 수 없이 조종당할 수밖에 없다는 소식을 접한 바 있다. 그런데 막상 북한 식당에 와보니 왜 남자(男子)로 태어난 이상 위험할 수밖에 없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한다” 정말 실감이 났다.

이OO양은 이후에 필자가 요청한 노래를 직접 독창하기도 했다. 그녀의 처지를 고려해 중국 노래를 신청했지만, 그녀는 중국어에 매우 유창했다. 노랫소리도 맑았다. 다른 한 종업원은 노래를 부르고 내려오다 실수로 무대에서 넘어지기도 했다. 그녀들도 우리와 다름없는 사람(人)이었다.

그런데 필자가 이 날 방문했을 당시 평양에서 왔다는 나이 10살 안팎의 한 소녀(小女)도 부모를 따라 식당에 와 있었다. 어른들의 술자리가 지루했을까, 시종일관 밖을 들락날락 거리며 필자의 정다운 인사에도 시무룩한 표정이었다. 필자도 언뜻 어린 시절 어른들의 술자리가 지루해 사촌동생들과 나가 놀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남북을 떠나 아이들은 똑같이 순수했다.

영업 마지막 시간인 오후 9시 30분(중국 기준)이 되자 손님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뜨고, 필자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비록 당초 주문했던 광어 '매운'탕이 '맑은'탕으로 나오는 실수가 있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서비스는 만족할만한 수준이라 할 수 있었다.

다만, 식당에 앉아있는 내내 필자의 가슴을 암담하게 만들었던 두 가지 생각들은 숙소로 돌아온 이후에도 영 사라지지 않았다.

필자가 오늘 지불한 300여 위안화의 돈이 김정일 일가(一家)의 유흥비와 군사비로 모두 탕진 될 거라는 것, 그리고 이제 식당에 온지 3달이 되었다는 이OO양은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지금과 같은 노예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필자가 다른 종업원에게 물어본 바로는 필자가 방문한 시간대가 가장 영업이 잘되는 시간대라 했지만, 두 눈으로 확인한 바로는 가게 전체 자리의 3분의 2는 텅 비어있을 정도로 식당의 영업은 잘 되지 않는 듯 했다. 높은 가격도 가격이지만 최근 대외에 비쳐진 북한의 이미지가 큰 작용을 했으리라 생각되었다.

이 날의 북한 식당 방문은 바로 북한의 체제가 변모하지 않는 한 북한의 경제 침체와 노동 착취는 계속될 것이라는 점을 확연히 느끼게 해 준 확실한 계기였다. 아마도 필자의 평생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으리라.

자유민주 통일의 그 날에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속으로나마 알았을까, 이OO양의 애절한 배웅을 뒤로 하며 필자는 식당을 나왔다. 다행히 미행은 따라붙지 않음을 확인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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