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급변시 대규모 탈북자가 발생해 남한으로 몰려 온다면 우리 노동시장에는 동서독 통일과정에서 나타났던 것보다 훨씬 커다란 혼란이 초래될 수 있습니다." 노동문제를 중심으로 북한 경제와 통일연구에 매진해 온 선한승(宣翰承.56) 전 한국노동교육원장은 5일 연합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정부나 연구기관들이 북한의 변화와 관련한 노동시장 문제에 좀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1986~1990년 독일 빌레펠트(Bielefeld)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하면서 동서독 통일과정을 현장에서 지켜본 그는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한 1990년부터 한국노동연구원에 몸담고 통일을 대비한 남북 노동시장 통합문제를 집중 연구해왔다.

이는 '동서독 통일과 경제사회 문제'(1992), '북한 주민의 직장생활과 노동'(1994), '남북한 인력교류를 위한 북한인력 및 노동제도 실태 분석'(2000), '북한의 경제개방 방향 예측을 위한 사회주의 국가의 개방모델 분석'(2001), '북한이탈 주민의 취업 실태와 정책과제 연구'(2005) 등 그의 주요 연구 실적에 나타나 있다.

지난 5월 노동교육원장에서 물러난 뒤에도 한국사회노동연구원을 설립해 남북 노동시장 문제를 계속 연구하면서 연세대 교육대학원에도 출강하는 그는 최근 불거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와병설에 어느 전문가 못지않게 촉각을 세우고 있다.

"김정일 유고시에는 대량 난민이 발생할 수 있는데, 남한도 청년실업 등으로 경제 여건이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북한 난민이 들어올 경우는 우리 노동시장은 붕괴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직접 체험한 동서독 통일이 "너무 급작스럽게 이뤄지면서 서독의 경우 실업률이 통일 직전 7~8%이던 것이 동독 사람들이 대량으로 밀려들면서 1990~1991년에는 15%대로 올랐었다"면서 "동독 난민을 지원하고 경제를 부양하기 위한 세금도 늘어 서독 경제에 큰 부담이 됐다"고 설명했다.

통일 후 동독지역의 경우는 "급격한 자본주의 체제 도입에 따라 인건비가 폭등하면서 기업들이 경쟁력을 잃고 견디다 못해 문을 닫는 경우가 속출하면서 일자리도 사라져 실업률이 50%로 치솟는 등 동독 경제 자체가 붕괴 위기를 맞기도 했다"는 것.

그는 특히 통일 당시 서독과 동독은 각각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권에서 '선진 경제국'이었음에도 이런 어려움을 겪었던 만큼, 남북한은 동서독보다 훨씬 더 큰 혼란을 맞을 수 있다면서 대책 마련을 서둘 것을 제언했다.

기획재정부, 지식경제부, 통일부, 노동부, 경기도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 등 유관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가 태스크포스를 구성, 예컨대 비무장지대 일부를 평화지역으로 지정해 환경친화적 산업단지 등을 유치한 남북의 '완충지대'로 만들어 유사시 대량으로 발생할 수 있는 북한 난민들을 1차 수용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동시에 노동연구원이나 통일연구원과 같은 연구기관에서도 남북 노동시장 통합문제와 동서독 경제 통합 모형, 중국과 베트남의 체제 전환사례 등에 대해 깊이있는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아울러 비상시가 아닌 평상시에도 남한의 풍부한 자본과 기술력에 북한의 우수한 노동력을 조화롭게 결합하면 남북 모두에 경제적 이로움을 줄 수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북한은 문맹률이 거의 제로고, 학력뿐아니라 노동력 수준이 높으며, 언어를 비롯한 문화적 동질성까지 갖고 있기 때문에 남한의 기업들은 중국이나 베트남 인력 대신 질 좋은 노동력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것.

그는 북한도 노동자들의 수입 증대와 국가적 외화벌이, 남한의 선진기술 이전 효과, 기업경영 노하우 전수 등 다양한 기회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엄청난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개성공단과 같이 남북 노동자들이 함께 일하는 '특구'를 많이 만들어 활성화해야 하며 북한 노동자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인적자원관리(HRM)' 프로그램도 개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특히 개성공단의 경우는 "종업원 임금 직불제 전환으로 노동자의 사기를 높이고 입주기업에도 자기 직원을 스스로 뽑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인사.노무 관리권을 보장해야 더욱 발전시킬 있을 것"이라고 선 전 원장은 말했다.

그는 남한에 입국한 탈북자들에 대해선 "개개 탈북자 특성에 맞는 맞춤형 직업훈련 과정을 거치도록 한 뒤 구인업체와 연결시켜 줘 스스로 벌어먹고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이제는 탈북자관련 업무를 통일부보다는 노동부, 보건복지가족부 등에서 관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자신의 '안경'으로 볼 때 "이명박 정부 들어서 이념 갈등이 오히려 더 깊어지고 있는 것같다"고 진단하면서 "무엇보다 대북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모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남북간 다양한 교류를 위한 제도 개선도 필요하지만 정부가 국민의 정신과 정서적 통합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hsh@yna.co.kr

(서울=연합뉴스)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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