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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의 체험, 세상을 바꾸다


 악에 대한 저항은 대개 두 가지 형태를 취한다. 하나는 인간의 방식, 다른 하나는 주님의 방식이다. 로마 가톨릭의 타락은 14세기경부터 그리스·로마의 인본주의를 통해 기독교를 극복하려는 르네상스 운동을 끌어냈다. 하나님 간판을 내걸고 빚어진 타락을 없애려 하나님 이름 자체를 지우는 시도다. 

 주님의 방식은 달랐다. 젊은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를 택했다. 1517년 34세의 루터는 95개조를 발표해 로마의 권력에 맞선다. 핍박과 탄압이 따랐다. 혁명가의 운명이었다. 교황과 결탁한 제후 프리드리히는 4년 뒤 보름스(Worms) 의회를 열었다. 루터에게는 이단의 낙인이 찍혔다. 사회적 매장, 세상에서 거세돼 버렸다. 다시 8년 뒤 스파이어(Speyer) 의회에서 이 끔찍한 칙령은 더욱 강화됐다. 보이는 건 의인의 참혹한 패배, 사체 같은 절망이었다. 

 이때다. 제후와 제국의 도시 대표 14인이 궐기했다. 저항하는 자. ‘프로테스탄드(Protestant)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루터가 외친 것은 무엇인가? 솔라스크립투라(Sola Scriptura), ‘오직 성경’이다. 성경은 그 자체로 충족하다. 자족하다. 명확하다. 명료하다. 루터는 잡다한 인위적 논리 이전에 완전한 말씀으로 돌아갈 것을 외쳤다. 그리고 솔라피데(Sola fide), ‘오직 믿음’이다. 

 하나님 그 자체인 말씀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를 죄를 사해주시는 그리스도로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믿음으로 죄인(罪人)인 우리가 의인(義人)이라 칭함을 받는다. 그 유명한 이신칭의(以信稱義). 
완전한 말씀으로 돌아갈 것을 외쳤던 루터의 시작은 젊은 날의 체험이다. 

 비텐베르크(Wittenberg) 성당에서 이른바 ‘탑의 체험(tower experience)’을 통해 로마서 1장17절 말씀이 칼처럼 마음에 박혔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7)’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의롭다 칭함받은 죄인은 주님과 직접적 관계를 갖는다. 교황과 사제의 중재는 더 이상 의미를 갖지 않는다. 

 모든 이는 제사장 사명, 주님의 선하고 기쁘고 온전한 뜻을 이룰 수 있고 또 이뤄야 한다. 거듭난 자들은 그렇다. 저주받던 죄인의 인생은 가고 없다. 예수 안에 새롭게 태어난 우리만 남는다. 주님의 일은 더 이상 교황, 사제 ‘주의 종’만 하는 게 아니다. 루터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말했다. 학자들은 이것을 ‘성속(聖俗)의 중세적 2분법을 거부했다’고 말한다. ‘세속(世俗) 영역이 신성화됐다’고도 평한다. 어려운 말을 인용할 필요도 없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 성령께서 심령 안에 오시는 날부터 모든 이는 사명을 받는다. 착한 일! 그것이 주님이 우리를 이 시대, 이 역사 속에 부르신 뜻이다. 루터는 외쳤다. “보카치오(vocatio), 소명은 ‘수도사만이 갖는 게 아닙니다. 당신에겐 부르심이 있습니다. 주께서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심판의 그 날까지 이루실 겁니다.” 

 주의 종의 거룩한 일이건 하찮아 보이는 집안의 허드렛일이건 주님의 시선은 똑같이 머문다. 형통하건 막혀있건 주어진 환경은 기도의 응답이다. 환경의 극복은 주님이 맡기신 사명의 길이다. 

 칼뱅(Jean Calvin, 1509 – 1564)은 이것을 다시 정리해 말했다. 주님의 부르심, 콜링(calling)이 있다고. 주의 영을 받은 모든 이는 웃음이건 눈물이건, 시련이건 성공이건, 각자의 다른 빛깔 상황 속에 주님의 사명, vocatio, calling을 받는다. ‘이 부르심에 최선을 다하세요!’ 루터와 칼뱅의 외침은 근대 자본주의의 정신적 토대를 쌓는다. 

 ‘아 그렇구나. 주님은 로만칼라를 입은 사제만 아니다. 온종일 접시 닦는 나의 인생도 쓰시고 있구나. 실패한 것 같은 나의 삶에도 주님의 콜링(calling)이 있구나. 하루종일 밥만 하며 아이들과 실랑이하는 내게도 부르심이 있겠구나. 먼저 주님의 콜링(calling)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나의 죄와 싸운다. 절망감, 패배감, 억울함, 원통함, 미움·증오·분노, 걱정·근심·염려, 사랑 없는 완악함과 이기심은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하노니 내게서 떠나갈지어다!’

 일반 대중, 일반 성도, 보통 사람들도 소망 없던 인생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발견하고 최선을 다하는 희망의 이유를 찾았다. 그렇게 실패한 인생은 또다시 도전해 성공을 이룬다. 주부들은 자녀들을 성경대로 양육했다. 그를 통해 이뤄낸 축복, 성공, 결실은 유희와 쾌락을 위해 쓰는 게 아니다. 근검, 절약, 청빈의 삶을 살며 다시 주님을 위해 썼다. 이 모든 열매는 주님이 허락한 탓이다! 그렇지 않은가? 

 성경에서 이끌어 낸 ‘부르심’의 사명감은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벌어서,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근대 자본주의 기초를 닦았다. ‘청빈(淸貧)’을 넘어선 ‘청부(淸富)’의 정신이 근대의 통로를 통해 유입됐다. 루터가 없었다면 대(大)격변의 원천은 자궁 속에서 소멸했을 것이다. 미국도, 대한민국도 태어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선교하는 통일한국의 거룩한 길을 터야 할 남은 자들에게 역사는 명확한 가르침을 전달한다. 지금 한국에 절실한 것은 다른 어떠한 개혁 이전 종교개혁이다. 종교개혁을 위해 우리 각자가 루터가 돼야 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깨닫고 오직 말씀을 믿음으로 우리의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워서, 항상 기뻐하며 모든 일에 감사하며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한다.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1: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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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6월23일 23시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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