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인도주의의 대전제는 “좋은 동기의 구원활동은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내게 되어 있다”고 하는 일종의 낙관론이다. 이 소박한 낙관론을 산산조각 낸 것이 1996년을 전후한 르완다 내전이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구조단원 리프(Rieff)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인도주의의 가장 소중한 이상들 하나 하나가 르완다에서 완전히 먼지로 돌아갔다” 왜?

 ‘구조’ 단원들이 ‘구조’ 하려고 달려간 피해난민들의 수용소를 관리하고 있던 주체가 다름아닌 난민들의 학살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구조’ 단원들은 그들의 사무소를 현지에 차린 직후에야 알았다. 학살자들은 이런 그들의 전략적 우세를 이용해 외부의 지원을 자기들의 ‘학살 보조제’로 써먹고 있었다. 학살자들은 외부의 ‘인도주의적 원조’를 그들의 타깃인 ‘르완다 애국전선’을 섬멸하는 군수물자 쯤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리프도 훗날 이 체험을 책으로 써냈다.

 이런 씁쓸한 체험은 오늘 이 시점의 대북 쌀 지원론의 명분으로 동원되고 있는 ‘인도주의’의 실체를 새삼 따져 보게 만든다. 누가 ‘인도주의’에 반대하겠는가? 그러나 그 ‘인도주의’를 르완다의 피학살자들에 앞서 학살자들이 가로채 간다면? 그래서 그 ‘구조물자’가 학살자들의 살륙을 도와주는 흉기로 기능하게 된다면?

 그럴 경우 ‘인도주의’ 측은 “그렇다면 우리가 주는 물자가 난민들에게 확실하게 돌아간다는 보장을 받아야겠다”고 당연히 말할 것이다. 그러면 이 당연한 주장에 대해 한국정치의 경우엔 “너 지금 인도주의에 감히 토를 다는 거냐?”는 시비가 당장 들어온다. 그래서 평소에 그렇지 않던 정객들까지도 “아, 그래, 그래, 덮어놓고 주자”며 눈치를 본다.

 르완다의 경우와 김정일의 경우가, 2만 명을 돌파한 탈북동포들은 “같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렇다면 쟁점의 핵심은 우리에게 인도주의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인도주의를 당연히 가지고 있다.

 문제의 본질은 신의주 이재민을 포함하는 북한의 힘없는 주민들이 김정일 폭정이라는 거대한 수용소에 갇혀 있다는 사실, 그래서 우리의 원조 물자가 그 불쌍한 재소자들 아닌 수용소 관리자들의 군수창고로 가고 있다는 체험적 증언들이다. 이 증언에 대해 한국의 정치꾼들-그리고 특히 집권세력은 뭐라고 답할 작정인가? 탈북자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으면 하라.

류근일 2010/9/9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

트윗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