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의 중병설이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미 부시 행정부가 12일 자정(미국 현지시각으로 11일) 북한을 20여 년 만에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한 것을 두고 관련국들의 안색이 엇갈렸다.

북한 정권은 외무성을 통해 이번 조치를 적극 환영하며 한 때 철회 의사를 고수했던 북핵 불능화에 협력할 뜻을 내비쳤고, 중국과 한국 정부도 잇따라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반면 일본 정계는 극도로 난색을 표하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각 국에서는 미국 정부의 이번 조치를 두고 여러가지 분석이 쏟아졌다.

임기 종료를 눈앞에 둔 부시 행정부가 공적에 눈이 어두워 섣불리 저질렀다는 비판에서부터 북핵 폐기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시각까지 다양하게 제기되었다.

그런데 미국의 이번 조치가 북한의 차기 정권을 염두에 둔 행보일 가능성도 수면 위에 오르고 있다.

한 정부관계자는 최근 북한 언론매체가 김정일의 건재를 과시하려는 듯 보도한 김정일의 인민군 제821부대 시찰 사진이 이미 오래전에 촬영한 사진이라고 분석해 김정일의 신변이 아직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 할 정도로 위중함을 시사했다.

13일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이 관계자는 사진의 배경을 두고 "지금 북한은 단풍이 들 시기인데 사진 속의 나무와 풀 색깔은 연녹색"이라며 의혹을 표시한 뒤 "사진 속 김정일도 선글라스와 인민복 동복 차림으로 팔짱을 끼거나 손뼉을 치는 등 병세를 찾아볼 수 없다"며 "5~6월에 찍은 사진으로 보인다"고 결론을 내렸다.

김정일은 올해 5~6월에만 군부대 시찰을 14번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821부대는 강원도 통천 지역에 위치함에 따라 우리 군의 통신 첩보 범위에 포함되고 있지만 최근 이 지역에서 김정일의 출현을 추정할 만한 단서는 포착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관계자는 또 "시간이 지난 사진을 내보낼 정도로 김정일의 '장기 은둔'에 따른 내부적 동요가 적지 않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경기대 남주홍 교수도 북한언론이 최근 김정일의 동정을 하루에도 10번씩 보도하고 있고 새벽 1시 42분에 김정일의 군부대 시찰 소식을 전하는가 하면 북측이 먼저 제안한 남북군사실무회담에서 대북 전단지 살포 중단을 요구한 것 등과 관련해 "1인 독재자가 병상(病床) 통치를 할 때 일반적으로 생기는 징후들"이라고 분석했다.

만약 이들 전문가들의 분석이 사실이라면 김정일은 현재 집무를 정상적으로 보지 못할 정도의 상태로 짐작될 수 있으며, 이것을 전제로 한다면 안정적인 정권 이양 없이 그의 병세가 더욱 악화될 경우 권력의 공백이 생겨 체제가 돌이킬 수 없는 혼란에 빠져들 것이 자명하기에 빠르면 수 년 내로 후계자가 지목되어 김정일의 자리를 대신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한미 양 국은 현재 이러한 점에 주목하고 있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무기수출통제법, 수출관리법, 국제금융기관법, 대외원조법, 적성국교역법 등 미국의 5개 법률에 의거해 받았던 제재에서 북한을 벗어나게 할 이번 테러지원국 해제 조치는 이미 명줄이 다 한 김정일에게 국제사회로의 복귀를 위한 미끼를 던지는 한편, 차기 북한 정권의 개혁개방을 위해 경제 발전의 발판을 마련해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전략으로도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것은 어디까지나 아직 베일에 감춰져 있는 김정일의 후계자가 개혁개방에 적극적인 인물이라는 전제가 충족되었을 때 가능한 것이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지난 6월 26일 '북한과 북한국적자 관련 일부 제재 유지에 관한 행정명령'에서 이미 "북한이 테러지원국에서 해제되고 대북 적성국교역법이 폐지되더라도 이외의 제재는 계속 될 것"이라며 오직 테러지원국 해제라는 당근만을 김정일이라는 약삭빠른 토끼에게 던져줄 것임을 천명한 바 있으며, 최근 테러지원국 해제에서도 이를 재차 확인하는 한편 "북한이 핵 검증에 부합하지 않는 행동을 할 경우 다시 명단에 올릴 수 있다"고 조건을 달았다.

6월 26일 당시 미 국무부는 현재 유효한 대북제제로 ▲북한, 이란, 시리아 확산금지법(2000년) ▲ 미사일 관련 제재 ▲대량살상무기(WMD) 확산관련자 자산동결 등을 담은 행정명령 12938과 행정명령 13382 ▲인신매매 3등급 지위에 따른 제재 ▲외국지원법 등에서 규정한 인권침해에 따른 제재 ▲국제종교자유법의 특별관심국 지위에 따른 제재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 1718호 ▲핵실험국에 방산물자 판매를 금지한 글렌수정법 등을 예시했었다.

즉, 차기 북한 정권의 행동에 따라 미국도 활용할 수 있는 카드들을 얼마든지 남겨둔 것으로 풀이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차기 북한 정권 또한 미국의 요구에 부응하지 않는다면 수 많은 제재라는 거미줄에 걸린 모기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며, 특유의 살라미 전술을 통해 테러지원국 해제 하나를 얻어내는 데 소요된 시간이 무려 5년인 점을 감안하면 나머지 제재들이 모두 해제되는 것은 김정일 사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설사 차기 北정권이 개혁개방 실시한다 하더라도 북핵은 통일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며 유사시 대한민국에 크나큰 위협이 될 것으로 전망]

하지만 이 추측이 맞는다 하더라도 부시 행정부는 이번 테러지원국 해제를 위한 북핵 검증 합의서에서 2002년 시작된 2차 북핵 위기의 원인인 고농축우라늄(HEU) 문제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을뿐더러 국제 핵사찰팀이 북한 당국과의 '상호 동의(mutual consent)'에 의해서만 미신고 핵시설에 접근할 수 있도록 승인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러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묵인하려는 인상을 남겼다.

북한 정권이 플루토늄이든 고농축우라늄이든 핵을 마음대로 보유하더라도 확산만 하지 않으면 된다는 식의 이번 합의에 따라 북한의 차기 정권이 설사 개혁개방 의지가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의 말대로 '머리에 핵을 이고 사는' 재앙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말았다.

북한 정권의 수중에 핵이 있는 한 설사 개혁개방이 미국의 의도대로 성공리에 완수된다 하더라도 그들은 결코 공산체제를 포기하고 제 발로 한국에 흡수통일되려 하지 않을 것이며, 도리어 발달한 경제력으로 핵 전력을 나날이 증강해 핵 전력을 갖추지 못한 한국을 공산 체제로 흡수시키려 할 것이다. 

또한 핵무기라는 것이 그 엄청난 위력 때문에 평시에는 감히 사용할 수 없지만 바꿔 말한다면 평시가 아닌 위급시에는 그 엄청난 위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만에 하나 개혁개방의 부작용으로 북한에 급변사태가 닥치거나 국군이 통일을 위해 북진해야 할 등의 사태가 벌어질 경우 체제 붕괴 이후 온전한 삶을 보장받을 수 없는 북한 정권으로서는 중국으로의 망명이 무위로 돌아갈 경우 붉은 버튼을 누르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핵탄두를 실은 수 기의 탄도 미사일들은 한반도 전역을 향해 붉은 화염에 휩싸인 채 대기권을 뚫고 음속의 수 배에서 십 수배에 달하는 속도로 내리꽂힐 것이며, 현재 도입이 예정된 국군의 패트리어트(Patriot) 요격 미사일이나 미 공군이 개발 중인 ABL(공중 레이저 발사기) 시스템 등이 이를 기적적으로 모조리 명중시킨다면 극적으로 참화를 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요격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이러한 절체절명의 도박으로까지 7천만 한민족의 운명을 몰아간다는 것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어디까지나 북녘을 무력 점거하고 있는 공산정권에 철퇴를 가해 국토를 회복하고 그 아래 억눌려있던 우리 국민들을 해방한다는 것이고 북한의 개혁개방은 이를 위한 과정 중의 하나임을 감안한다면, 북핵은 한국이 똑같이 핵무장을 통해 동등한 힘의 균형을 이루거나 완전무결하게 폐기되지 않는 한 우리에게 있어 치명적인 독(Poison)이 될 것이다.

따라서 국제 관계에서의 발언권과 영향력이라는 것은 힘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북한의 개혁개방이나 급변사태 등 어떠한 경우에도 앞서 먼저 북핵이 완전히 사라진 다음에야 우리가 통일을 위해 북한을 개방시키고 변화시키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핵을 보유한 측에게 핵을 보유하지 못한 측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점은 독일의 자유민주 통일 당시 동서독 양 측이 모두 비 핵보유를 통해 힘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고, 소련의 붕괴를 통한 동구권의 민주화 당시 핵보유국인 소련이 무너질 수 있었던 이유 역시 소련과 마찬가지로 핵보유국이었던 미국이 치열한 군비 경쟁을 통한 힘의 우위를 확보했기 때문이었다는 역사적 교훈에서도 배울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 남북통일을 위해서는 북핵은 미국의 이해관계와는 별도로 북한의 개혁개방 등에 앞서 반드시 제일 첫 번 째로 완전무결하게 해결해야 할 존재이며,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에서 장차 북핵이 갖게 될 정치적 물리적 위협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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